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아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읽는 밤
망했다.
이렇게 시작해도 될까.
그러니까 이런 거다.
2020년 내가 계획하고 있던 것 중 그동안 단편적으로 하던 책 추천 프로젝트를 나름 주기적으로 해보자 하는 게 포함되어 있었다.
주제를 정하거나, 사람을 정해서 누군가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글을 편지 형식으로 써보자 하는 것.
그런데, 이 책 이슬아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가 그랬다(모든 글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게다가 짐작하겠지만(첫 문장을 망했다고 쓴 것을 두고) 너무 좋다.
책을 굳이 읽지 않았더라도 읽는 데 전혀 문제 될 것 없는 서평집.
서평집을 읽고 나서야 그 책이 읽고 싶어 지게 되는 일종의 끌림, 다정한 유혹.
서평이라고 굳이 이름 붙이지 않아도 좋을 글들.
그런 느낌을 모두 담고 있었다. 하- 그러니 망했다, 하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조금 자학하자면) 죽었다 깨어나도 어쩐지 이 책 속의 글들보다 잘 쓸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
나의 가난한 마음.
다시 읽는 책.
이 세 가지가 만나는 날에 서평을 쓰게 된다. 내게는 없지만 책에는 있는 목소리와 시선을 빌려 쓰는 글이다.
나로는 안 될 것 같은 때마다 책을 읽는다. 엄청 자주 읽는다는 얘기다. 그러고 나면 나는 미세하게 새로워진다. 긴 산책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처럼. 현미경에 처음 눈을 댔을 때처럼. 낯선 나라의 결혼식을 구경했을 때처럼. (중략) 커다란 창피를 당했을 때처럼.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나는 사랑을 배우고 책을 읽으며 매일 조금씩 다시 태어난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 <서문> 중에서
이 책의 서문을 읽는 순간 좋아졌다.
그러니 나는 이제 어쩌지.
뭐 이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책 속에 소개된 책들을 세상에 한 권도 읽는 게 없었지만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치 그 책들 속의 이야기를 다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이어리에 꼭 읽어봐야지 하는 책 목록을 적으면서,
하- 자꾸 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책에서 소개 한 책은 스무 권.
스무 편의 이야기. 스무 번의 따스함. 스무 번의 놀람.
잠든 너랑 덮은 한 이불속에서 나는 조금 울었어. 이 시집이 고단하고 슬퍼서.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거라서. 끊임없이 지나가는 동시에 반복되는 생들 속에서도 어떤 사랑은 자꾸 기억난다는 게, 기억이 나서 울음이 난다는 게, 꼭 전생에 그랬던 것처럼 이해가 되었어. 그리고 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어.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한 생에서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날 수 있잖아.
좌절이랑 고통이 우리에게 믿을 수없이 새로운 정체성을 주니까. 그러므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어. 다시 태어나려고, 더 잘 살아보려고, 너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느라 이렇게 맘이 아픈 것일지도 몰라. 오늘의 슬픔을 잊지 않은 채로 내일 다시 태어나달라고 요청하고 싶었어. 같이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자고. 빛이 되는 슬픔도 있는지 보자고. 어느 출구로 나가는 게 가장 좋은지 찾자고. 그런 소망을 담아서 네 등을 오래 어루만졌어.
해가 뜨면 너랑 식물원에 가고 싶어. 잘 자.
- 유진목의 『식물원』을 읽고 쓴 글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중에서, p20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고 싶으시겠죠. 무슨 일이 있었기에 월요일 자정까지 보내야 할 글을 화요일 아침까지도 안 보낸 거냐고.
내 엄마이거나 친구인 당신들은 먼저 이 걱정을 할 것입니다.
'혹시 슬아가 아팠나?'
그다음으로 이 걱정을 하겠지요.
'혹시 슬아가 슬펐나?'
세 번째 걱정은 이것일 테죠.
'혹시 슬아가 그저 게을렀나?'
당신들도 아시다시피 월요일에는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합니다. 주말이 끝났기 때문이고 이제 겨우 한 주의 시작이기 때문이고 감당해야 할 요일이 한참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로 시작하는 월요일 역시도 당신들은 아실 겁니다. 월요일이 밝았는데도 추슬러지지 않는 몸과 마음을 말이에요.
어제는 조금 아프고 조금 슬프고 많이 게으른 월요일이었습니다. 일요일의 끝을 붙잡고 늘어지고 싶은 월요일이요.
- 정헤윤의 『인생의 일요일들』을 읽고 쓴 글 <삶을 존중하려면 선을 그어야 해> 중에서, p57
『이슬아의 말』을 쓴다면 장르는 불분명해도 그 책엔 너무라는 말이 너무 많이 들어가겠지. 요즘에만 유효할 문장들이 주로 적히겠지. 먼 훗날 누군가가 우리의 책을 본다면 이 시대의 한계 또한 느끼겠지. 어떤 것들은 시대가 지나도 유효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알 수가 없어. 우리는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얘기를 할 뿐이지. 박완서 선생님도 모르셨을 거야. 자신의 이야기 중 어떤 것들이 오래 남을지를.
너에게 아침마다 물어보곤 해. 여전히 나를 좋아하냐고. 너는 그렇다고 대답하지. 나는 어째서 정기적으로 확인하려 드는 걸까. 마음이 빈곤한 사람처럼 말이야. 그런 나에게 네가 이렇게 말했어
"그럴 땐 좋은 방법이 있어."
"뭔데?"
"그냥 먼저 사랑을 주는 거야. 주면서 알게 되거든."
그래서 너는 아침마다 말없이 나를 꽉 껴안았던 것일까? 안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사랑이 있지. 걸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체력과, 싸우기 전에는 낼 수 없는 힘도 있지. 써보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고 말야.
다음 달에는 이번 달보다 더 자주 소설을 쓰고 싶어.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결코 쓰지 않을 소설이란 것을 말이야. 독자들 중 아무도 소설인 줄 몰라주더라도 말이야. 좋은 아침이야. 결코 한마디로는 쓸 수 없는 하루를 오늘도 살아보자. 하마에게, 사랑과 용기를 담아.
- 박완서의 『박완서의 말』을 읽고 쓴 <한마디로는 못 하는> 중에서, p39
길지 않아도 좋다.
책에 관한 줄거리가 없어도 좋다.
내가 그 책을 읽지 않았어도 좋다.
이제 곧 읽게 될 테니까.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니. 참 좋다.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 저자 이슬아 / 출판 헤엄 / 발매 2019.11.13.
덧붙임
1. 나의 계획은 수정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이건 오기인가) 꼭 써보고 싶어 지는 이 마음은 뭐지.
2. 언제부턴가 타인에게 이슬아의 책을 추천하는 데 거리낌이, 주저함이 없어졌다.
그중에서도 내가 늘 먼저 추천하는 책.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https://poohcey.blog.me/221420029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