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부터 교내외 백일장에 나갔다.
백일장에서는 대부분 주제가 주어지고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절에 쓴 글들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드문드문 기억나는 글감이 있다.
중학생 때 시에서 주관한 백일장 대회 글감은 '아버지'였고, 고등학교 때 한 대학에서 주관한 백일장의 글감은 '공원'이었다. 대학 입학시험에서 역시 주제가 주어졌다. ‘거짓말’
백일장이나 대학입시 시험 대부분 주어진 시간은 90분. 90분 안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내야 했다.
주제가 주어지면 짧은 시간 안에 글이 될 만한 모든 글감들을 끄집어내 연습 노트에 적고 한 문장씩 만들어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곤 했다.
우연 1기를 기획하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주어진 글감을 놓고 이야기를 만들 때 밑그림 그리듯 소재를 나열하던 순간의 긴장 같은 것들.
모임을 기획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모임을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무엇을'과 ‘어떻게’는 실은 내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쓰는 이들의 몫이었다. 내가 “이번 주는 ‘음식’에 대해 써보아요” 하고 던지면 쓰는 멤버들은 그 주제을 받아 들고 일주일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글을 쓰는 멤버들이 그 사이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백지 위에 수없이 많은 재료들을 올려두고 고르고 고르며 소중히 한 문장씩 빚어내지 않았을까.
‘아, 이번 주제 너무 어려워요.’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매주 월요일 새벽이면 그 주의 ‘주제’을 만났다.
백일장처럼 90분의 시간이 주어지든 일주의 시간이 주어지든 자신에게 주어진 주제를 안고 주어진 시간 안에서 쓰려고 애썼다.
글을 쓰기 위해 온 몸의 더듬이를 세우고 주변을 관찰하는 일, 사소한 물건 하나도 소재가 되지 않을까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일, 우연히 지나치는 사람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일,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구두코를 유심히 살펴보는 일, 애인의 사소한 한 마디, 아이들의 어제와 다름없는 투정도 유심히 마음에 담는 일, 매일 걷던 길을 천천히 되돌아 가보는 일,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사소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 길가에 핀 꽃 한 송이에 눈길을 한 번 더 주는 일......
글을 쓰기 위해, 글감을 찾기 위해 글쓰기로 채워가는 시간을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아주 작은 것조차 소중히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이들일 거다. 그 사소함이 모여 하루를 만들어 내는 당연한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사람들, 그걸 알기 전과 알고 난 후가 다름을 경험한 사람들. 그러므로 글을 쓰지 않는 시간조차 우리는 이미 글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가 누군가 정해주는 주제가 아니라 스스로 주제를 찾아내는 일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 모임 시작 첫 주와 두 번째 주에는 단어와 문장 모으기 연습을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1. 첫 주, 일주일 동안 매일(매일과 시도 때도 없이가 중요하다) 떠오르는 단어, 문장을 기록한다. 완벽한 문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2. 두 번째 주가 되면 첫 주에 모았던 단어, 문장 중에 이야기로 쓴 것들을 골라 한편의 에세이를 쓴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각자가 모은 단어와, 문장들을 서로에게 공개했다. 내가 관심 있던 단어, 내가 보던 사물, 내가 느낀 감정과 다른 누군가 느낀 비슷함을 찾아보기도 했고, 그대로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실시간 댓글을 달 듯 공감하는 마음이 되기도 했다.
각각의 사연을 품고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온 단어들이 서로 끌어안고 위로를 건넨다. 절망과 좌절, 실패와 방황, 시련과 고독, 고통과 가난과 우울이 모여 앉아 지나온 삶의 무게를 잰다. 헐벗고 굶주린 저 많은 단어의 무게가 내 인생의 무게다. - 유영만, <<책 쓰기는 애쓰기다>>, 나무생각, 2020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글을 쓰기 위해 채우는 시간들을 자주 상상하곤 했다.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이후에 생긴 습관이다. 커피숍에서 글을 쓰다가 ‘누군가도 지금 달콤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글을 쓰고 있겠지’ 생각하면 괜히 힘이 나기도 했다. 누군가 찾아낸 단어가 그 사람의 삶의 어느 부분을 채우고 있을까 생각하며 멀리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우리가 모아둔 단어들은, 그렇게 찾아낸 글감들은 결국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문장들로 바뀐다. 그리고 그 문장에 기대어 또 성큼, 오늘의 삶 속으로 뛰어든다.
‘쓰려고 애쓰는 일’이 종종 ‘살려고 애쓰는 일’처럼 느껴지곤 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일이 모두 글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 안다.
우리는 쓰지 않는 순간에도 글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