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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Jan 31. 2020

07. 나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수기

-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에서 워킹맘으로 살고 있다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건데, 당연하지 무슨 '사수'까지 할까 싶지만

내가 직접 육아 휴직서를 제출해보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해보니 그 법적 보장이라는 말이 여전히 

어딘가에선 절대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 알게 되었다. 


육아 휴직서를 제출할 때만 해도 나는 꽤 진지했고, 설렜고, 감격스러웠다. 

드디어, 직장 생활 17년 만에 나도 휴직이란 걸 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아이를 위한 휴직이기도 했지만, 열심히 달려온 나를 위한 보상이기도 했다. 

아침, 느긋하게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키고 다시 아이들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침 시간에 열리는 강연회도 찾아가 보고, 

혼자 독립서점 탐방도 하고, 못 만났던 친구도 만나고,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음식도 만들어 

저녁 식사 시간도 풍성하게 만들고 싶었다. 


물론, 일하는 엄마 때문에 어린이집, 유치원 생활 내내 늘 꼴찌로 원을 하원 하고,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뒤에는 돌봄 교실과 학원을 돌아야 하는 큰 아이를 위한 계획도 거창하게 세워두었다. 


학교 끝나는 시간에 교문 앞에서 기다려주기, 

함께 걸어오면서 군것질도 하고, 가끔 현장학습 신청서를 내고 둘이 놀러도 가고, 

학원 대신 함께 도서관도 가고, 놀이터도 가고...... 


그런 마음으로 (나름 오랜 고민 끝에) 육아휴직을 신청했으나 직장의 여러 상황으로 인해  

설득(당함)과 협의 과정을 거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 과정을 겪는 동안 고민도 많았고, 상처도 있었고, 억울한 맘도, 조직이 싫어지는 경험도 했다.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이 사회가 여전히, 일하는 엄마들에게 얼마나 냉정한지 알게 되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으로 12월 말부터 3월 말까지 3개월간 나의 근로시간은 주 20시간, 11시부터 4시까지다.(육아기 단축근로는 3개월 단위로 시간 변경이 가능하다).                                               

법 개정으로 혜택이 더 늘었다지만 이게 실효성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이제 의문스럽다.                                                 

                                                                                                                                                        

주 40시간에서 주 20시간으로 근무 시간을 조정을 했는데,  나는 슬프게도 조금 더 바빠졌다. 


"이상하지 않아? 더 분주해 매일" 신랑에게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고, 

여전히 내 선택에 대한 의심도 남아 있다. 


만족과 불만족 사이의 점수를 5점 척도로 매기라면, 

3점 정도. 이도 저도 아닌 보통이라는 얘기다. 

그러고 나니 좀 억울하다. 


1월 초부터 2월 말까지 2달의 방학을 보내는 큰 아이와, 거의  매일 야근, 야근이 없는 날이면  모임에 가는 신랑과, 정신없이 우당탕 뛰어다니는 23개월 둘째 사이에서 매일 고군분투 중이다. 


아이가 태권도 학원에서 하는 특강에 가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려다주고 출근을 한다. 

퇴근을 하면 태권도 학원에서, 피아노 학원으로, 미술 학원으로 옮겨 간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들러 둘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4시간 근무이다 보니

직장에 출근과 동시에 업무 모드로 돌입해야 하고, 점심시간에도 자주 일을 해야 하며, 퇴근 때까지 다른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래도 늘 일은 밀린다. 

게다가 후배 직원에게 맡겼던 업무 컨펌, 업무 지시, 확인 등의 일도 수반되어야 하므로 4시간은 늘 짧다. 

퇴근한 뒤에도 카톡은 수시로 울렸다.                                               

Image by StartupStockPhotos from Pixabay 12


                                                                                                                                                 

그럼에도, 생각해본다. 

지금 내가 좋은 것들에 대해서, 좋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1. 아침 시간의 여유 


 9시에 출근을 할 때는 매일매일 전쟁 같은 아침이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잠드는 사람이다. 

먼저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치고,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워 먹이고 입히고 씻겨서 등교, 등원 준비를 시키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은 내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어린이집에,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면 출근하면서 이미 지치기도 했다. 

출근 시간이 늦어지니 아이들을 깨우며 채근하지 않아도 되고,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출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매일 대충 하던 아침 헤어짐 인사도 깊은 포옹과, 오늘 하루도 잘 지내라는 서로에게 전하는 다정한 말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2. 학원이 마친 뒤 언제든 아이가 집에 돌아와도 된다는 것.


