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시작하는 마음
아이는 자주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냐고.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엄마는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어.”
그렇게 대답하고 나면 괜히 가슴 저린 느낌이 들고는 했다. 생각해보니 내 대답은 늘 과거형이었다.
직장인으로 산 지 19년 차, 일하는 엄마로 산 지 11년 차. 행복과 우울, 기쁨과 슬픔이 자주 뒤섞이는 경험을 했다. 자신을 챙기며 사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사는 시간이 많았다. 엄마, 아내, 직장인으로 정의되었으며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조차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엄마라서 꿈이 없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를 자꾸 뒤로 미뤄두고 살아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부모 참관수업에 참여했다.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앞에 나가 자신의 꿈을 발표했다. 그때 아이는 씩씩하게 앞으로 나가더니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직 제 꿈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저것 경험하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순간 교실에 모인 학부모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박수가 나왔다. “와 멋지다!”하며 추임새를 넣어 주시는 분도 계셨다. 발표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의 표정은 밝았다.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아이를 보니, 아이는 꿈이 없어서 슬픈 것 같지 않았다. 문득 아이의 씩씩함과 당당함이 부러웠다. 꿈이 없다고 말해도 ‘괜찮아, 크면서 생기겠지.’하는 희망적인 말을 들을 수 있는 나이라는 게 부러웠다. 무엇을 꿈꾸든 이룰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가장 부러웠다.
꿈 없는 삶이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닌데, 꿈이 없다고 슬퍼하는 나 스스로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슬프게만 살 수 없어서, 시시하게만 살고 싶지 않아서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어떤 직업, 어떤 지위를 갖는 게 내 꿈이 아니다. 직장에서 팀장이라는 직함을 얻어도, 승진을 해도, 엄마로 경력이 쌓이고, 아이들이 자라고, 나이가 들어도 내가 원하는 삶의 전부가 될 수는 없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결국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아닐까?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다는 마음. 돈이나 명예를 얻는 일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워진다면 말이다. 자기 자신을 시시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결국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다. 그럼 어디서 시작하지? 간단하다.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일을 찾아야 한다. 이 말은 또 이렇게 변주될 수 있다.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 청년기에도 좋고 중년에도 좋고, 노년에도 좋은 일. 그런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게 가능해?'라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를 먼저 물어보자. 좋은 삶을 원하면서 왜 그런 전제를 설정하지 않는가? 늘 꿈을 꾸라고, 꿈은 이루어진다면서 왜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가? 일단 생각을 그 방향으로 돌려 보자. 그러면 차츰 그쪽으로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게 우주의 원리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길이 열리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 『읽고 쓴다는 것, 그 통쾌함에 대하여』, 고미숙, 북드라망
이제 내 꿈은 ‘무엇이 되고 싶다’는 단순한 말로 규정되지 않는다. 다시 꿈을 꾸니 꿈에 대해 생각하는 ‘내 마음’이 보였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앞세우기보다 어떤 방향으로 나의 삶을 이끌어가고 싶은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천천히, 꾸준하게 걸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목표한 지점에 도착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끝내 이룰 수 없는 꿈 일지라도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는 것. 삶의 만족을 위해 기꺼이 매일 실패해도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용기면 지금은 충분한 것 같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대신 직업이나 지위 말고, 갖고 싶은 것 말고 자신이 걷고 싶은 삶의 방향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기억하자. 당장 눈앞에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일이어도 상관없다.
그게 오늘의 나와 당신, 내일의 나와 당신을 조금 더 빛나게 해 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