나도 모르게 불쑥, 마음속 말이 튀어나오고 다시 속으로 되 삼킬 수 없어서 에라 모르겠다 더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는 요즘이다.
'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보다 병적인 것은 걱정 없이는 외롭다는 것' <생각에게>
이 한 구절을 읽다가 아, 어쩌면 내가 혹은 우리가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내는 일에는 '걱정'이 필요하구나.
그 '걱정'이라는 녀석이 기어코 또 하루를 살아내게 하는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져서 안도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조해주 시인의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속에 담긴 시들을 읽다가, 외로워서 견디는 힘을 가만히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방'안으로 들어서며 말을 건네고<「방」>, 아직은 없는 혹은 계속 오지 않을 누군가의 자리를 만들고<「참석」>, 지우고 싶은 사람에 대해 너무 자주 생각하고<「월요일」>, 출근한 부모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품에 안긴 가짜 인형에 대해 생각하고<「미미」>, 나이거나 타인인 누군가에 자신을 내어주는 일에 안도함을 느끼<「일요일」>는, 사람에 대해, 그 시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나 역시 불 꺼진 방으로 홀로 퇴근 해 돌아가던 오래전 그 시절에, 외로워서 견딜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애인의 손을 잡고 방으로 돌아가던 날보다 터덜터덜 혼자 돌아가던 그 시간이 자주 더 그리운 건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 시인의 시들이 외로워서 쓰여졌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시를 읽는 내내 외로워져서 자꾸 슬퍼졌다.
말을 통해, 다른 말을 하게 되고, 이 말이 아닌데 이 말로 이해되고, 그래서 결국 내가 한 말이 마치 그것인양 믿게 되는 어떤 순간들에 대해 마치 내가 그 중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중심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자꾸 기우뚱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버리는 느낌.
그 기울어짐이 옳은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어 불안한 느낌. 버둥거리는 느낌.
자꾸 누군가의 뒷덜미를 붙잡고 싶어 조바심 나는 느낌.
그게 아니야, 내 말은 그게 아닌데, 한 번 만 더 생각해 주면 안 돼?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
담백하게 툭, 떨어뜨려 놓는 시인의 언어들이 가볍지 않아서 좋았다. 가볍지 않은데 쉽게 읽혀서 좋았다.
뱅뱅 돌리지 않는데, 자꾸 뱅뱅 돌려 생각하게 해서 재미있었다. 시를 시로 읽다가, 시를 논픽션으로 읽다가, 시를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듯 읽다가 그렇게 마지막 시까지 읽었다.
그리고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 졌다.
떠난 누군가를 붙잡고. 다시 오지 않을 누군가를 붙잡고.
덧붙임
1. 나는 어쩌면 내가, 자꾸 다른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내 마음대로 시를 읽어내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건 괜찮은 건가. 또 생각하다 툭, 내뱉고 말았다. 아무렴 어때.
2. 등단하지 않은 시인의 시집이다. 등단이라는 제도가 주는 묵직함이 이제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싶어 반갑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시가 좋아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