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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Jul 24. 2020

기쁨도 잠시, 육아 지옥에 빠진 당신에게

- 그래도 힘을 내야 하니까, 

첫아이를 낳은 뒤 2주 동안의 산후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겨우 3킬로그램을 넘긴 작은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덜컥 겁부터 났어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산후조리원에서는 아이를 돌봐주는 전문가들이 있잖아요. 

엄마인 나는 아이에게 먹일 모유만 열심히 만들어 내면, 아이에게 물리면 나머지 시간은 마사지도 받고, 휴식도 취할 수 있었잖아요. 

영양식으로 가득한 매 끼니의 식사를 받는 기분은 또 어떻고요. 


집에 돌아와 아이를 눕혀 놓고, 집안을 휙 둘러보는데 덜컥, 겁이 나는 거예요. 

아이와 온전히 둘이 남겨진 공간이 왜 그리 커 보이고, 낯설게 느껴지던지요. 


겨우 2주를 비웠을 뿐인데, 오래 비워두었던 것처럼 휑하게 느껴지고, 정리되지 않은 집안 곳곳은 왜 유독 눈에 띄던지, 손목 보호대를 하고 수면 양말을 껴 신은 채 여전히 불편한 회음부 때문에 엉성한 자세로 집안 정리를 했어요. 


제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이상하게 제 손이 닿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요. 

이제 이곳은 제가 영원히 지켜야 할 또 다른 존재가 함께 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없던 책임감이 생겨난 것처럼 말이에요. 


당신은 아이가 태어나 당신 가슴에 안기던 순간 ‘엄마’가 되었는데 아마도 당신 남편은 여전히 태동 중일 거예요. 탯줄을 자르고 잠시 감격에 겨웠겠지만 곧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하겠지요. 손님처럼 산후조리원에 빼꼼 얼굴을 내밀고, 신생아실 창 건너에서 아이를 바라보고 돌아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는데 울컥 서러운 거예요. 


저 사람은 여기서 나가면 자유인데, 집에 가는 길에 커피를 한 잔 마실 수도 있고, 집에 돌아가 두 발 편히 뻗고 소파에 누워 TV를 볼 수도 있겠구나 싶으니까 괜히 억울해지기까지 했어요. 


‘집에 가기만 해 봐, 다 시켜 먹어야지.’ 생각했었지요. 

물론, 집에 돌아와 첫날 그 계획은 산산조각나버렸지만요.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엄마’라는 존재가 ‘아내’라는 존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학습받았잖아요. 다행히 요즘엔 알아서 척척하는 남편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소수일 뿐이고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인 내가, ‘아내’인 내가 무언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불편한 감정들을 느끼죠. 


당장 내일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에게 ‘당신이 아이 좀 데리고 자’라는 말이 참 안 나오더라고요. 이미 경험했겠지만 아이는 아직 두세 시간 텀으로 일어나 모유를 먹거나 분유를 먹잖아요. ‘백일의 기적’이라는 선배 맘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백일이 언제 돌아오나 매일 날짜를 세었던 것 같아요. 정말 그 기적이라는 게 나에게도 찾아올까 하는 의심은 여전히 하면서 말이지요. 


다행히 첫아이보다 둘째 아이는 밤잠을 잘 자주 었어요. 한 번 잠들면 아침까지 푹 자는 아이는 생각만 해도 고맙잖아요. 물론 그 외에 많은 것들이 힘들었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두 돌을 맞이하고 생각해보니 그 역시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모습만 남아 있습니다. (아, 또 억울해지려고 하네요)


직장을 다니는 엄마라면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상황이 되는 경우에는 좀 다르겠지만, 아이를 맡기고 마음 졸이고, 아이가 밤잠을 설치면 출근 걱정을 하느라 신경이 예민해지지요. 


직장을 다니지 않고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생활을 하는 엄마라면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이와, 엄마가 잠시만 보이지 않아도 자지러지는 아이 때문에 밥도 마음 편하게 먹지 못하고, 화장실도 아이를 안고 가야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쉬운 일은 아니에요. 


간혹 “집에서 애만 보는데 뭐가 힘드냐고 그러면 직접 나가서 돈 벌든가” 같은 말을 쉽게 내뱉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남편이거나 가까운 지인일 때 우리는 조금 더 절망합니다. 

다 밉고,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우울해지기도 하지요. 


하루 종일 대화 상대도 없이 아이와 힘든 시간을 보낸 뒤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오늘 하루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무언가 해결책을 원하는 건 아니었을 거예요. 

그냥 힘들었다고, 외로웠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죠. 

그때 남편이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좀 쉬어. 내가 아이랑 놀고 있을게’ 이렇게 말해주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의 남편들은 얼굴 표정부터 굳어지지요. 

