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노동 찾기>를 읽는 밤
로켓 배송을 알았을 때 '세상에 하루 만에 택배가 오다니~'라고 놀랐고, 샛별 배송을 알았을 때 '이게 가능한 일인 거야?'라는 의문을 품었다(물론, 가능했다. 어떻게 가능하지? 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지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가격이 조금 차이 나더라도 대부분의 물건을 로켓 배송이 가능한 사이트에서 주문했다. 그게 익숙해지다 보니 주문을 하고 이틀만 넘어가도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왜 이렇게 배송이 늦는 거야?'라고 터무니없는 불평을 하기에 이르렀을 때, 이 책을 만났다.
물론 나는 알았을 거다.
내가 잠에서 깨기도 전에 우리 집 문 앞에 지난밤에 주문한 물건이 도착해 있다는 건 누군가는 밤에 잠을 자는 대신 물건을 실은 택배 차량을 운전하며 도로 곳곳을 달리고 있었을 거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내가 지불한 금액을 이유로 그런 것들 때쯤은 가볍게 넘겼을 거다.
이 책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24시간 대공장 구내식당 조리원, 대학 시설관리직, 병원지원직, 교도관, 우정실무원, 지하철승무원과 신호직, 방송작가, 공항 시설관리직, 고속도로 순찰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편리나 안전을 이유로 '24시간' 언제든 일할 수 있는 상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이 책 속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 나는 어떤 직업은 알지도 못했다. 그러니 그들이 어떤 노동을 하는지, 얼마나 노동을 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우리 직종이 어찌 됐든 환자와 보호자를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직종인데도,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이 비정규직으로 가고 있잖아요. 우리도 그걸 피하지 못한 거죠. 병원 안에서만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인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문제가 돼버렸어요. 환자들 토사물, 대소변 다 처리해야 하고, 남들은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하는데도 인정도 못 받고 이름 없는 존재로, 사각지대로 취급받는 것들이 서글프죠."
- <내 인생에 걸맞은 '이름'을 가질 권리> / 병원지원직 노동자 조영재 씨 이야기 중
병원에서 유니폼을 입고 환자들의 침대를 옮기고,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들을 당연히 간호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병원지원직이라는 직종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만큼 이 글 속에서 만난 노동자 조영재씨의 이야기는 내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지만 병원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병동에서 일하는 사람. 행정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시설을 관리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이름은 '오더리'. 병원지원직 또는 간호보조원으로 불린다. p82 그나마 병원지원직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도 5년 남짓이라고 하니 그전에 그들이 어떻게 불렸을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20여 년을 그렇게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힘들도 고되고 스트레스가 많지만 그는 희망한다. 그곳에서 정년을 맞을 수 있기를. 노동이 그 직군에 따라 한 사람의 존재를 가볍게 여길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기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일까. 물론 무지한 '나'부터 반성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나도 은연중에 병원에서 만난 병원지원직 노동자들에게 불편한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니까.
직원들이 느끼는 서러움은 누군가 어쩌다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너무 익숙해 무덤덤해졌을 뿐, 공항에 있는 매 순간 서럽다. 직원들은 청결하고 잘 정돈된 기내를 위해 비행기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지만, 그 모습을 승객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승객이 내리고 타는 동안 직원들은 주기장에서 기다리는데, 눈비가 오거나 한여름이거나 한파에도 예외는 없다. 양손 가득 청소 가방과 기용품을 들고 있어 우산을 쓸 수가 없고, 우비가 있더라도 기내 안에서 벗을 수가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신발이 젖은 채 승객이 다 내리기를 기다릴 때는 여지없이 "우리는 노예"라는 생각뿐이다.
- <비행기에 저당 잡힌 혁명가> / 공항항만운송본부 비정규지부 노동자 지명숙, 김태일 씨 이야기 중에서, p113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서비스 직군의 사람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손님이 왕이다' 같은 인식이 남아 있다는 걸 느낀다.
직원을 고용한 회사는 자신들에게 돈을 지불하는 '손님'들은 대단히 높게 대접하면서 그 모든 수발을 들어야 하는 정작 자신의 식구인 '직원'들에게는 그만큼의 대접을 하지 않는다. 임금, 휴게공간, 휴일 보장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투쟁을 통해 얻어야 하는 노동자들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예전에 읽었던 책 <<프랑스에서는 모두 불법입니다/최은주, 갈라파고스, 2017>>에 이런 문장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파업으로 인해 파생되는 불편함'보다는 '파업의 동기'에 초점을 맞춘다. 파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와 복지를 주장하기 위해 마지막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우리의 아버지나 자녀 또는 친구 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당장 불편을 겪고 있는 나 자신도 결국 한 사람의 노동자라는 핵심을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중략) 이들은 갑작스런 열차 파업을 알리는 역무원을 향해 화를 내거나 삿대질을 하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이 땅의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노동권을 주장하듯 그들도 그들의 노동권을 부르짖을 권리가 있다. 이런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이 땅의 노동자들 즉 국민들은 파업을 관대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p49』
나는 이 문장을 아니 이 문장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을 오래 기억해 두고 싶어 따로 적어두었다.
