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서,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 오민주 <<엄마가 되어보니>>를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단 한 번의 검사로 딸아이의 발달이 늦은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가 봐도 이미 늦된 모습의 예지였지만, 이 결과는 긴가민가하며 달려온 그동안의 시간을 무색하게 했다. 또 당장 발달 지연 치료를 시작해야만 한다는 말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으로 점점 커졌다. 난 아이를 향해서 한없이, 어쩌면 평생을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나쁜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인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죄의식에 빠져 사는 자가 되는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아픔과 두려움이 날 사로잡았다.
-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 마음이 필요해> 중에서, p53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종종 잊고 산다.

죽을 만큼 아팠다고 회상하는 출산의 순간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힌다.

의사가 "조금만요! 머리 보여요! 다 나왔어요! 마지막으로 힘줘볼게요!"라고 외치는 순간 무언가 묵직한 게 몸을 빠져나가는 느낌, 아이의 울음소리, 엄마 아빠의 눈물 같은 감동의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육아라는 현실로 들어선다.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만 있으면 돼.

건강하게만 자라줘 같은 기도를 매일 밤 하고, 아이가 기침만 해도 가슴이 철렁 가라앉기를 여러 번.

그렇게 조금씩 아이와 함께 엄마도 자란다.


엄마가 되어 보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주변의 아이들이 보이고, 새로운 감정이 생겨나고, 눈물과 웃음이 많아지고, 세상에 감사할 일이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자주 헤매고, 두렵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마음 역시 엄마가 되기 전보다 몇 배로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예지맘은 '어릴 적 꿈을 잃어버렸던 소녀였지만, 자폐성 발달장애인 딸과 살아가며 꿈을 다시 찾은 엄마'다.


조금 늦는 거라고 생각했던 예지는 단 한 번의 검사로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 아이가 발달 장애 진단을 받고 당장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시기에 덜컥 친정 엄마의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엄마가 떠난 뒤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자신의 몸, 유방과 자궁에 암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예지맘은 그 순간의 기분을 이렇게 적었다.


"기가 막히는 기분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었고, 누구의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가슴 한쪽을 잘라내고 자궁, 난소, 나팔관을 드러내는 수술을 한다는 것은, 그 누구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긴 힘든 일일 것이다. 너무도 비참해진 나는 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외로웠고 괴로웠으며 나도 이렇게 죽나 싶었고, 차라리 죽고 싶었다(p21)"


문장으로 읽기만 해도 하- 세상에,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데 당사자인 그녀는 어땠을까. 그 마음을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기도하는 시간을 보내고, 수술을 하고, 예지의 치료를 하면서 그녀는 버텼다(아마 온 힘을 다해 버텼을 것이다).


지금 그녀는 유튜브 맘스 라디오의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을 위한 프로그램 <예지맘의 괜찮아>를 진행하고 있고, 국제컬러테라피 한국 색채심리협회 이사로 있으며,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들을 후원하는 NGO 단체인 사단법인 여울돌에서 대외협력팀장을 맡고 있다.


발달장애인 아이들을 위해 김포아름다운교회에서 수레바퀴 학교를 시작했고, 통합 교육이 가능한 대안 학교로의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버틴 시간들은 짐작하기조차 어렵지만, 그 시간들을 버텨낸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을 듣기만 해도 놀랍고,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분명 이건, 그녀가 '엄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짐작만 할 뿐.


이 책은 예지맘으로 불리는 그녀가 어떻게 그 시간들을 견뎌왔고, 예지와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들여주는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조금 느리지만 사랑스러운 아이 예지를 위해 엄마인 그녀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엄마'인 내게 꽤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아이가 조금만 떼를 써도, 마음대로 안 된다고 울음을 터트리기만 해도 혼이 쏙 나갈 정도인데, 예지와 보낸, 보내는 시간들이 쉽지 많은 않을 것이다. 아이만 신경 쓰고 보듬기도 쉽지 않을 텐데 세상의 많은 편견과 불편한 시선들을 마주해야 했을 그 시간들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기억하고 싶었던 것, 그것은 어제의 넘어진 실패한 기억이었다.
그 기억이 아이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아이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오늘은 또다시 주어진 새로운 날이기에 예지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고, "할 수 있어! 걸을 수 있어!"라고 외쳤다.
어느 날, 나의 손을 잡고 힘 있게 일어선 아이를 보며 "엄마는 네 옆에 있을 거야. 넘어지면 나를 붙잡고 일어나!"라고, 동시에 "분명히 넌 말도 할 거야!"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의 어리석음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힘을 내고 일어서는 예지를 보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분명 성장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이를 향한 신뢰감이 형성된 것이다.
이 일을 통해서 알았다. 내가 부족해도 아이는 성장한다는 것을.
- <넘어지면 나를 붙잡고 일어나> 중에서, p41

예지 역시 엄마를 믿었을 것이다. 자신이 넘어져도 엄마가 옆에서 든든하게 버티고 서 있어 줄 것이라는 걸.

그래서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또 자주 잊어버리지만, 아이들은 언제가 엄마의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그리고 열심히 무럭무럭 자란다.

