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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Sep 29. 2020

한 명은 낳았지만, 두 명까진 생각 못했어

- 당신의 안녕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길 

아이가 여섯 살이 되면서 대화라는 게 가능해지고, 아이 혼자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지면서 

“그래, 이제 다 키웠다. 됐다!” 싶었다. 


드디어 내게도 자유라는 게 찾아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우리의 일상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전히 바빴고, 자주 힘들었지만 아이 한 명을 양육하는데 양가 어른들의 약간의 도움과 부부의 협력이 있으면 그럭저럭 견딜만하기도 했다.      


가끔은 시간을 나눠 육아를 하고 각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다는 걸’ 잠시 잊었다.    

   

첫째 아이를 낳고 우리 부부도 둘째에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혼자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 

그래도 둘이 낫지 않을까. 

어머님이 아들 손주 한 명 바라시는 것도 같은데......      


고민 끝에 

“그래, 한 명만 잘 키우자. 둘째는 없어!”하고 결론을 내렸다. 


둘이 벌면 아이 한 명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게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분명히 피임 잘했잖아. 그렇지? 아닐 거야.”    

 

우리 부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백 프로 완벽한 피임은 없었다.     

 

서른여덟 살 봄, 나에게 찾아온 새로운 생명이 있었다.      

첫째 아이는 친정에서는 하나뿐인 손녀였다. 세 살 터울의 언니는 비혼 주의자였고, 

가까운 친지들 중에도 어린아이는 첫째 아이뿐이라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가끔 하는 말이

“엄마, 나는 동생 없어도 돼” 였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걱정 마. 동생은 없을 거야!”    

  

졸지에 아이에게는 거짓말쟁이 엄마가 되었고, 

‘곧 마흔인데.... 나 이 아이를 잘 낳을 수 있을까? 아니, 낳는 건 그렇다 치고, 친정 엄마도 몸이 별로 좋지 않은데 이 아이는 누가 키우지?’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 첫째 아이를 옆에 앉혀두고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아이의 반응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고작 여섯 살의 반응인걸 ' 그렇게 생각하기엔 그 정도가 심하다 싶을 만큼.      

그 이후로도 뱃속에 둘째를 품고 있는 내내 아이는 동생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내가 조금만 힘들어해도, 

“것 봐. 엄마 배 속에 아기가 있으니까 힘들지.”

피곤해하는 기색만 보여도 

“동생 미워!”라고 반응했다.  

    

그러니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피곤해도 괜찮은 척하며 태교는 꿈도 못 꿀 일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2018년 2월 우리는 네 식구가 되었고,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여전히 직장인인 채로.    

  

새로 시작하는 육아는, 게다가 나의 마흔에 하는 육아는 상상보다도 더 가혹했다. 

우선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꼈고, 첫 아이 출산 때보다 쉽게 감정이 오락가락했다. 


첫 아이 마음을 달래느라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일에 소홀해지게 되는 것도 나를 힘들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토요일에 저녁에 출산을 하고 월요일 오전에 퇴원을 해서 그날 오후부터 큰 아이 유치원 픽업을 갔다. 

조리원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산후조리 역시 딴 나라 이야기였다. 


큰 아이는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아이의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터울이 좀 있으니까 수월하겠다.”

“언니가 동생 예뻐하겠네.”

주변 사람들의 말은 모두 틀렸다. 적어도 나의 아이의 경우에는.   

   

6년 동안 혼자 받던 사랑을 나누는 일이 아이에겐 버거운 일 같았다.

다른 사람은 몰랐을지 모르겠지만 엄마인 나는 아이의 그 마음이 너무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아이를 낳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3개월. 

출산휴가 3개월이 끝나면 바로 복직을 해야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게다가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떻게든 아이 마음이 조금이라도 안정되기를 바랐다. 


나의 바람대로 라면 아이가 동생을 예뻐하고, 엄마가 동생 우유 먹이는 순간엔 잠시 기다려 줄 줄도 알고, 혼자 책도 읽고, 엄마 옆에서가 아니라 혼자 잘 노는 아이여야 했는데 그건 그냥 엄마인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결국 둘째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모유수유를 포기했다.      

온전히 첫째 아이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분유를 먹이면 내가 없어도 아빠 혼자 충분히 아이 케어가 가능하다는 생각도 반 이상 차지했다. 첫째 때는 그렇게 안 나오던 모유가 둘째가 태어난 뒤에는 빵빵하게 차올랐다. 매일 뭉치는 젖가슴을 부여잡고 아이 몰래, 남편 몰래 훌쩍이다가 결국 손들고 말았다.     

