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떠다 보는 건 어때요?
돌이 되기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둘째는 유행이라는 병은 차례차례 겪었습니다.
16개월 무렵 수족구에 거렸을 땐 “어린이집에 수족구 걸린 아이가 있습니다.”라는 공지를 받은 지 이틀 만에 수족구 판정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열이 나고, 발부터 수포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칭얼거림은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웠고, 잠시도 제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지요.
처음엔 아픈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시작해 ‘아, 이번 주는 휴가 내가 어려운데, 엄마한테 또 부탁해야겠다.’ 하는 현실에 대한 걱정으로, ‘아, 힘들다. 혼자 좀 쉬고 싶다’라는 우울한 감정으로 변해가면서 제 감정을 스스로도 달래기 어려웠습니다.
간신히 아이를 재워두고 혹시라도 깰까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잠시 책상 앞에 앉으니 뭔지 모를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누구에게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었어요. 그러니 그게 슬픔인지, 아픔인지, 외로움인지 저 조차도 잘 모르겠는 감정이었지요.
멍하니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해 봤어요.
큰 아이가 아플 때, 직장에서 일하다가 아이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아픈 아이를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던 순간들을요.
우리는 종종 시간은 지나갈 거라고, 지나고 보면 추억이 될 거라고 말하지만, 그 순간엔 그런 생각들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버겁잖아요.
저는 여행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잘 모르는 길을 가야 한다는 두려움,
낯선 환경과 마주해야 한다는 두려움이요.
그럼에도 결혼 전 혼자였을 때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아, 여행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습니다. 물론 거기엔 아무도 없이, 아이들 없이 ‘나 혼자’라는 전제가 늘 따라붙었지요.
아이들과 하루하루 함께 하는 일상은 자주 행복하지만 때론 많이 버거워서 현실에서 잠시 피해있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일이잖아요.
당신은 언제 여행이 떠나고 싶으신지요?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어쩌면 매일,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요즈음엔 왜 더 그런 마음이 드는지요.)
현실은 당연히 ‘안 돼!’ 혹은 ‘아이들과 모두 다 함께!’ ‘코로나 19 좀 안정되고 나면!’으로 끝나고 말지라도 말이지요.
여행이 주는 매력은 일상에서 벗어난 다는 데 있잖아요.
매일 마주하는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에서 한 발짝 벗어나 나를 모르는 낯선 사람들 틈에서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가볼 수 있다는 것.
「그냥 인생은 그대로 인생이다.
지독하게 자연스러워 지독해서 운명이라고 말해버리고 나면 오히려 괜찮아지는 그런 운명의 인생.
소설의 결과가 과하게 슬프거나 극단적으로 처절해도, 읽는 이의 삶이 그보다 더 슬프거나 처절해서 공감은 되어도 나의 감정은 변하지 않는 상황을 깨달으며 폴란드 맥주 한 잔 들이켰다. - 강병융 『도시를 걷는 문장』 중에서」
인생은 그대로 인생.
의미를 부여한다고 그 인생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그 인생이 허무해지는 것도 아닌데 엄마가 된 뒤, 제 인생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순간이 종종 있습니다.
마치 엄마가 되어서 내가 나이지 못하게 된 것인 마냥.
마치 엄마가 되어서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 마냥 말이지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쩌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저의 감정’에 대한 핑계 아니었을까요.
곤히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스탠드를 켰습니다.
흐릿한 불빛에 의지해 잠시 혼자 여행을 떠납니다.
방문을 열고 나가지도 못하는 여행이지만 괜찮다고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시간이니까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요?
그럼요. 알지요. 비행기를 타고, 아니 기차라도 타고 배낭 하나 메고 가뿐하게 걸어갈 수 있는 여행이라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그래도 한 번 상상해 봐요.
당신이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말입니다.
1970년 42일간의 가택연금형을 선고받았던 그 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방 안에서만 보내야 했던 무료한 시간들을 달래기 위해 재미있는 여행을 생각해 내요.
‘자신의 방’ 여행하기.
그리곤 천천히 방 안에서의 여행으로 빠져듭니다.
처음엔 ‘의자’로의 여행부터 시작해요.
얼핏 생각해 보면 좀 시시하잖아요. 내 방에서 그것도 ‘의자’라니 하고요.
