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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Jul 26. 2020

친구가 필요한 당신에게,

- '남'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TV 드라마를 보면서 부러운 장면은 남녀 주인공이 달달한 애정표현을 하거나,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근사하게 프러포즈를 할 때가 아니었어요. 

제가 늘 부러웠던 건 여자 주인공 주변에 있는 괜찮은 친구들이었습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무 때나 전화 통화를 하고, 퇴근 후 만나 맥주 한 잔을 기울이고,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여자 주인공 옆엔 꼭 있더라고요.  

    

드라마에서는 조연 일지 모르지만 저는 인생에서 어쩌면 그들이야 말로 주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누군가의 삶에 동행하는, 의지되는 존재란 얼마나 멋진 가요.      


그런 장면을 보고 나면 애꿎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저장된 전화번호를 훑어봅니다. 

지금 전화하고 싶은, 전화해서 “뭐해? 그냥 했어~” 하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나 하는 마음으로요. 

안타깝게도 그런 순간마다 선뜻 누르게 되는 번호가 없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친구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왕따 문화가 그리 부각되던 시기도 아니었고요. 별문제 없이 두루두루 잘 지냈던 것 같습니다. 한 동안은 단짝 친구로 매일 등하교를 같이 하는 친구도 있었지요. 

     

성인이 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일이 줄어들고, 연락할 일이 줄어들었겠지요. 특히 결혼을 한 뒤에는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과 교집합을 만드는 일이 왜 그리 쉽지 않았을까요.     


엄마들은 참 많은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하잖아요. 

동네 엄마들 모임, 아이 같은 반 엄마들 모임, 맘 카페 등등 말입니다. 

그런데도 늘 허전했어요.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엔 괜히 위축이 되기도 했어요. 

엄마들의 모임이란 게 대부분 ‘아이’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지라, 쉽게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금세 깨져버리기도 하잖아요.      


엄마모임 말고, 종종 친구가 그리운 날이 있습니다.     


아이들 이야기 말고, 남편 이야기 말고, 시댁 흉보기 말고,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잖아요. 

오늘 내가 먹은 것, 오늘 내가 생각한 것, 오늘 내가 읽은 책, 앞으로 하고 싶은 일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순간이요.      


당신은 지금 어떤 친구를 그리워하고 계신가요? 


당신 역시, 하루 종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어른의 대화가 아닌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대화만 나누었을 거예요.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동네 엄마를 만나 수다를 떨기도 했겠지만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제가 느꼈던 것처럼 괜히 공허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처음엔 그게 왜인지 정확히 잘 몰랐어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신나게 수다를 떨었는데, 실컷 시댁 흉, 남편 흉을 보면서 스트레스도 풀었는데 왜 이러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번의 반복되는 감정을 경험하면서 언제나 이야기의 중심이 ‘나’가 아닌 ‘남’이었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나’가 빠진 ‘내가 하는’ 이야기라니요. 

말은 내가 하고 있는데 내 얘기는 하나도 없고, 온통 아이 얘기, 남편 얘기, 시댁 얘기, 학원 얘기 같은 ‘남’의 이야기만 실컷 해버린 거예요.      


내가 진짜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는 털어놓지 못했으니 얼마나 헛헛한 일인지요. 

그걸 깨닫고 나자 동네 엄마를 만나는 일도, 맘 카페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글을 읽으며 공감하는 일들에 예전과는 다르게 크게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출처 : 픽사 베이


우리가 친구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게 아니었을까요.      


자신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어린 시절 서로의 흑역사도 알고 있고, 첫사랑도 알고 있고, 힘든 사춘기 시절을 견디면서 나눈 끈끈한 연대의식도 있고 말이에요. 

친구를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쩐지 외로운 마음도 사라질 것 같잖아요.      


그런데, 당신도 저도 이젠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친구와 만나 그 시절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그때의 순수했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걸요.      


그러니 우리 친구가 없어 외롭다는 생각은 그만하기로 해요. 

그리움은 그리움 그대로 남겨두고,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나’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만들어 가는 거예요.      


혹시 저처럼 전화할 사람 없나? 하고 휴대전화 연락처 목록을 훑어보고 있을지도 모를 당신 앞에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을 놓아둡니다.    

  

이 책 속에는 저자가 인터뷰한 네 명의 인터뷰이들이 등장해요. 모두 사는 곳도, 환경도, 직업도 다른 사람들이지요.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읽다 보면, 읽는 게 아니라 옆에 앉아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스스로에게 갇히는 날이 또 온다면 이 대화들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마음의 세수를 한다. 이 느낌을 나는 존경이라고 부르고 싶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존경의 순간이 얼마나 희귀한지를 안다. 깨끗한 축하와 깨끗한 용서만큼이나 흔치 않다. 여전히 나는 그들의 아주 일부만을 알지만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의 찬란함은 의심하지 않는다. 

- 『깨끗한 존경』 <서문> 중에서, p6」     


누구인지 잘은 모르지만,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도 잘 모르고, 그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궁금해지는 거예요.     

 

저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나,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나 하는 궁금함으로 결국 제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의자를 바짝 당겨 최대한 그들 가까이로 몸을 움직여 안 듣는 척하면서 듣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끝났을 땐 못내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외로움은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을 기댈 곳이 없어는 아니었을까요. 

자신의 마음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자신을 단단하게 받쳐 줄 뿌리가 없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종종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스스로도 잘 모를 때 찾아오는 당혹스러움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이야기(인터뷰)가 끝난 그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발걸음도 경쾌하게 다시 자신들의 길을 떠나고 저는 다시 혼자 남겨졌습니다.      


남겨진 저는, 이제부터 시작인 저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게 되겠지요.      


저는 이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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