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책 읽는 밤
책을 읽을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면 어쩐지 핑계 같지만 정말이다.
잠만 자던 신생아 시기를 벗어나면 아기에게 눈을 뗄 수 없는 집중 육아의 시기가 찾아온다.
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먹고 싼다.
엄마는 ‘나’의 시간이 아니라 아기의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나의 몸이지만 나의 의지대로는 할 수 없는 극한의 육체적, 감정적 노동을 경험하게 된다.
간혹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도 활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 잠깐의 시간에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고 싶어 진다.
한 시간만 이라도 방해받지 않고 푹 잘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는 시기에 ‘책’을 읽을 시간은 많다, 고 말하는 게 과연 공감이 될까 싶기도 하다.
나 역시 그랬다.
책 읽는 걸 좋아했지만, 책을 통해 위로받았지만
“너 지금 아기가 잠들었는데 책 읽을래? 잘래?”라고 누군가 묻는 다면 주저 없이
“당연히 자야지요!”하고 대답했을 거다.
하루에 한 권 읽기, 일 년에 천 권 읽기 같은 말은 공허한 구호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왜 난 그렇게 읽지 못할까, 하는 괜한 자기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많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에서 벗어나 ‘잘’이라는 부사를 가져다 붙이니 읽는다는 단순 행위 말고, 읽고 있다, 읽으면서 무언가 느끼고 있다,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많이’ 말고 ‘잘’ 읽자, 라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건 결과적으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한 달에 한 권을 읽더라도 읽은 내용 중 한 가지라도 실천해보려고 노력했고, 하나라도 기억해 담아두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조금씩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권의 책이 다른 책을 또 읽게 하고, 또 다음 책을 골라 읽게 만들었다.
지금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는 말은 할 수 없다.
그저 나에게 맞는 책을 잘 골라 잘 읽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읽고 짧게라도 기록을 남기는 건,
책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는 ‘나’에 대한 고백, ‘나’를 위한 위로였다.
누군가에게 이런 경험을 나누고 싶어 요즘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책을 추천하고, 읽은 책을 다시 누군가에게 나눔 하는 주관적인 나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또다시 책이 주는 기적을 만났다.
내가 추천해 주는 책을 읽고 도움이 되었다는 이웃들을 만났고,
다시 나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에게 책을 추천하면서 그들의 고민과, 나의 고민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퇴근을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와 저녁을 차려 먹고, 치우고, 두 아이를 씻기고 나면 이미 10시가 훌쩍 넘는다.
아이들 알림장을 확인하고 다시 내일 아침 등원, 등교 준비를 마치면 아이들 눈을 졸음으로 가득하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잠들어 버리는 날도 더러 있지만,
그 짧은 시간이 아쉬워서 조용히 일어나 방 한쪽 나만의 책상으로 숨어든다.
한 권의 책이,
그 속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주는 힘을 믿는다.
오롯이 혼자여도 충만한 시간.
‘나’ 다움에 대해 생각하고,
‘나’를 지키기 위한 시간.
오늘도 그렇게 ‘엄마의 책 읽는 밤’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