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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Aug 07. 2020

자신감이 필요한 당신에게

- 힘을 빼요, 우리 


큰 아이는 딱 한 달 발레학원에 다녔습니다. 

말이 한 달이지, 일주일에 두 번 가는 거니까 여덟 번쯤 해본 셈입니다. 

‘나, 발레 배운다.’ 하는 순간 끝난 셈이지요.     

 

생각해보니 제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태권도만 너무 열심히 해서, 몸 선이 예뻐진다는 발레를 해보면 어떨까 넌지시 물었어요. 

아이는 호기심에 덥석,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거지요.     

 

등록하러 갔을 때,

"발레랑, 태권도는 같이 하는 걸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태권도는 몸을 단단하게 키우는 운동이고 발레는 몸을 얇고 가볍게 하는 운동이잖아요. 오히려 발레랑 수영을 같이 하길 권해요."라고 원장 선생님이 이야기하셨어요.     


그 말을 새겨듣고 덥석 거기서 등록하지 말아야 했는데, 아이는 처음 보는 발레 교실과 

발레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이이 반쯤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뭐, 그래도 한 번 해보죠." 하고 그 자리에서 학원비며, 발레복, 토슈즈까지 구입하고 돌아왔습니다.      


첫 수업 이후 아이는 자꾸 이런저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엄마, 아무래도... 이건 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가 핵심인. 

그래도 한 달 치 학원비는 냈으니 꾸역꾸역 아이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딱 한 달을 채웠을 때

맘 좀 붙이나 싶었던 아이는 "엄마, 나 이제 한 달했다. 그렇지? 이제 그만이지?"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머릿속으로 어떻게 꼬시지 생각했는데 겉으로는 

“하- 그래, 싫은데 말아야지.”하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집에는 아이의 발레복도, 토슈즈도 모두 거의 새것인 상태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걸 볼 때마다 생각해요.

‘나의 욕심에 아이를 끌어들이지 말자.’     


어릴 적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던지라 배우고 싶은 걸 모두 배울 수 없었어요. 

게다가 발레라니. 꿈도 못 꿀 일이었지요.      


자라면서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는 꼭 가르쳐봐야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럴 게 아니라, 어른이 되었더라도 그게 굳이 사는 게 필요한 게 아니었더라도 하고 싶었으면 그냥 제가 성인 발레 학원을 찾아가는 게 더 맞는 거였는데 말이지요.      


엄마들이 아이를 키울 때 자신이 해보지 못한 걸 가르치면서 ‘나는 못했지만, 내 아이는 다 하게 해 줄 거야.’ 같은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공허해지지요. 

그건 아이가 하는 거지, 제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아이가 그리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고 말이지요.     

 

나는 너무 늦었어,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엔 우리가 살아갈 날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았지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너무 늦은 거였을까요?’

아닐 거예요.      


저는 이십 대엔 서른이 되면 굉장히 어른이 되어 있을 것 같았고, 

서른이 되었을 땐, 마흔이 되면 제 자신의 역량이 커져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마흔이 되고 보니, 여전히 엄마로서 서툴고, 직장에서는 선배들과 후배들 사이에 끼어 버벅거리고, 가정에서는 집안일도, 직장일도 잘하고 싶어 종종 거리고 있었습니다.      

결국엔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서툴고, 배워야 할 게 많구나. 그리고 쉽지 않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니까요. 

저에겐 이십 대의 열정도, 삼 심대의 당당함도 쌓여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사십 대에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충분히 새로 시작할 수도, 배울 수도 잘 해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드는 거예요.      


너무 잘해야지, 다 해내야지 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말이지요. 

처음부터 서투르고 어설프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해보자, 마음먹고 나니까

무슨 일이든 시작하는 게 두렵지 않아 졌습니다.   

   

중간에 멈추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무언가를 잘하고 싶어서, 그래야 ‘나 자신을 내세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 하나를 내려놓았는데 

삶을 대하는 태도, 가고 싶은 방향이 달라졌어요.    

  

지금 현실이 암담해서, 이것저것 이뤄놓은 건 하나도 없는데 나이만 먹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혹시 불안해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시작하는 게 두렵고, 시작 앞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며 뒷걸음치고 계신 건 아닐까요.  

    

온 마음을 다해 잘 해내고 싶은 당신 앞에 슬쩍 이 책 최민영의 <<아무튼, 발레>>를 내밀어 봅니다. 

 

최민영, <<아무튼, 발레>>


저자는 어느 주말, 무료하게 낮잠을 자던 중 '내가 잠이 많고 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정말 낮잠은 이제 지겹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곧 마흔 살, 청춘과는 이미 멀어진 나이고 어차피 죽으면 썩어서 사라질 몸인데 참 쓸데없이 주저하는 일이 많구나 회환이 밀려와서. 그래서 발레를 배우기로 결심했다고 해요.      


