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을 응원해, 평범하지 않은 삶도 희망해.

<손바닥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오늘은 꼭 글을 쓰고 자야지, 한 줄이라도 내 글을 써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퇴근을 하는 날도 어김없이 두 아이 육아와 설거지, 빨래, 청소는 이어진다.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몸을 움직여도 두 아이 재우고, 뒷정리를 마치고 나면 11시가 훌쩍 넘는다.


설거지를 마치고 행주를 빨아 탈탈 털어 널고 난 뒤 물 묻은 손을 닦고 '드디어 해방'을 외치고 돌아서는데 발밑에 채이는 먼지, 하루쯤 넘어가자, 아니야 그래도 이것만.. 매 순간 갈등한다.


그렇게 직장인으로, 엄마로, 아내로의 하루를 마치고 온전히 나로 돌아가는 시간은 매일 간절하다. 간절한 만큼 쉬이 와주지 않는다. 자주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잠이 들고, 자주 화장도 지우지 못한 채 잠이 든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얌전히 올려 있는 노트북과 읽어야 할 책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제 할 일을 찾지 못한다.

그런 핑계들로 언제나 '나'는, '나의 글쓰기'는 매번 후 순위로 밀려나고 만다.



'평범한 사람들의 글을 응원하기 위해 만든' <손바닥 문학상>이 올해로 십 년이란다.

그 시간 동안 차곡차곡 모아진 글들을 묶어 펴낸 수상작품집 속의 글들을 읽으면서 꿈틀꿈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잠을 조금 더 줄이면,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될까. 아니, 그 이전에 나는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거지. 진짜 쓰고 싶은 글. 그게 뭐지. 생각이 많아진다.


다들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쓴 글일 테다.

시간이 남아서, 돈이 많아서, 너무 심심해서 그냥, 대충 써볼까 하고 쓴 글은 없을 거다(적어도 내가 읽은 작품집 속의 글들은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러니 나의 바쁨은 역시 그냥 핑계일 뿐이지 않을까. 조금 덜 간절했던 건 아닐까.



'손바닥이 붙은 문학상은 소박합니다. 다들 높이를 다툴 때 스스로 낮춥니다. 그 크기와 넓이만큼 아담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누구나 응모할 만한 자신감을 줍니다. 작은 얘기 하나씩은 맘에 품고 살면서 글로 풀어내고 싶은 동네 글쟁이 누구에게도 문턱이 없습니다 - <서문> 중에서'


서문에서 적은 말은 틀렸다.

문학상은 소박할지 모르지만, 당선된 글들은 소박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글이지만, 평범하지 않았다.

누구나 응모할 만한 자신감이라니. 작품집 속의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아,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니...'하고 주눅 들었다. 부러워졌다.


담고 있는 주제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걸 작품들을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느꼈다.

한 작품도 실패하지 않았다.


"머리 왜 밀었어?"

진철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것까지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려고."

"삭발한다고 회사에서 알아주는 건 아니지 않나......"

"생산 팀장이 다시 받아줄 테니까 삭발식에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했어. 너무 외로워서."

"......."

그 말을 들은 진철은 쓸쓸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조금씩 모든 걸 잃어가는 예서가 안쓰럽고 불쌍해서 목이 메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 마음을 잘 아는 예서가 돌아누워 진철의 허리춤에 손을 둘렀다. 진철은 예서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랜만에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변한 건 상황이지 감정이 아니었다. 예서의 심장이 툭 내려앉았다. 떨리는 마음을 미소 속에 억지로 감추듯 예서는 배시시 웃었다.

"머리 깎으니까 이상하지?"

예서는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진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진철은 예서를 꽉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옷이 축축해질 정도로 흐느꼈다. 까끌까끌한 예서의 머리카락이 턱 밑을 따갑게 할수록 진철은 더 꽉 예서를 품었다. 그 온기에 몇 달간 꽁꽁 얼어붙은 예서의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렇게 그 겨울, 두 사람은 마음을 다해 서로를 위로하며 처절했던 시간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바깥에선 창문을 두드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만이 공허하게 들려왔지만, 두 사람의 귓가엔 닿지 않았다.

- 최준영, <파지> 중에서 / p316



같은 회사의 사무직 직원인 진철과 생산직 직원이었던 예서의 연애는 생산공장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사실상 퇴출 위이게 놓이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파업을 시작한 예서와, 여자 친구가 파업을 한다는 이유로 상사들의 눈치를 받아야 하는 진철은 사랑하는 감정만으로 연애를 이어갈 수 없다는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서 그 장면이 눈에 그려지는 듯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도, 그들이 마지막엔 꽉 끌어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추운 겨울 서로의 위로에 언 몸을, 언 마음을 조금이라도 녹일 수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소설이 소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주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글들이 작품집 속에 담긴 글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감정이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 편도 쉽게, 그냥 읽고 넘겨지지 않았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아니, 평범한 사람은 없다.

나는 이 두 문장을 두고 오래 생각했다.

평범함이 주는 비범함을 나는 자주 마주하고 싶다.

나의 삶을, 우리가 평범하다 말하는, 평범하고 싶다고 희망하는 우리의 소소한 삶을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당신의 글도, 내가 앞으로 쓰게 될지도 모르는 나의 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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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문학상 수상작품집 저자 신수원, 김소윤, 김정원, 김민아, 서주희, 이슬아, 김광희, 성해나, 이유경, 이항로, 장재희, 이혜재, 최준영, 장임혜경 출판한 겨레 출판사 발매 201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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