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괜찮은 엄마로, 때론 불량엄마로 살기로 했다
아이를 재워야 간신히 찾아오는 혼자만의 시간은 늘 부족하기 때문에 가끔은,
졸려하는 아이를 옆에 두고 책을 펼치거나 일기를 쓴다.
아이 역시 엄마와의 시간이 고픈지라 어떻게든 엄마 옆에서 더 오래 있으려고 졸린 눈을 부릅뜬다.
아이의 마음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눈이 말똥말똥 해지는 아이.
아이가 잠들면 책을 읽어야지, 내일 출근 준비를 미리 해놔야지 같은 계획들은
말똥말똥 눈을 뜬 아이 앞에서 아무런 힘을 내지 못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갈등한다.
포기하고 불을 끄고 아이 옆에 눕는다.
아이를 그냥 앉혀두고 내 할 일을 한다.
아이에게 혼자 자라고 하고 내 할 일을 한다.
예전엔 거의 대부분 첫 번째를 선택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다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는 선택.
그건 늘 아이가 먼저, 고려된 선택이었다.
여전히 무조건 둘 중 하나만 선택해!
‘아이’ 아니면 ‘나’ 중 무조건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마 어쩔 수 없이 아직은 ‘아이’ 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육아를 하다 보니 ‘절대’라는 건 없었다.
상황은 늘 바뀌고, 모든 일에는 틈이라는 게 있었다.
아등바등 다 맞춰서 잘하려고 할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마음을 조금 내려놓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와 어느 정도 대화가 되는 지금은 먼저 아이에게 묻는다.
지금 졸린지 아닌지, 엄마가 옆에 없어도 잘 수 있겠는지, 잠깐 엄마가 하는 일을 옆에서 보고 싶은지.
아이가 원할 때 무조건 아이를 봐주는 게 ‘좋은 엄마’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잠시 ‘나’는 내려두고 온전히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에게 보이는 것.
아이에게 좋은 게 엄마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생각.
아이에게 묻기 시작하니 그때그때 아이의 대답이 달랐다.
늘 엄마를 원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는 어느 날엔 혼자 잘 수 있다고 했고, 어느 날엔 금방 잠들 것 같으니 자기가 잠이 들면 나가라고 했고, 어느 날엔 아직 안 졸리니 엄마 하는 거 보다가 졸리면 자겠다고 했다.
TV 프로그램 ‘한끼줍쇼’에 출연한 이효리가 길에서 만난 초등학생에게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말하는 걸 듣고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그 말이 어쩐지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 말을 ‘엄마’라는 이름 앞에 가져다 붙여 보니 ‘뭘 좋은 엄마가 돼. 그냥 아무 엄마나 돼’라는 문장이 만들어졌는데, 좋다, 싶으면서도 그래도 되나? 싶은 불안한 마음이 되었다.
그 말을 차마 내뱉을 수는 없을 것 같은 마음.
‘좋은 엄마’가 어떤 엄마인지도 모르면서,
‘좋은’이라는 말에 매달려 스스로를 채근하고, 자책하던 시간들이 많았다.
내가 나의 엄마를 바라보면서 ‘좋은 엄마’라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쁜 엄마’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나는 늘 엄마가 필요했지만 좋은 엄마가 필요했던 게 아니고 그냥 ‘엄마’ 면 됐던 것 같다.
그게 엄마가 아이에게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매력이지 않을까.
'나는 그냥 너의 엄마야.'
그러니 우린 아이에게 지금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다.
애써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면서 스스로 자책하고, 반성하고, 후회하는 일들은 그만 멈춰도 되지 않을까?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 중, 별 것 아닌 일로 버럭 화를 내곤 돌아서서 엄마인 나는 미안해하고, 후회하고, 반성한다. 아이가 상처 받지 않았을지 걱정하고 아이 눈치를 본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한테 혼난 게 서러워서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도 ‘나는 엄마가 좋아’ 라며 다가와 안긴다.
엄마가 '좋은 엄마'라서가 아니라 그냥 ‘엄마’라서 좋은 아이들이 있다.
엄마인 '나'만 '좋은 엄마'라는 프레임이 갇혀 제대로 '나'의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머뭇거리면서 살고 있었던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