한 달만 해보고 괜찮으면 계속하라는 발레 학원 선생의 말을 뒤로하고 그 자리에서 3개월 일시불로 결제를 하고 발레 학원에 발을 들였지요.      


그렇게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자는 발레를 합니다.    

  

「무릎 뒤를 쭉 편 상태에서 상체를 최대한 길게 뽑아내는 기분으로 배꼽을 허벅지에, 코를 무릎에 붙이세요. 숨을 내쉬면서, 후우. 

이번엔 앉아서 다리를 옆으로 하고 상체를 최대한 앞으로 보내세요. 중요한 건, 머리나 가슴 말고 '배꼽'을 땅에 붙이는 거예요. 그래야 고관절이 펴져요."p42」    

 

하아- 책을 읽다가 이 자세를 혼자 따라면서 낑낑거렸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재밌어서 혼자 큭큭 웃고 말았지요.     

 

우리가 자주 놓치기는 하지만, 

사소한 일상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별것 아닌 경험을 통해서도 삶의 자세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앞으로 발레를 배우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은 자세가 있습니다.     

 

「플리에는 스스로를 높이겠다는 마음으로는 스스로 높아지지 않는 삶과 참 많이 닮았구나, 생각할 때가 있다. 내려올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올라갈 수 있는 힘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바워크의 플리에를 하면서 가금 불전에서 108배를 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나 자신을 최대한 낮춤으로써 사실은 스스로를 강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닮아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플리에'의 순간이 있는 게 아닐까. 낮아지고, 떨어지고, 주저앉는 순간들 말이다. 원하던 일을 얻지 못했을 때,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어그러졌을 때, 사랑이 어긋났을 때, 누군가에게 거절당했을 때, 그건 넘어지는 게 아니다. 그저 각자의 '플리에'를 하는 거다. 높이 뛰어오르는 순간이 있으려면 플리에를 꼭 거쳐야 하고, 내려와야 할 순간에도 플리에는 꼭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에는 '오늘은 꽤 깊은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생각하곤 한다. 플리에 같은 그 시기를 잘 지난다면인생의 속근육도 자라는 것이겠지. - <오늘은 꽤 깊은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 중에서, p62   * 플리에 : '구부린'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양 무릎 또는 한쪽 무릎을 굽히는 동작」           

    

'오늘은 꽤 깊은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

이 문장이 예뻐서 다이어리에 적으면서 언젠가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 이 문장을 다시 떠올려야지 생각했습니다.      


‘이 시기를 잘 견디면 좋아질 거야. 더 단단해질 거야.’ 생각하기로 했어요.      


저자는 언젠가, 한 십 년 뒤쯤 '실버 아마추어 발레단'이 생기면 창단 멤버 오디션장에 서 있을지도 모를 자신을 상상한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 굽은 등을 곧게 펴고 땀을 흘리며 수줍게 발레 바를 잡고 선 저를 상상해 봤어요.      

혼자여도 좋고, 아이와 함께 여도 좋을, 어쩌면 오랜 후의 제 모습을요. 

상상만으로 힘이 나는 장면입니다.     

 

오늘도 힘들었을 거예요. 


아니, 어쩌면 사는 매일매일이 고단할지도 모르죠.    

  

마음의 긴장을, 몸의 힘을 잠시 후욱, 빼보면 어떨까요?     


「온 근육을 긴장시키며 힘을 가득 채우기보다 호흡을 하며 숨을 불어넣는 방법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가수 박진영이 말한 '공기 반 소리 반'이 이거였나 싶었다. 내지르고 채우려는 강박이 아닌, 조금은 비우고 덜어내는 소리가 편안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쁜 습관이 한 번의 깨달음으로 짜잔 바뀌는 건 아닌지라, 여전히 몸에서 힘 배라는 지적은 지겹도록 듣고 있다. 불교도가 되기로 결심했대서 갑자기 마음이 하해처럼 넓어진다거나, 기독교도가 되기로 하면서 갑자기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내 걸로 만들려면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높이 뛰어오르거나 다리를 차올리는 동작을 할 때도 힘이 필요한 부분만 주고 나머지는 힘을 빼야죠. 그래야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어요."

그럴 수 있는 날이 오겠지내 마음이 달라진 것처럼몸의 움직임도 가벼워질 날

- <고백하자면 나는 힘 빼기를 두려워했다.> 중에서, p112」  

   

때론, 힘주는 연습보다, 힘 빼는 연습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후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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