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후 ‘아이가 어릴 때부터 책 읽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주변 엄마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책 읽어주는 데 열심이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모임도 많다. 내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한가 싶어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다. 누구에게나 책이 찾아오는 순간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게 책이 찾아 온건 열일곱 살 때였다. 동네에 팬시점을 같이 운영하는 서점이 있었다. 친구들을 만날 때면 약속 장소로 자주 정하는 곳이었다. 그날도 친구와 약속이 있어 들렀다가 친구가 늦게 와서 시간을 때우려고 서가를 돌았다.
그때 눈에 띈 책이 소설책이었다. 한 여자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던 표지를 보고 마음이 끌렸다. 친구들과 간식 먹을 돈을 털어 책을 구입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명확한 답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연이라고 밖에는. 그게 내게 각인된 책 읽기의 시작이었다.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구입한 첫 책은 그날 이후의 나를 변하게 했다. 소설이 뭔지도 모르면서 도서관에 가서 소설책을 빌려 읽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 게 신나서 쉴 틈 없이 읽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꿈이 생겼다. ‘아, 나는 소설가가 되어야겠다.’
책이 내게 부린 첫 마법이었던 셈이다. 이후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게 됐고, 늘 책이 가까이 있었다. 그때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서인지 오히려 책이 주는 즐거움을 몰랐다. 텍스트는 어려웠고 소설 쓰기는 더 어려웠다. 그럼에도 차곡차곡 쌓은 읽기 경험은 지금의 내게 분명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불현듯 책은 찾아온다. 책이 찾아오는 순간이 모두 다른 것처럼 책이 자신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시기도 모두 다를 거다. 정답은 없다. 옳은 시기도 없다. 대신 자신에게 그 순간이 찾아온다면 아쉽게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래 책을 많이 읽던 사람이니까 가능했던 거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다 보니 부캐가 생겼다’는 말은 진짜다. 오래도록 내가 읽었던 책들은 소설이거나 육아서였다. 거기서 끝났다면 독서의 즐거움과 독서가 주는 힘도 딱 거기까지만 느꼈을 거다.
책을 읽다 보니 하나의 분야가 아니라 여러 분야의 책들이 궁금해졌다. 육아를 하면서 경험한 '여성과 엄마로서 사는 삶은 왜 이리 힘들지.'에 대한 답을 더 이상 육아서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답을 찾고 싶었다. 앞서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했다. 궁금해서 읽다 보니 조금씩 나의 세계가 넓어졌다. 읽은 내용을 잊어버릴까 기록을 했다. 기록이 하나 둘 쌓이자 나만의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갑자기 독서모임을 시작하고 부캐라고 내세울 수 있었던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쌓여 온 기록들이 지금의 ‘목요일 그녀’를 만들어주었다.
부캐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책이 주는 확장성을 믿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무궁무진한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따라다니다 보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 잘하고 싶은 일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
이미 목표가 있는 사람이라도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들이 쓴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식과 노하우를 얻게 될 수 있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멈춰 있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준다. 누군가의 경험, 지혜, 실패의 기록들은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 이상으로 풍부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
지금 자신의 어디쯤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잘 가고 있는지 확신이 없어 두렵다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을 한 번 펼쳐보면 좋겠다. 무심코 펼친 책 한 권이 당신의 흐렸던 마음을 반짝 빛나게 해 줄 기회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