그런데 점점 그 여행에 빠져듭니다. ‘의자’로 ‘침대’로 액자 속 ‘그림’으로 ‘책장’으로 말이지요.
「여행이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고 여건도 안 됐던 사람들, 아예 꿈도 꾸지 못했던 사람들, 그런 이들이 나를 보면서 여행할 마음을 낼 것이다. 행여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가 있어, 번거로울 것도 없고 돈도 들지 않는 즐거움을 만끽하자는 데도 나와 같이 떠나기를 망설이려나.
그러지 말고, 떠나자. 나와 함께 가자!
아픈 사람과 무심한 우정에 홀로 방구석에 처박힌 그대여, 보잘것없는 헛된 세상사를 털어 버리고 떠나자!
슬프고, 아프고, 외로운 세상 모든 사람이여, 나와 함께 떠나자!
게으른 자여, 그대도 일어나 함께 하자! 사랑의 배신을 겪고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과 담을 쌓으려는 음울한 생각으로 가득한 그대여, 밤의 상냥한 은둔자로 세상과 인연을 끊고 규방에 평생 틀어박힌 그대여, 그대들도 오라! 나를 믿고 그 음침한 상념을 떨치고 오라!
그렇게 해서 잃을 건 찰나의 지혜도 깃든 바 없는 순간의 쾌락뿐이다.
못 이기는 척해도 좋으니 이 여행을 같이하지 않겠는가.
로마와 파리를 보고자 그 먼 길을 수고스럽게 떠났던 여행자들을 비웃으며 우릴랑 하룻길 조금씩 가자!
우리를 가로막을 게 무언가. 우리 자신을 기꺼이 상상에 내맡기고 그가 이끄는 대로 가면 될 것을. - <내 방 여행의 좋은 점> 중에서, p15」
자, 이제 여행을 떠나 볼까요?
당신을 괴롭히는 여러 가지 현실, 걱정이나 불안 같은 감정들을 슬쩍 모르는 체하고 가만히 당신 스스로에게만 집중해 보는 거예요. 아니면 지금 방 안을 둘러보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물을 응시해보는 것도 좋고요.
당신의 책장에서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책 한 권 골라도 좋겠지요.
만약 마음이 움직여 지금, 떠나보기로 마음먹었다면
저는 당신의 여행길에 강병융 소설가의 『도시를 걷는 문장』 이 책 한 권을 동행시키고 싶어요.
도시를 걷는 문장과,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떠돌아다니는 문장과, 마음속의 설명할 수 없는 문장들이 뒤섞여 처음엔 길을 잃은 여행자처럼 흔들렸습니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천천히 뒤섞인 문장들을 조합해 봤어요. 물론 그건 제가 아니라 이 책이 해주었습니다. 길을 잃은 여행자를 두렵지 않도록 달래면서 천천히 그 길을 함께 가자고 다독여 주었어요.
이미 말했지만, 여행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저는 이렇게 누군가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해 봅니다. 먼 훗날 어쩌면 가 볼 수도 있는 곳. 그곳에서 자유롭게 걷고 있을 모습을 상상해 보는 거예요.
이 책 속에는 작가가 여행을 하며 읽는 책 속에서 찾은 ‘한 문장’과 ‘한 장소’가 글마다 삽입되어 있어요.
당신은 상상해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쩌면 저처럼 잠시 잠깐 정말 혼자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충만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제가 당신에게 선물해 드리고 싶은 순간입니다.
가보지 않은 곳이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곳이지만 저는 어떤 도시를 무작정 그리워하게 되었거든요.
만약 당신의 그 상상이 순간의 지침을 달래주었다면 꽤나 멋진 여행이었을 거라고 단언해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당신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없었다면 더더욱이요.
그리고 종종 그 여행을 떠나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한참 이 책에 빠져 있는 사이 아이는 여러 번 뒤척였지만 일어나 울음을 터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저의 이번 여행은 성공적이었어요.
상상 속에서 가능한 여행들이지만 상상하다 보면, 꿈꾸다 보면 책 한 권 옆에 끼고 유럽의 어느 도시를 여유롭게 걷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물론, 그전에 코로나 19가 사라지길 간절히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