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아 <<심신단련>>을 읽는 밤
연재 노동자로 자신을 설명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여러 번 읽는 동안
좋다, 부럽다, 멋지다. 등등의 말을 덧붙였다.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고, 글로 표현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내보일 수 있다는 건 분명 멋진 일이다.
내게 이슬아는 그냥 멋진 사람이다.
2020년을 시작하면서 첫 책으로 이슬아 작가의 『심신단련』을 점찍은 것은
쓰고 싶다는, 잘 쓰고 싶다는 내 마음이 조금 더 크게 확장될 것 같은 기대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
쓰고 싶다는 욕망이 극대화된다.
그러다 쓰지 못할 때 또 그만큼 자기 비하 혹은 자신감 하락이 동반되는 부작용이 종종 발생하고 말지만.
이번 책은 그전에 읽었던 작가의 다른 글들과 느낌이 사뭇 달랐다.
좋다, 아니다의 느낌보다는
그전의 이야기들이 '자신'에게 집중해 있었다면
이번 책은 '자신'에서 확장돼서 '타인'을 바라보는, '타인'과 관계 맺는,
적절히 거리를 두고 쓴 글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나는
그냥 이슬아의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니까, 작가가 들려주는 작가의 이야기 말이다.
그게 뭐 다르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부족한 나의 표현력으로 그걸 잘 설명할 방법도 없지만
미세하게 다른 느낌.
작가 개인의 이야기보다,
더 넓게 펼쳐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오히려 전작들보다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책 읽기라는 건 읽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
개인으로서의 이슬아, 연재 노동자로서의 이슬아, 편집자로서의 이슬아, 출판사 사장으로서의 이슬아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만나게도 되고,
막연하게 '나도 책 쓰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무지함에 정신을 번쩍 차리게도 되고, 주변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부러워지게도 된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이 책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슬아가 아닌, '나'를 자꾸 찾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통해 얻고 싶은 게 분명 있었는데, 그게 어딘가 있을 것도 같은데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어쩐지 아쉽지만,
그건 내 욕심.
<책 속에서>
- 조심조심 살아가는 느낌이다. 무서운 게 많아서일지도 모른다. 질병과 통증, 월세, 빚, 구설수, 밤길, 엘리베이터, 사고, 재난, 전쟁,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공장식 축산 시스템, 살처분 등 무서운 것들의 목록은 길다. <어색해지는 것은 두렵지 않다> 중에서, p25
-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무엇 속에 둘러싸여 살아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는 때마다 내 집을 둘러본다. 어째서인지 그 근거를 집에서 찾아야만 할 것 같다. 언젠가는 나무가 있는 집에 살 수 있기를 소망하며, 작은 정원을 꿈꾸며, 지금의 월셋집을 청소하고 화분에 물을 준다. <정원수> 중에서, p56
- 모두가 버리지만 모두가 치우지 않는 세계에서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쓰레기가 잠깐이 아니라는 걸 똑바로 보는 부모와 자식과 자식의 자식과 노동자와 옷 가게 주인과 잠수사와 소설가와 시인과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 있다. 우리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많은 생이 스며드는지. <쓰레기와 부모와 시> 중에서, p106
- 나는 약하다는 말에 약했다. 이제는 안다. 약하다는 말은 강하다는 말만큼이나 소중히 내뱉어야 한다는 걸 말이다. <여자 기숙사(하)>중에서, p153
- 나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과 적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의지하며 나는 자주 혼자가 된다. 메이 사튼의 『혼자 산다는 것』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혼자 여기서, 마침내 다시 나의 '진짜' 삶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이상한 점이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혹은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캐 보고 알아보는 혼자만의 시간이 없는 한,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 열렬한 사랑조차도 내 진짜 삶은 아니라는 것이다."
메이 사튼과 비슷한 모습으로 늙어간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소중한 사랑과 우정을 진짜 내 삶으로 만들려면 꼭 혼자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건 이상하고도 가혹하고도 재미있는 진리다. 더 제대로 연결되기 위해 차단하는 연결도 있는 것이다. 나는 많은 것을 안 하며 점점 지루한 사람이 되어가는 동시에 소나무 책상에 기대어 어디로든 가는 유랑을 연습하며 지낸다. <혼자가 되는 책상> 중에서, p268
- 나이를 먹어도 모르는 것을 계속 배우고 살고 싶다고 하마는 말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계속해서 겸손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어 진다. 내가 모르는 것과 배워야 할 것이 세상천지에 널려있으니까. 편견도 잘 갈고닦고 싶었다. 사실 꽤 많은 편견이 우리를 돕는다. 판단의 시간을 단축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판단을 좀 미루고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간단하지 않으므로 편견도 뭉툭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이제 막 태어난 사람처럼 무구하게 세계를 감각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본 영화에서는 이런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에필로그> 중에서, p308
<<심신 단련>> / 저자 이슬아 / 출판 헤엄 / 발매 2019.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