 

모유를 먹이지 않는다고 해서 신생아에게 엄마가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내 몸은 순간이동을 하듯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고, 그럴수록 울적해졌다.


감정이 회복되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아무도 나에게 혼자 감당하라고, 힘들어도 참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엄마니까.     


첫째 아이는 다시 아기가 된 것처럼 굴었다. 동생이 젖병에 분유를 먹으면 자기도 젖병에 우유를 달라고 했고, 동생을 안아 재우고 있으면 자기는 왜 안 안아주느냐고 속상해했다. 아침이면 엄마랑 동생은 집에 있는데 왜 자기만 유치원에 가야 하느냐고 울었고, 유치원 차도 타고 싶지 않으니 꼭 엄마가 걸어서 데리러 와야 한다고 부탁했다.      


잠을 자는 걸 포기하고, 혼자 하는 외출을 포기하고, 두 아이에게 매달렸던 출산휴가 기간 3개월은 휴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았고, 버거웠다.     

 

신랑은 육아 참여도가 높은 편이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자주 아빠보다는 엄마를 찾았다.      


아이들이 잠든 틈에 갖는 짧은 시간만이 유일한 자유의 시간이었으나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둘째는 수시로 깨서 울었고, 둘째가 깰 때마다 첫째까지 같이 일어나 “잠을 못 자겠잖아!”하고 울어댔다.      


옆방에서 편하게 자고 있는 신랑이 이유 없이 미워지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휴가 중이고, 신랑은 출근을 해야 했으니 어떻게든 혼자 두 아이들 다 데리고 자면서 괜찮은 척하려고 애썼다.      


거울을 볼 시간도 없었지만 화장실에 오갈 때마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둘째를 낳고 푸석해진 피부는 둘째 치고, 내 표정이 내가 보기에도 우울해 보였다. 

매일 괜찮은 척했지만 자주 괜찮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괜찮은 척이 아니라 진짜 괜찮아지고 싶어 졌다.


억지로 짓는 미소가 아니라 진심으로 환하게 웃어주고 싶어 졌다. 

아이들에게, 출근하는 신랑에게, 그리고 ‘나’에게.    

  

괜찮지 않다면,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 졌다. 

억지로 웃고, 참으면서 나 혼자 곪아가는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을 미워하고, 아이에게 순간순간 짜증을 부리면서도 ‘참아야 해’라고 생각하는 내가 답답했다.      

누가 시켰어?

누가 너보고 참으래?     

이런 말들을 할 것만 같아서 더더욱 나를 지켜내야겠다, 아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이, 엄마가 된 뒤의 나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첫 시작이었다.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한 명의 아이를 키울 때와 두 명의 아이를 키울 때 나는 분명히 달라졌다. 

그만큼 행복도 더 컸는지,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다. 

더 바빠졌고, 자주 울적해졌고, 틈만 나면 혼자 숨고 싶어 졌다.   

   

가끔 둘째를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이들을 만난다. 

정작 보인보다 주변에서 둘째도 낳아야지? 하는 오지랖에 괜한 고민이 더해지는 경우도 봤다.      

각자의 형편과 상황이 다르니까 둘째를 선택하는 건 온전히 그들의 몫인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래도 둘이 (아주 가끔이지만) 다정하게 노는 거 보면 잘했다 싶기도 해.” 같은 말을 내뱉었다. (둘째가 29개월쯤 되고 살만해지니 든 생각일 거다.)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나 역시 여전히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일이 자주 버거우니까.      

어느 쪽이든, 어떤 선택을 하든 이제야 말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다.      


결국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 

나는 그게 아이들을 위한 책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부모가 된 이상 우리들은 좋든 싫든 최선을 다해 양육한다. 그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안녕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괜찮은 척 말고, 진짜 괜찮게 살자.     

 

요즘 나의 목표는 그거다.      

‘척’ 하지 말자는 것. 


지금도 모유수유를 포기했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래도 내 선택은 같았을 거다. 모유수유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엄마로서의 모성의 충만함을 조금 더 오래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첫 아이에 대한 미안함은 그대로 오래 지속됐을 거다. 

퉁퉁 불어 딱딱해지는 젖가슴을 매일 밤 마사지하며 눈물을 흘렸을 거고,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우울했을 거다. 모유수유가 모성의 척도인 양 들이대는 시선들을 과감히 무시하고 우선 엄마인 ‘나’부터 챙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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