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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May 22. 2019

2019.5.21(화) 가계부 일기

- 워킹맘 엄마가 반대표를 맡아서 안절부절 중입니다. 

저는 가계부를 씁니다. 그리고 일기를 씁니다. 

매일의 지출이 나의 하루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되어 가계부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악착스럽게 모으지 못합니다. 절약 이런 것도 잘 못해요. 2년 가까이 가계부를 쓰고 있지만 돈이 차곡차곡 모이는 기적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게 제 삶이니까요. 



생각이 많았던 하루 - 2019.5.21(화) 지출 기록

                                                                                                                                                        

나는 워킹맘이라는 핑계를 활용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저런 분위기에 휩쓸려 1학년이 된 아이의 반 반대표가 되었다. 물론 자의 반 타의 반이었으므로 누가 강제로 등 떠민 건 아니었다. 


반대표가 된 이후 담임선생은 '아무것도 하실 거 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덧붙인 '그래도 반대표 어머니가 단톡방을 만들어 주시면 어머님들이 거기서 정보 공유도 하고 그러시더라구요'라는 말씀에 기꺼이 '그럼요!! 그건 해야죠'라고 대답하고 내 번호를 반 어머님들께 보내 단톡방 참여 의향이 있는 엄마들의 회신을 받아 단톡방을 개설했다. 


첫인사를 제외하곤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것 없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초등학생 엄마가 처음인지라 아이들 반 청소를 엄마들이 가서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한 엄마가 단톡방에 "아이들 반 청소하러 가요"라는 글을 올리고, 참여하고 싶다는 엄마들의 댓글이 달린 뒤 몇몇 엄마에게 개인 카톡이 왔다. 


"혹시, 이거 반대표님 하고 의논하고 올리신 거예요?"라고 묻는 내용으로. 

처음 그 톡을 봤을 때 아무 생각 없던 나는 '아, 그런 걸 반대표 엄마가 나서서 해야는 거구나' 알게 됐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아이들 반 청소 모임이 이었다. 첫 모임은 직장 때문에 나가지 못했다(물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괜히 나는 '반대표 엄마인데 그래도 이번엔 가야지' 하는 괜한 책임감 때문에 맘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결국 반차를 내고 반 청소에 참여했다. 


생각보다 지저분한 교실. 쓸어도 쓸어도 나오는 먼지. 더워진 날씨에 선풍기를 분해해서 닦고, 걸레질을 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모인 엄마들은 대화도 없이 청소만 했다.  청소가 끝난 뒤 "수고하셨어요!"라는 말을 나눈 뒤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서야 '아, 차라도 한 잔 같이 하자고 권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반대표는 맡아서......' 하는 생각도 아마 조금은 했던 것 같다. 다들 좋은 분들이어서 전혀 부담 가질 것 없다고 건네주시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어쩐지.. 뭔가 자꾸 해야 될 거 같은 이 기분 뭐지... ;;; 


혼자 터덜터덜 걸어 나오면서 갑자기 허기가 져서 혼자 햄버거 세트를 시켜두고 허겁지겁 먹었다. 

원래 혼자 먹는 식비는 내 용돈으로 지출하는데 어쩐지 이건 공무처럼 느껴져서 생활비로 과감하게 지출했다. 하하.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소한 책 나눔에 참여해 주신 이웃분들께 책을 배송했다. 

비움을 통해 배운 나눔은 생각보다 내게 꽤 긍정정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즐거운 비움과 나눔.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배운 가장 값진 결과다. 



어쩌면 오늘 내가 더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지도 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보았다. 청소 핑계로 낸 반차 덕분에. 

아이는 엄마가 온다는 걸 알고 한껏 들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엄마!"하고 달려드는 아이를 보니 괜히 뭉클해졌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서 있었고, 많은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웃으면서 나오고 있었다. 

'아, 우리 아이는 매일 저 아이들 틈에서 혼자 나와 혼자 실내화를 갈아 신고 혼자 정문으로 나가 태권도 차를 탔구나'하는 생각 때문에, 기껏해야 잠깐 얼굴 보고, 손 잡고 걸어가 태권도 차에 타는 걸 봐주는 것뿐인데 그렇게 좋아하다니. 하는 생각 때문에 종일 마음이 아팠다. 

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하지 못하는 직장 생활로 어쩌면 아이와의 중요한 시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아니, 이건 너무 지나친 억측인가, 아이는 생각보다 더 잘하는데 엄마인 나의 괜한 죄책감인가.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생각들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 : 픽사베이


해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을 담아 두고 싶어서 아이를 학교 정문 앞에 세워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찍고 나서도  활짝 웃던 아이의 표정이 내내 마음에 남아 있다. 

엄마가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안 아이는, 태권도가 끝나고 미술 학원으로 옮겨 가기 전에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나 간식 좀 사다 주면 안 될까?"

아이가 요청한 간식을 사서 같이 나눠먹고, 미술 학원에 데려다주고, 처음으로 미술 학원에서 아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이게 뭐라고, 나는 이걸 한 번도 못해줬을까. 이게 뭐라고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이리도 행복해할까. 


오늘처럼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 육아휴직이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적이 없다. 

잠든 아이 얼굴을 바라보면서 아마도 오늘은 늦도록 잠들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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