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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Jul 26. 2020

엄마가 미운 당신에게

- 잠시 도망쳐도 괜찮아요

          

“너도, 너 닮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종종 엄마들은 딸에게 그런 말을 해요.      


저도 딸을 낳으면 엄마를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큰 아이를 낳은 후 엄마가 더 미워졌을 때 혼란스러웠어요. 

‘내가 잘못된 거지? 이러면 안 되는 거지?’ 같은 생각을 하며 엄마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느껴졌습니다.      


쌔근쌔근 잠든 아이 얼굴을 어루만지며 “엄마는, 절대 네가 엄마 때문에 부담을 갖지 않도록 살아볼게” 같은 말을 주문처럼 내뱉었습니다.     

 

정말 그랬어요. 한동안 제게 엄마라는 존재는 ‘부담’이었습니다. 

노후 준비는커녕 당장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엄마를, 결혼한 딸에게 늘 무언가를 요구하는 엄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인 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다르지?” 

비교하면서 ‘나도 엄마다운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바랬어요.      


그런데, 엄마다운 엄마는 어떤 엄마였을까요?      


딸인 나를 위해 늘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자신보다 딸을 더 생각하고, 딸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불편함 정도는 기꺼이 감수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는 그런 엄마였을까요?  

    

아마도 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 기준에서 벗어난 나의 엄마는, ‘엄마답지 않은 엄마’라고 규정지었을 거예요.  

    

당신이 규정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어떤가요?      


엄마는 저를 스물네 살에 낳았습니다. 

세 살 터울의 언니도 있으니 스물한 살에 엄마가 된 셈이지요. 

스물한 살. 그 나이 때의 저는 대학 생활을 즐기느라 결혼, 육아 같은 것들은 제 인생에서 그려보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당장의 대학 생활이 즐겁고, 졸업 후 무슨 일을 하면서 살게 될까 상상하고, 하루하루 재미있게 보낼 궁리만 하던 딱, 그 나이의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고민을 하며 보냈지요.   

   

스물한 살에 가난한 집 장남과 결혼해 엄마가 된 여자의 삶은 어땠을까요? 

아이도 버거운데, 남편이 책임져야 할 시가의 동생들, 부모님까지 함께 챙기느라 젊음을 누릴 여유 같은 건 생각지도 못한 삶이었을 거예요. 

아이를 낳고 엄마를 더 미워하게 되었지만, 육아라는 긴 터널을 지나가면서 엄마를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아이들 신경만 쓰면서 편안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엄마’로 사는 삶이 그리 쉽지 않았을 텐데 모든 걸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일, 남편과의 사이도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하루하루의 삶은 자주 절망스럽지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여자’로 사는 일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지요.      


때로 엄마들은 자식에게 보상심리를 가진다고 하지요. 

어떻게 키웠는데,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데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저는 반대로 ‘내가 얼마나 엄마 때문에 힘들었는데, 엄마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대출을 받고, 그걸 갚느라 퇴사하고 싶어도 꾸역꾸역 출근을 하며 버텼는데 엄마가 내 아이 정도는 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직장에 출근하는 나 대신 아이의 주 양육자는 당연히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제겐 보상심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의 엄마를 떠올릴 때 어떤 생각이, 감정이 먼저 떠오르나요?      


사랑하는데 이유가 없다고들 하지만, 저는 미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엄마와 딸의 관계는 너무 복합적이어서 쉽게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둘을 떼어 놓고 생각하기 힘들기도 하잖아요. 흔히들 애증의 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고요.      


당신은 어린 시절, 엄마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어쩌면 다른 자녀들 사이에서 차별을 받았을 수도 있고, 강압적인 양육을 받았을 수도 있고, 자주 맞았거나, 폭언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저처럼 끊임없이 경제적인 책임을 강요받았을지도 모르지요. 

어느 쪽이든 분명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자주 도망치고 싶고, 모른 척하고 싶은 순간도 불쑥불쑥 찾아왔을 거예요.      


