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이란.

- 강남순, <매니큐어 하는 남자>를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살아 있음'이란 단지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이 아니다. 획일적이고 제도적인 삶이 강요되는 세계 한가운데서도, 자신에게 지순한 웃음을 짓게 하고, 살아 있음의 희열을 느끼게 하는 '틈새 공간'들을 만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씨름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살아 있음의 의미를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부딪치는 다양한 문제가 제거되어야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지고 있는 삶의 짐과 실패들, 문제와 딜레마들 때문에 행복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떠한 환경 속에 처해 있든지 '문제없는 삶'을 사는 인간은 없다. 이러한 다층적 문제가 제거되어서가 아니라 그 문제들 한가운데서 생명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우리 각자는 자기 고유의 '행복한 나날들'을 만들어가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살아 있는 죽은 자'로서의 삶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행동과 방향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기도 하다. 냉소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끝없는 삶의 문제들 한가운데서 자유와 행복의 삶을 창출하기 위해 치열한 씨름을 하며 살 것인가. 문제 많은 삶의 한가운데서, 자기만의 '행복한 나날들'을 창출하는 자유를 확장하고자 씨름하는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지순한 웃음을 가져오는 행복의 순간들과 조우하게 되지 않을까.
- <살아 있는 죽은 자가 되지 않으려면> 중에서, p31


이번 한 주 매일 아침 '오늘의 운세'를 검색했다.

생년월일 운세를 검색하고, 띠별 운세를 검색하고, 별자를 운세를 검색한 뒤에야 출근을 했다.

2박 3일간의 대학 평가를 받는 기간 동안 극도의 긴장감에 소화가 잘 안될 것 같은 음식은 아예 입에 넣지 않았고, 두 아이는 친정엄마에게 부탁했다.


평가장에서 호출이 올 때마다 평가장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며 수없이 긴 숨을 내쉬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2박 3일간의 평가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털썩, 마음 한구석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아, 나는 또 나의 불안에 지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은 모든 게 끝난 뒤에야 든 생각이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끝난 평가였다. 며칠을 잠을 설치며 긴장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한 주 동안 방치되었던 모든 나의 일상들이 그제야 보였다. 모든 에너지를 쏟고 난 뒤 남은 게 허탈과 후회여서 속상했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affection-1866868_1920.jpg 사진출처 : 픽사 베이

평가를 마치고 평가팀이 떠난 뒤 조용히 오후 반차를 내고 학교를 나온 금요일 오후, 일찌감치 두 아이를 데리고 와 그간 못 나눴던 이야기를 나누고, 실컷 안아주고, 며칠 동안 마음을 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큰 아이는 "그래 엄마, 나에게도 이번 며칠이 참 힘들었어"라고 말했다.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도 워킹맘 키즈로 살아가야 하는 일이란 걸 아이가 커 갈수록 느낀다.


평가만 끝나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생각한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며칠 나의 모든 일상을 포기할 만큼 매달리면서 내가 얻은 건 뭘까 생각했다. 나는 나의 행복과 더불어 아이의 행복마저 모른 체했던 건 아닌지.

매달려야 하는 문제들은 종종 너무 쉽게 해결되어 버리는데도, 그걸 직장 생활하는 내내 경험하면서도, 또 같은 상황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 것 같다.


희망과 절망, 낙관과 비관은 서로 반대말이 아니다. 그 두 축은 나선형처럼 얽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존재와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희망이나 절망은 쉽사리 주어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살아 있음의 엄숙한 과제를 값싼 희망이나 성급한 절망이 아니다. 한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가 해야 하는 일은 거창한 희망도, 암흑 같은 절망도 아니다. 단지 이 땅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서, 자기만큼의 '한 걸음'을 떼는 일일뿐이다. 미래를 성급하게 앞당겨서 절망이나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 오늘 이 자리에서 뗄 수 있는 한 걸음을 걷는 것, 그래서 그 한 걸음들의 이어짐 속에서 간혹 지순한 행복감의 틈새, 웃음을 주는 희망의 가느다란 줄기가 먹구름 속의 햇살처럼 가끔씩 비치도록 할 뿐이다.
- <한 번에 한 걸음씩의 삶> 중에서, p33


50여 페이지의 보고서를 쓰고, 그 보고서의 내용을 입증할 증빙자료들을 각 연번을 붙여 80개의 철로 나누어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내내 불안했던 건, 내가 그동안 해 온 일들이 이 몇 권의 증빙 철들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불합리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내가 그동안 해온 일들에 실수가 있진 않았을까 문제가 될 만한 건 없었을까 하는 '나에 대한 '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잘하고 있어라고 스스로를 믿기보다는, 잘하고 있나, 부족하지는 않나, 실수하진 않았나 하는 계속되는 자기 의심. 평가 몇 주 전부터 불안해하면서 비관적인 결말을 상상하면서 스스로의 시간을 갉아먹었다.

너무 멀리, 너무 빨리 가려고 아등바등 사는 건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고 그런 나를 조금 더 믿어주면 어떨까.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한다.


한 사회에는 여러 종류의 '병'이 있다. 한국 사회가 지닌 심각한 '병' 중 하나는 '획일화된 존재 방식의 절대화'다. 그 획일성의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갖가지 비난과 사회적 추방을 서슴지 않는 폭력이 자연스럽고 강력하게 작동된다. '획일화의 폭력성'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개별인들의 다양한 존재 방식을 존중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 곳곳의 틈새 공간에서 '획일화의 폭력성'에 저항하는 다양한 존재 방식을 보는 일은 참으로 요원한 것인가.
- <매니큐어 하는 남자> 중에서, p149


대학에서 근무한 지 올해로 16년이 되었다.

내가 가까이에서 느끼는 '획일화의 폭력성'은 교육제도의 폭력성이다.

대학들을 기관평가인증, 대학 역량평가라는 이름으로 평가하고, 평가 결과에 따라 입학 정원을 감축하고, 재정 지원 사업에 참여 기회를 박탈하고, 국가 장학금 지원을 하지 않는 이 평가 제도는 다양한 교육제도를 펼칠 대학의 기회를 박탈한다. 적게는 20개, 많게는 40개가량의 지표를 만들어두고 그 지표마다 정해진 룰에 따라 평가를 해서 전문대든, 특성화대는, 예술대학이든 모든 대학을 한 줄 세우기 하는 제도. 그게 대학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 단정 짓는 이 사회의 교육정책이라는 게 너무 아쉽다. 그게 진짜 교육을 받는 학생들을 위한 일인지, 그렇게 대학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교육부의 보여주기 식 성과인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개별적인 존재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만큼 각 영역별, 분야별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해주는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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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큐어 하는 남자 저자 강남순 출판 한길사 발매 2018.11.30.


덧붙임


1. 저자는 시작하는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가 있다면, 그것은 존재 방식의 획일성을 강요하는 폭력성을 넘어서 모든 개별인들이 서로를 온전한 존재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매니큐어 하는 남자'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게이일거라고 단정 짓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서 더 이 책의 이야기들에 마음을 줄 수 있었다.


2. 내가 처한 상황, 나의 기분, 나의 상태에 기대 내 마음대로 이 책을 읽었고, 내 마음대로 이 책에서 얻고 싶은 것을 얻었고, 내 마음대로 이 책에서 위로받았다. 어쩐지, 그것만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3. 너무 내 마음대로 읽었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는 아주 다양하다. 혹시라도 나의 글만 읽고 넘길지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덧붙인다. 꼭 읽어보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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