‘나도 힘들었어. 너만 힘들어?’하고 말하지 않았다면 다행으로 여겨야 할 만큼 말이지요.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하면서 매일 우울의 늪을 헤맬 때 나에게 필요한 건 아무 이유도 달지 않고, 조언도 하지 않고 오롯이 나의 이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누군가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인 우리들이 ‘엄마’라는 단어 하나로 친밀감을 느끼고, 모든 걸 다 이해할 것 같은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요. 모두 경험해 봤으니까요. 


아이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게 어떤 고통인지, 아이를 안고 변기 위에 앉아 있을 때 종종 어떤 기분이 드는지, 퇴근하고 돌아온 신랑이 아이 한 번 안아주고 소파로 가 누워 TV를 볼 때 얼마나 미운 감정이 드는지, 아무도 없이 진짜 조용히 혼자 단 하루만 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 때 그 상상만으로도 어느 정도 행복해지는지, 오랜만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단 두 시간의 외출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우리는 아니까요. 


아마 오늘도 당신은 비슷한 일상을 보냈겠지요. 

어쩌면 오늘도 야근인 혹은 회식으로 늦는 남편을 기다리며 늦도록 밥도 제때 챙겨 먹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우 아이를 재우고 아무 의욕이 없어 멍하니 앉아 있을지도 모르고요.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옆에서 손잡아 줄 수는 없지만, 그 마음 충분히 안다고 이해한다고, 공감한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그러니 너무 외로워하지 않길 바라요. 


당신 옆에 앉아 토닥이고 싶은 마음을 담아 『한밤중의 육아일기』라는 책 한 권 놓아두어요.                                             

                                                                                                                                                 

새벽 수유로 밤잠을 설쳐본 엄마라면, 남편의 한 마디에 서운해져 본 엄마라면, 그런데도 아이의 웃음에 또 마음이 사르르 녹아 본 경험이 있는 엄마라면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따뜻한 그림 에세이입니다.      

                                         

                                                          

제엔장. 하필 이럴 때 다들 전화를 안 받는다. 생판 모르던 남녀가 서로를 더 알고 싶어서 더 붙어 있고 싶어서 한 결혼인데 정작 함께 있음에도 왜 진짜 이야기는 못하게 되었을까. 친정 이야기는 얕볼까 봐, 드라마 이야기는 드라마에 빠져 산다는 핀잔이 듣기 싫어서, 남편 흉은 당사자이니 볼 수가 없고... 진짜 대화, 진짜 위로가 그리워서 왠지 집에 들어가기 싫은 8시, 무거운 밤.(그렇다고 싸운 것도 아닌데.) - <장 보고 올게> p38                                              

                                                                                                                                                       

침대에서 윤아가 떨어졌다. 뒤집기도 못하는 녀석이니 괜찮겠지, 하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쪼그라드는 심장과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 손. 다...... 내 잘못이다. 잘못되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행히 아이에게 이상은 없었지만 지켜보는 며칠 내내 속으로 이상한 기도를 했다. '저 착하게 살 테니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 주세요. 다들 한두 번 떨어뜨리며 키운다는 친구 말처럼 그냥 뻔한 에피소드로 남게 해 주세요...                                              


                                                                                                                                           

많은 빨래를 널기 위해 거실로 빨래 건조대를 두 개나 들고 나온 날. 윤아가 아래로 들어가더니 하필 먼지가 찐득하게 제일 많이 묻은 곳을 손으로 만져댄다. 할 수 없이 비닐을 가져와 아이가 만지지 못하게 빨래 건조대를 감싸 매는데 이제는 파파팍! 비닐을 죄다 뜯어 놓는다. 순간 화가 솟구친다. 비닐을 뜯는 윤아 손을 거세게 낚아채서는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엄마가 하지 말랬잖아!" 하며 윽박질렀다. 곧바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윤아. 소리치면서도 '아, 안되는데... 이제 그만해!' 하는 내 마음의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그런데 멈춰지지가 않더라. 별것도 아닌 것에, 고작 빨래 건조대에... - <까닭 모를> p46                                              


                                                                                                                                                              

한 장의 그림이, 짧은 글 한 편이 주는 위로와 공감이 지금 당장 당신의 눈물을 쏙 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면 좀 속이 시원해질 거예요. 


‘아, 그래 이렇게 공감해 주는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금 나의 감정을 같이 경험하고 있는 많은 엄마들이 있었지.’ 위로가 될 거예요. 


우리는 다시 힘을 내야 하잖아요. 

당신의 오늘 하루도 참 멋졌다고 잘했다고 멀리서 칭찬의 말을 보내요. 


이 마음이 당신에게 꼭 가닿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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