우리는 그 옆에서 기다려주면 된다. 그게 나는 나의 역할, 엄마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발달 지연이라는 상황, 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까지가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그때 엄마는 아이를 평가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며 엄마의 자격이 있고 없음을 놓고 수도 없이 갈등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도 힘들고 좌절하며 불안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 끝은 상처가 된다는 것을 예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진정으로 아이를 치료하기 원한다면 엄마의 시선이 달라져야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명심할 것은 아이는 부모가 믿어주지 않으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내 아이를 믿어 주어야 한다. 형편에 알맞는 장을 마련해주고, 아이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해야 한다. 또한 아이가 선택한 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그 선택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자조 능력이 있는, 그야말로 문제 해결이 가능한 아이로의 길을 제시함이 마땅한 부보의 역할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이것은 절대 부모로서의 권위적인 모습을 내려놓으라는 뜻은 아니다.
아이를 한 인격체로 존중해 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이러한 발달은 더욱더 지연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두 번 태어난 아이> 중에서, p93



이 문장은 비단 발달지연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이를 한 인격체로 존중해 주는 과정, 아이에게 믿음을 주는 모습,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주는 역할. 이 모든 것들은 엄마와 아빠, 모든 부모가 가져야 할 마음과 태도가 아닐까. 물론 안다. 이 모든 과정이 얼마나 엄마를 시험에 들게 하는지. 얼마나 갈등에 빠지게 하는지. 그러니 또 열심히 배우는 수밖에. 부딪쳐가면서 하나씩 깨달아가는 수밖에. 절대 포기하지 말고.


난 스스로 늘 예지에게 부족한 엄마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네게 최선을 다했다. 내가 뭘 더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려 있었다. 아이와의 교감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아이를 내 방식으로 일깨우고 그저 지식적으로 가르치려고만 했으며, 아이의 시선을 맞추는 척만 했던 날들이 무색했다. 아이가 갑작스럽게 이상 행동을 보일 때면 그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음에도 어디서든 당당하게 행동했지만, 그것은 위선이었다. 나를 자랑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이 시점에서 그만 바뀌어야 한다며 나를 일깨워 주고 있었다.
- <놀아주는 엄마 & 놀아주는 아이> 중에서, p210


나 역시 그랬다.


내가 하는 행동에 스스로 대견해하길 여러 번. 아이가 저렇게 떼를 쓰는데도 화내지 않았어, 라거나. 아이는 더 놀길 원하는데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혼자 단정 지어버렸던 날들. 아이가 원하는 것보다 내가 해주고 싶은 걸 먼저 해주고 스스로 잘했다 생각했던 시간들이 많았다. 어쩌면 지금도 조금은 그러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조금씩 괜찮아지고 싶다는 욕심. 노력, 이 모든 게 결국 아이 덕분임을 알게 되면 내 마음의 작은 자만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지고 만다.


발달 장애여서 어린것은 아니다. 그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또 한 면이 있을 뿐이다. 무엇이 원인이었든 어떤 과정이 있었든 간에 이미 내 아이가 어떠한 성격, 어떠한 기질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며 관계를 서로 조율하며 살아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때 무언가를 이뤄내는 것보다 더욱더 값지고 성숙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독한 엄마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여자로 태어나, 어쩌다 엄마가 되었지만 성숙한 엄마가 되기까지 사는, 살아내는 것이다.

만족!
결국, 자아실현을 위해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내가 무엇을 했다는 것에 대하나 만족감 가운데 갖게 되는 긍지, 자긍심을 느끼기 위해 우리들이 애쓰며 살듯이 내 아이 역시도 그저 그 만족을 위해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부모인 우리가 보기에 아이의 행동이 어수룩하고 둔하고 모자라 보여도 알고 보면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하루를 사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도 느낀다.
- <독한 엄마는 서두르지 않는다> 중에서, p193



어쩌면, 나는 우리는 끝까지 성숙한 엄마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때. 성숙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 시간들, 그 시간들을 함께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거면 되지 않을까. 엄마인 나도 끊임없이 노력하는데, 어린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거겠지.

채근하지 말자고,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려줄 줄 아는 엄마가 되자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발달 지연 발달장애인 아이들도 분명히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어엿한 사회인이 될 것이다. 지극히 작은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이웃을 돕는 삶을 사는 사회의 일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성장하리라는 것을 간절히 믿고 사랑과 용서의 말로 용기 있게 대한다면 아이를 결코 수동적인 자아의 창의성이 없는 사회인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발달 지연 발달장애인은 본인 스스로가 비장애인보다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약자의 모습을 지니지만, 그래서 나약한 자를 돕는 더 가치 있는 강한 자가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우리의 이 간절한 믿음이 엄마도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고, 아이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어떤 사람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화가 나면 10까지 세어 보자. 죽고 싶으면 100까지 세어 보자."
- <엄마의 불안이 아이를 불안하게 한다면> 중에서, p134


나의 아이가 살아갈 조금 더 먼 미래의 사회는 지금보다는 훨씬 괜찮은 사회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 바람을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버린 적이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작 엄마인 나는 무엇을 했지 싶어 진다. 마음만으로 늘 바랬다. 최근에 그래도 조금씩 노력 중인데 여전히 부족하다.


나의 아이가 발달 지연 발달장애인 아이보다 더 나은 삶을,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누구도 할 수 없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편견 없는 눈과 마음으로 서로 보듬으면서 서로 장단점을 배워가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나부터. 엄마인 나부터 다시 무언가 시작해야 할 때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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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어보니>> / 저자 오민주 / 출판 젤리 판다 / 발매 201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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