퇴근 시간이 6시일 때는 아이가 학원 수업을 모두 마치고도 집에 오지 못하고 학원에 오래 남아 있어야 했다. 

아프거나,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매일 그랬다. 

지금은 4시 30분 태권도 수업이 끝나면 아이는 집으로 온다. 혼자 걸어온다.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 아이는 "엄마, 나 지금 태권도장에서 출발해!" 전화를 걸곤 씩씩하게 걸어 집으로 온다. 

띠띠띡.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 앞에 엄마가 서 있는 걸 보는 순간 아이는 하루 종일 긴장했던 마음을 풀고 환하게 달려와 안긴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잠깐 TV를 볼 수도 있고, 책을 읽기도 하고, 하루 종일 서로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조잘조잘 수다를 나눌 수도 있다. 



3. 자투리 시간 확보 


아침에 40분 남짓, 오후엔 아이가 4시 반 이후 학원을 한 군데 더 가는 날이면 1시간 반쯤 여유 시간이 생긴다. 

그러면 잠깐이라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 시간은 때론 한 편의 글을 쓸 정도로 충분하다. 책을 읽기에도 좋다.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 나에게 주어지는 아주 달콤한 시간이다. 


이 좋은 것들이 주어진 대신


 급여 차감과 독박 육아는 옵션으로 따라붙었다. 



급여 차감 


나는 사학연금 가입자이고, 고용보험 미가입자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시 삭감되는 급여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애초에 알고 있었지만 딱 한 달 근무시간 단축을 시행하고 1월 25일에 입금된 급여를 확인하고 나자 '아하하' 웃음이 터졌다. 


통상급여의 50%. 보직수당 50% 차감되었으나 국민연금이나 사학연금은 정해진 금액이 있으니 급여가 적어진 것과 상관없이 동일 급액 차감, 

기부금, 조합비, 등 역시 동일 금액 차감. 거기다 급여에서 공제되는 소액의 저축 급여와 대출금 상환금까지  제하고 나니 실수령액은 교통비와 점심값 정도였다. 


육아휴직을 했다면 그마저도 받을 수 없었을 테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싶다가도

출근하지 않고,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무급자로 생활하며 내가 원하던 생활을 하는 것과 

출근을 하고, 해야 할 일들은 모두 신경 쓰면서, 내가 기대한 모든 것들과는 좀 다르지만 조금이라도 급여를 받는 게 나은 건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혜택을 받을 수 없지만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꽤나 진지하게 검색해봤다. 

(어떻게든 내게 돌아올 혜택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거다)                                              



                                                                                                                                   

공무원법을 준용하는 기관인지라 혹시나 하는 기대로, 1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급여 차감이 없는 거라면 나도 적용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알아보니 그렇다 하더라도 급여가 100% 지급되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급여가 500만 원인 근로자가 1시간 단축을 하면 

회사 : 500만원/40시간(기존 주 근로시간) * 35시간(변경 후 근로시간)=4,375,000원을 지급한다.

공단 : 200만원(상한 금액)/40(기존 주 근로시간) * 5시간(단축근로시간) = 250,000만 원을 지급한다.

결국 회사 지급 금액 4,375,000원+공단지급액 250,000원 = 4,625,000원, 375,000원이 차감된다. 


결국, 급여가 높으면 높을수록 차감되는 금액이 커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싶기도 하고). 


육아 휴직을 계획했을 땐 그 기간 동안은 마이너스 가계 경제를 염두에 두었었다. 

그것들을 포기하고 얻을 것들에 대한 기대가 훨씬 컸다.

지금 나의 이 생활을 의심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독박 육아


회계업무를 담당하는 신랑은 학교 회계가 마감되는 1,2월이 가장 바쁘다. 

평일 야근은 물론 주말도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시기. 

게다가 겨울 스포츠 스키를 취미로 가지고 있는 신랑은 그 없는 시간을 쪼개 스키장으로 달려간다. 


시즌 스포츠라 겨울을 놓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니, 그리고 매일 야근하는 신랑도 스트레스를 풀 때가 있어야 하니,  내가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동안은 신랑의 시간을 최대한 보장해 주겠다 장담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마도 처음, '독박 육아'라는 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게다가 육아 참여가 저조한 신랑을 둔 엄마들이 얼마나 힘들까, 더 깊게 공감하게 되었다.                                               


Image by Free-Photos from Pixabay


                                                                                                                                                        

직장에서 당장 내 업무를 대체할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려우니 고려해 달라는 말은, 

지금 당장 내가 손을 대고 있는 업무들이 많다는 이야기였고, 

쉽게 정리될 수 없는 업무들도 있다는 뜻이었다. 