'내가 노동권을 주장하듯 그들도 그들의 노동권을 부르짖을 권리가 있다'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면서 누군가의 노동으로 내가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전에 읽었던 <<아무도 무릎 꿇지 않는 밤 / 목수정, 생각정원, 2016>>에서는 이런 문장을 따로 적어두었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파업을 지지한다. 그것은 달리는 전동차를 멈춰 세우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을 거부하는 일은 반역이다. 파업을 하는 그 반역의 시간, 우린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왜 지금까지 열차를 움직여온 건지. 이 열차는 어디로 가는 건지. 우리가 인간인지, 아니면 자본주의라는 열차를 굴러가게 하는 하나의 나사에 불과한 건지. 그 과정에서 우린 조금이나마 인간성을 회복한다, 』
공항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원대한 꿈이 아니다.
'최저임금을 떼이지 않고 일한 만큼 받을 수 있고, 편히 앉아서 밥 먹고, 잠시 발 뻗고 쉴 수 있으며, 승객을 태우고 비행기가 뜨는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는. 그가 배우고 노래하는 혁명은 그런 세상이 아닐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말이 너무 흔해 혁명이라는 단어조차 어울리지 않는 평범하고 당연한 세상'이다. p125
막내 작가들이 2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이 아니었어도, 여성이 아니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월급을 깎고 시도 때도 없이 외모를 평가하며 매일같이 커피 심부름을 시켰을까? 방송작가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 막내 작가들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나이에 막내로 들어온 남성 PD들은 막내 작가들처럼 담당 PD의 출강 자료를 만들거나 커피를 사 오는 따위의 심부름은 하지 않는다. 월급도 더 많이 받는다. "나이가 어른 여성이 나이 든 남다를 보필하는 느낌"으로 일하는 데에는 "젠더의 문제"가 깔려 있다고 작가들은 느낀다. 실제로 나이가 어린 여성들만 막내로 뽑는다. 아카데미에서는 면접에 합격하는 팁이라며 "나이는 만으로 쓰고, 사진은 말 잘 듣게 생기고 밝게 나온 걸로 쓰라"라고 가르친다.
- <방송작가는 노조와 함께 성장 중> /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이향림, 최지은 씨 이야기 중에서, p73
방송작가의 꿈을 안고 시간과 돈을 들여 아카데미에 등록했는데 그곳에서 알려주는 면접의 팁이란 게 "나이는 만으로 쓰고, 사진은 말 잘 듣게 생기고 밝게 나온 걸로 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여성들은 시작도 전에 자존감이 낮아지지는 않았을까.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입사했더니 "야, 막내!, 야! 내 커피!"라고 불리는 현실에 부딪쳤을 때 그들은 떠나지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에 아주 잠깐이라도 절망하지 않았을까. 도제식 교육이라고, 그렇게 배우는 거라고 말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그들은 뭘 배우고, 뭘 써야 할까.
사회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조직 구조를 만들게 방치한 사회를 원망하고, 욕하고 있지만 나는 실은,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있다.
나는 대표도 아니고, 그들을 고용한 고용주도 아니지만 소비자라고 불리는 혹은 '손님'인 내가 은근히 갑질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구조는 바꾸지 못해도 그들의 감정은 덜 다치지 않았을까.
이 책은 노동자들의 장시간 근무, 야간근무가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직업을 선택한 건 그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맞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자발적으로 야간 노동자를 자처했더라도 누구에게도 그들의 존엄을 무시할 자격은 없다.
그들이 사람다운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빼앗을 자격도 없다.
그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그들의 노동에 대가를 지불하고 편리를 얻는 사람들) 한 발짝만 너그러워진다면 구조는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만들진 못하더라도, 그들의 임금을 올려주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감정 스트레스는 줄여줄 수 있지 않을까.
덧붙임
1. 나는 이 책을 조금 감정적으로 읽어냈다. 어쩌면 그래서 정작 이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든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건 참 잘했다 싶다.
2.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해설 <디지털 모바일 시대의 달빛 노동>이라는 글은 많은 사람이 읽는다면 좋겠다.
3. 나의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로켓 배송과 그걸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필요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적절하게 주고받고, 적절하게 서로의 존재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
4. 함께 읽기를 권하는 두 권의 책 추천. - 최은주, <프랑스에서는 모두 불법입니다> http://poohcey.blog.me/221023752918
목수정, <아무도 무릎 꿇지 않는 밤> http://poohcey.blog.me/220843017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