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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Jan 29. 2020

06. '식탁'이 우리를 달라지게 한 것들

- 새로운 꿈이 시작되는 곳

식탁은 배고픔을 해소하는 장소이며 타인과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언제 밥 한 번 먹어요." 누구나 들어보았을 인사. 또 적어도 한두 번은 누군가에게 이 말을 건넨 적이 있을 것이다. 밥 한번 먹자는 인사를 듣고 아직도 못 먹은 사이도 있다. 처음에는 진짜 먹자는 줄 알았는데, 차차 '그냥 인사'인 줄 알게 되었다. 한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인연은 참 귀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와 그 자리를 함께하고 싶지는 않다. 식탁을 지배하려는 사람과 밥을 먹는 일은 고역이다. 함께 밥 먹는 행위는 다른 생명을 나눠 먹으며 서로가 연결되는 시간이다.
 - 프롤로그 <나의 식탁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중에서, p9



이라영의 『정치적인 식탁』이라는 책을 읽고

'식탁을 갖고 싶다. 넓고 환한 식탁을'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초 작은 부엌 한편에 두었던 아일랜드 식탁은 큰 아이가 태어난 뒤 비웠고, 그 이후 오래도록 우리 집엔 식탁이 없었다.

부엌이 넓은 집으로 이사 온 뒤에도 식탁을 사지 않고 작은 밥상을 놓고 밥을 먹었다.


부부와 어린아이 둘이 밥을 먹는 건 작은 밥상이면 그리 부족하지 않았다.


별안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 한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검색을 하고 비교하는 짧은 시간이 있었지만,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뒤 이틀 만에 덜컥 구입해 버리고 말았다.                                               

                     설치 후 식탁의 첫 손님은 큰 아이 예윤이다. (식탁, 의자 3개, 벤치의자 1개로 구성)                            


                                                                                                                                                      

소비의 측면에서 보면 지나친 가격이었는지도 모른다.

4인 가족인데 게다가 아이들은 아직 어린데 6인용 식탁은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처음 식탁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 '넓고 환한 식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6인용 식탁을 구입했고,  2주 정도 식탁 생활자로 살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뭐가 그리 달라졌냐고?


달라졌다. 확실히.


우선, 식탁에서 식구들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건 함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땐 딱, 밥 먹는 시간만큼만 그 공간 안에 함께 머물렀다.

밥을 먹은 뒤엔 밥상은 할 일을 다했으니 바로 치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 오래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들기도 했고.


의자에 적당하게 허리를 펴고 앉을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조리대에서 밥상으로 반찬을 나르는 시간이 단축되고 동선이 짧아진 것도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로는 '나의 공간'이 또 하나 생겼다.

책상이 있긴 하지만 식탁이 놓인 후 아이들이 잠들면 몰래 방에서 빠져나와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노트북과, 몇 권의 책과, 다이어리, 가계부 등을 올려놓아도 여유로운 공간은

언제든 내게 앉을 수 있다는, 무언가를 읽고, 쓸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


아이들이 잠들지 않은 시간에도

아이들이 거실에서 서로 놀거나 잠깐 'TV를 시청하고 있을 때도 식탁 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가계부를 적으며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큰 아이는 엄마가 식탁에 무언가를 펼쳐놓으면 궁금해하면서 다가오고,

간혹 자기도 옆에 앉아 읽거나 썼다.


이제 우리에겐 먹는 공간과 함께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셈이었다.

                                         

                                                                                                                                                     

세 번째,  넓어진 공간만큼 담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작은 밥상 위에는 딱 그만큼의 식기만 놓을 수 있어서 모양을 내고,  나눔 접시를 올려두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각각의 그릇에, 다양한 접시를, 컵을 올려놓을 수 있다니.

그러다 보니 설거지 거리가 좀 늘어났지만 그것만큼은 즐거운 수고로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아기 식탁에 따로 앉아 밥을 먹던 둘째도 한 자리 딱 차지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

                                                                                                                                                                

네 식구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밥을 나누어 먹을 수 있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일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TV로 눈을 돌리는 것 대신, 오늘 하루 자신의 일정을 공유하고, 계획을 논의하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식탁을 사면


'식탁에 둘러 앉아 허락된 죽음이 제공하는 풍성한 먹거리를 앞에 두고 감사함과, 잊지 말아야 할 일들과, 기념해야 할 일들과, 분노해야 하고, 바꾸어야 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야지' 생각했다.  


우리에게서 시작된 즐겁고, 유쾌한 식탁에서의 시간들 통해 나의 아이들이 편견 없이 자라길, 존중받으며 살아가길, 베풀며 살 줄 알길, 무엇보다 매 순간 감사하면서 살아가길 바라면서.


부엌은 집의 심장이다. 가족 구성원이 골고루 드나드는 공간이어야 관계의 순환이 원활하다. 어느 한 사람이 부엌이라는 공간에 과하게 머물고 있다면, 식탁에 편히 앉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면, 집안의 관계는 어디에선가 막히기 마련이다.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의 권리를 생각하는 정치적인 식탁은 누구든 환대해야 한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동물적 존재에서 말하는 권리를 가진 정치적 인간으로, 나아가 타인과 온전히 관계 맺을 수 있는 사랑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는 모두에게 있다.
- 에필로그 <할머니들을 위하여> 중에서, p251


나는 이제 이 공간에서 새로운 꿈을 꾼다.


가족 구성원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함께 공유하는 시간들을 넘어서 기회가 된다면 가족 이외의 타인들을 초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거나,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은 꿈.


친한 친구여도 좋겠고, 아직 낯설지만 막 사귀기 시작한 지인이라도 좋겠고,

공부를 목적으로 혹은 독서 모임을 목적으로 만나게 될 완벽한 타인이라도 좋겠다.


아이가 친구들을 데리고 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 때 슬쩍 소소한 간식을 챙겨주어도 좋겠고,

아이들이 거실로, 방으로 들어가 자기들끼리 시간을 보낼 때 엄마들만의 티타임을 가져도 좋겠다.


고작 식탁 하나에 뭐 그리 거창하냐고?


맞다.

아니, 아니다.

고작 식탁 하나가 아니라,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이의 권리를 생각하는 식탁은 누구든 환대해야 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나는 이제 알겠다.


그 환대하고, 환대받을 수 있는 권리를 기꺼이 누리면서 살겠다.

그게 나만의 거창한 다짐일지라도.


202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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