처음 한 두 주는 4시가 가까이 다가오면 긴장했다. 

하던 업무를 딱, 내려놓고 '저 퇴근하겠습니다' 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다들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데 혼자 퇴근하는 게 마음에 못내 걸렸다. 

가끔은 4시가 다가오는데도 회의가 끝나지 않아 조바심 나기도 했고, 나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직장 업무가 돌아갈 리도 만무하니 누군가는 나 대신 내 업무를 나눠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다행히 직장 동료들은, 상사들은 내가 끝내 육아휴직을 하지 못하고 근로시간을 조정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움만, 미안함 반의 마음을 표현해 주었고, 나의 출퇴근에 대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주었다.(물론 당연한 거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일이 밀리고, 매일 하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퇴근 한 느낌 때문에 부담을 느꼈다. 


이런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게 된 것은, 

육아휴직을 하거나, 근로시간 단축을 하는 것이 개인의 문제, 개인이 조직에 민폐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면서부터였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준다'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어떤 선택이든 내가 한 선택에 대해 책임지고, 후회하지 않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근무시간이 조정된 만큼 그 시간 내에 내게 주어진 일을 다 처리하려는 건 내 욕심. 

그걸 다 해내길 원하는 건 조직의 욕심. 


대체 근무자 대신 짧은 시간이라도 내가 근무를 계속해주기를 원했던 조직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그렇다고 조직의 문제를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결혼과 출산을 하라고 그렇게들 강조하면서, 그 과제를 수행하지 않으면 진정한 어른이 되지 않으며 무려 애국자가 아니라고 비난하면서, 막상 현실에서는 과제 수행의 대가로 불이익을 준다. 대부분의 짐을 여성 개인이 짊어지게 만든다. 국가와 기업은 여성의 상황을 나아지게 만드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변함없이 억압하며 요구할 뿐이다. 결혼이나 출산을 민폐로 만드는 건 개인이 아니라 사회다.
 조직이 해야 할 일을 구성원에게 떠넘김으로써 해당 구성원 개인의 문제, 즉 '민폐'로 만드는 것이다. 정당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나 차별을 방지할 시스템은커녕 오히려 아직 하지도 않은 결혼과 출산을 핑계로 취업에서부터 불이익을 줘버린다. 휴직 기간 동안 대체인력을 뽑지 않고 육아 비상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등...... 결국 개인이 지쳐 나가떨어지도록 만든다. 온 사회가 여성을 구조적이고 치밀하게 배제해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결혼 고발>> 중에서, p134



나의 육아 휴직과 근로시간 단축을 두고 직장 내 많은 논란이 있었다. 

당연히 가야지, 하는 쪽과 그래도 지금 상황을 좀 배려하는 게.... 하는 의견이 엇갈렸고, 

육아 휴직서를 제출한 직원을 설득시킨 조직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설득했더라도 당당히 갔어야지 나를 채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번 근로시간 단축은, 직장에서의 첫 사례이기도 했다. 


나는 17년 동안 내가 쌓아 온 커리어를 쉽게 무너뜨리고 싶지 않고 싶은 마음과, 지금 내 위치(보직)에서의  책임에 대해 생각했다. 

눈치도 봤다. 

그 반면,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의 힘든 마음과, 지치는 나도 생각했다. 


육아휴직 대신, 근로시간 단축을 해 줄 수 없겠냐는 직장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내 걸었던 조건이 있었다. 

'곧, 조직 개편이 있을 예정이라는 조직의 상황을 고려하되. 단축근무 3개월 뒤에는 예정대로 휴직을 하고 싶다'는 것. 


한 달 동안  나름대로 그 시간들을 잘 활용해 보려고 노력했다.

현재의 만족도는 보통, 정도이지만 (급여를 생각하면 조금 더 낮을지도 모르지만)

남은 두 달의 시간은 좀 더 멋지게 보내 볼 계획이다. 한 달 동안(고작 한 달이지만)의 경험이 새로운 계획은, 방향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3개월 뒤면 4월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의 내가 정말 육아휴직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그때 다시 내 결정에 설득이 이어진다면 그땐 처음보다는 단호하게 조직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 

눈치 보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겠다는 것. 


그때의 나를 위해, 

지금 내 선택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주어진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4시 정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하게 퇴근을 했다. 

그리고, 내일도 다음날도 (당연한 일이지만) 내 출퇴근 시간을 사수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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