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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Jan 30. 2022

글쓰기 동지가 늘어가는 기분

함께 쓰는 기쁨

단테 님은 글쓰기 모임 '우연'의 1기 멤버였다.

두근두근 모집 공고를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요!' 하고 손 잡아주셨다.

 

이미지 출처 : pexels

문학 제도권 교육을 받았던 나의 '글쓰기 세계'는 교실 안, 스무 명 남짓의 동기들과 삥 둘러앉아(언제나 중심엔 교수님이 계시고) 그날 우리 앞에 놓인 학우의 작품에 대해 세 시간 남짓 쉼 없이 말과 말을 늘어놓는 세계였다.

글 쓰기 시간에 글 보다 '말'이 앞서는 경험은 오래도록 '합평'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했다. 


"이 글엔 비문이 많습니다."

"이 글에서 글쓴이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너무 깁니다."

"가독성이 떨어져요."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 많습니다" 

"너무 뻔한 주제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런 말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했을까 싶다.

그것도 글 쓴 사람을 앞에 두고. 둘러(좋게) 표현해보자면, 우리 모두는 그때 열정에 가득 차 있었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자신만만함도 있었고, 누군가의 글에 대해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줄 알았다.

(커리큘럼의 일부분이었으니까).


합평을 하다 보면 물론 그런 말들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우리가 놓친 건 글과 작가를 분리하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맴돌았던 게 아닐까 싶다. 

(아니, 다른 학우들은 모르겠다. 내가 그랬던 같다.) 

내가 하는 말이 글에 대한 말인지, 글을 쓴 사람에게 했던 말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게 합평 수업이 끝난 뒤 

늘 개운치 않은 감정을 가지게 했다. 


'글'을 '글과 말' 그리고 '마음'으로 나눌 때 진심이 느껴지고, 상처받지 않는다는 걸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알게 됐다. 


단테 님과 처음 쓴 글의 주제는 '페이크 에세이(Fake _ Essay)'였다.

글쓰기 모임 '우연 1기'의 첫 글이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처음 만나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일은 때론 글쓰기보다 괴로움에 가까울 수도 있어서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자기 글인 듯, 지어낸 이야기인 듯 쓰기.


그때 단테 님이 쓴 글은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날 밤 처음으로 마주한 대도시의 밤은 더 큰 세상을 보라며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로 마무리되었다. 


국경을 넘는 가족의 이야기는 에세이인 듯 소설인 듯 서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글의 분위기도 좋았고, 나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스토리라서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다.


글을 읽고 어떤 피드백을 드려야 할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내가 쓴 문장은 '중간에 이야기가 생략된 것 같아 아쉬웠어요.'였다. 세상에. 결국 교실 안에서 동기들과 할 때 하던 말을 그대로 쓰고 말다니.

물론 좋았다는 말을 여러 번 덧붙였지만 끝내 아쉬웠다.


그 후 우리는 4주 동안 함께 글을 썼고,  다음 글도 그다음 글도 단테 님의 글을 읽는 일이 즐거웠다.

첫 모임이 끝나고 오래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는데 얼마 전 반가운 연락이 왔다.

쓴 글들을 모아 출판한 책 한 권과, 메시지와 함께. 

목요일 그녀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글쓰기 모임이 끝나고 해 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쓰는 일은 분명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말씀이오!
다시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제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게 되었고, 글을 쓰고 고치고 고민하는 취미를 일상으로 만들게 되었거든요. (중략) 
제가 글을 꾸준히 쓰고 남들에게 보여주는 재미를 알게 된 게 '우연'을 통해서라서 목요일 그녀님은 개인적으로 저에게 너무 감사한 분이세요... (하략)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사이에도 단테 님은 단테 님 자리에서, 나는 내 자리에서 계속 쓰고 있었다.

그 결과물을 받고 뭉클했다. 결과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까지 단테 님이 쓰느라 보냈을 무수히 많은 낮과 밤이 떠올라서. 내가 쓰고 싶었던 글감 앞에서 명확하지 않은 문장들과 씨름하느라 괴로워 했던 그 시간이 떠올라서.


나는 내가 했던 말 중, 혹시 상처받았을까 걱정했던 부분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단테 님은 내가 전했던 말 중 본인에게 필요했던 말을 기억하고 계셨다. 

어쩌면 우리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작품을 앞에 두고 말과 글로 오가는 동안, 상처인 줄 알았던 그 순간이 실은 진짜 스스로에게 필요한 경험이었다는 걸. 


오래전,  합평 시간 경험했던 날카로웠던 기억들이 지금의 내게 좋은 영향으로 남은 거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있다. 쓰지 않고도 잘 살았는데 쓰다 보니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을 만난다. 나는 그 순간이 바로 진짜 글쓰기가 시작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글쓰기 모임 우연의 1기부터 7기까지 진행하면서 지금도 함께 하는 분이 있고, 한 번의 모임 이후 함께 하지 않는 분도 있다. 함께 하든, 함께 하지 않든 우리는 글로 연결되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을 거라는 것도 이제 확실히 알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글 쓰는 동지들이 늘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그 기분은 묘하게 짜릿하다. 든든하다. 


글 쓰기 동지를 만나는 기분, 그 짜릿함을 경험하고 나니 글쓰기 모임을 멈출 수가 없다.

어디서든 쓰고 있을 우리의  동지들, 새해에는 다시 열심히 쓰리라 다짐하고 있을 그들의 글을 계속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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