아이를 낳고 엄마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용서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느 책에서 결국 용서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제야 그 말에 조금 동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를 용서한다는 게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엄마’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요.      


언젠가 원망 담긴 말을 엄마 앞에서 쏟아 놓았을 때 엄마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너네처럼 배우지도 못하고, 일을 해도 번듯한 일은 하지 못했잖아. 그러니 주변에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다 비슷한 사람들이고. 그러니 너네랑은 다르겠지.”

그 말을 할 때의 엄마의 목소리, 표정, 그 하나하가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나는, 나만 힘들었다고 생각했구나. 엄마는 당연히 엄마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잘 견뎌냈어야 했다고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아이 때문에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너무 힘들고 지쳐서 도망가고 싶은 순간도 많았습니다. 아이만 아니었다면, 지금 나의 커리어가 더 높아지고,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면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나의 엄마도 다르지 않았겠다. 

그 시절 엄마들에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억압과, 희생이 요구되었을 테니, 지금처럼 커뮤니티를 만들어 상황이 비슷한 엄마들이 모여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테니 참 힘들었겠구나.      

엄마가 되고 나서 엄마가 더 미워졌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분명히 ‘다른 방식으로’ 엄마를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의 욕망이 커질수록 엄마를 한 개인의 ‘여자’로 바라보게 된 것이지요.  

    

시대가 바뀌고, 여성들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가 많이 달라지고 있는 요즘도 엄마들인 우리는 매일매일 힘들다고 울먹이기도 하잖아요.      


엄마를 용서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오히려 엄마를 분리하고, 떨어져 바라보려는 노력을 통해 저는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엄마를 향했던 제 생각을 조금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존재라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미워했던 감정 때문에 느꼈던 죄책감도 차근차근 털어내 보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엄마가 미워서 힘든 그 감정 때문에 저처럼 죄책감을 갖지 않길 바랍니다. 

아마, 당신이 엄마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집을 나오거나, 결혼을 서둘렀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당신이 독립한 만큼 엄마가 당신으로부터 독립하지는 못했을지도 모르니까요.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고 또 다른 가정을 꾸리면서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 가는 게 자연스럽듯, 그리고 그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듯, 엄마에게도 자녀로부터 자신을 독립시킬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어떨까요.      


저는 지금 그 시간들을 건너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니에요. 그래도 예전처럼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화가 나거나 속상해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차분해지려고 노력해요.   

   

한걸음 떨어져서 저와 엄마의 관계를 들여다보려고 애씁니다. 

때론, 엄마의 요구를 무심히 넘겨버리기도 합니다. 예전 같으면 화가 나서, 불편해서 몇 날 며칠을 끙끙거렸을 거예요. 화해하고 가까워지려는 노력 대신 다른 사람을 대하듯 무심하게 그 감정들을 건너려고 연습합니다.      


휴대폰이 울리고 엄마의 번호가 뜨면 덜컥, 가슴이 철렁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당신도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지도요.      


고민하지 말고, 죄책감을 갖지도 말고 지금 당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결국, 울리는 전화를 받지 못한 당신의 손에 다부사 에이코의 『엄마를 미워해도 될까요?』라는 책 한 권을 올려 둡니다.      


출산할 때 부모님을 불러야 할지 고민한 끝에 부모님을 부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머니가 무슨 짓을 할지 불안해할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출산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모님은 정말 만나고 싶어 질 때, 아이를 데리고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어렸을 땐, 내가 아이를 낳을 때 부모님을 부르지 않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모두 함께 축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이상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에 언제 지고 들어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은 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의 편이 돼주려 합니다. 

- 다부사 에이코, 『엄마를 미워해도 될까요?』 중에서     


저자는 엄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합니다. 그 과정들 속에서 심한 내적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을 정도로 힘들어하다가 저자가 택한 건 엄마로부터의 도망이었습니다. ‘언제 지고 들어갈지 모르지만 지금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자신의 편이 되어 주기로’ 결심합니다.      


당신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당신 스스로의 편이 되어 주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나면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당신과 엄마의 관계를 바라볼 작은 용기 하나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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