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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Jan 05. 2020

03. 그러니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 

                                                                                                                                           

목요일 저녁부터 큰 아이의 구토가 시작됐다. 

처음엔 배고파서 급하게 먹었다는 꽈배기 반 조각에 급체했나 보다, 가볍게 생각했다. 

한 번 토했으니까 이제 괜찮아질 거야, 아이를 다독였다. 


30분쯤 지나 다시 구토를 시작한 아이는 그렇게 밤새 6번의 구토를 했다. 

열이 날 때 대처법은 그간의 경험으로 대충 알고 있었지만

여덟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없던 증상이어서 

이렇게 대책 없이 구토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토사물 흔적을 치우면서 

놀라서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나도 속으로는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는 말만 반복했다. 

엄마의 불안을 아이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뭘 먹었지?

내가 뭘 잘못 먹인 거지?

계속 생각했다. 


엄마, 나 괜찮아? 괜찮은 거야?

아이는 자꾸 물었다. 


그럼, 괜찮지. 괜찮아 윤아. 


아이를 토닥이며 대답하면서도 '아, 윤아, 엄마도 실은 잘 모르겠어'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보리차를 끓여 먹이고 간신히 아이를 재우고 난 뒤에야 

신랑이 집에 들어왔다. 타이밍도 기가 막히군. 


아이의 상태를 신랑에게 설명하면서 '나, 힘들었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는 결국 장염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학교에 가지 않아서 좋다고, 그런데 태권도를 못 가는 건 좀 속상하다고 말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니 이제 좀 살만해졌구나 싶어 안도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근무를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하니 

결국 친정엄마에게 부탁을 하고 출근을 하고 퇴근 후 다시 시작된 아이 간호. 

나는 큰 아이 옆에, 신랑은 둘째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각각 서로의 자리를 지켰다. 


병원 간이침대는 불편했다. 

아이는 밤새 뒤척였고, 나 역시 비슷했다. 

아침 회진 때 무조건 집에 가겠다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새로 밥을 짓고, 아이들 먹을 반찬을 만들어서 먹이고

병원 짐 풀어 정리하고, 

아이 씻기고,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나니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둘째랑 둘이 밤을 보낸 신랑 역시 뒤척임 심한 둘째 덕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눈이 퀭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신랑도 그랬겠지. 게다가 출근해야 하는 토요일이었으니. 


엄마와 떨어져 잔 둘째는 보자마자 안겨들었고, 

컨디션을 회복한 예윤이는 심심하다고 놀자고 안겨 왔다. 


"엄마도 좀 쉬고 싶어 윤아." 

라고 말하면서 아주 잠깐 미안했던가. 


잘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아이가 아프기만 해도 "내 탓인가 봐" 자책했을 텐데

한 단계 진화해 그런 죄책감은 벗어던졌다(자존감 상승, 책 읽기의 효과).

그럼 뭐지. 요상한 기분은. 


그 옆에서 내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탐험 중인 둘째의 평온함도 

'고마워, 잠깐이라도 그렇게 놀아줘서'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직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둘째가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잠시라도 쉴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쁜 엄마인가. 

이 단계에서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다시 죄책감이 스멀스멀 되살아 날 것도 같다. 


아이에게  가장 안 좋은 영향을 주는 부모가 바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부모입니다. 누가 나와의 관계에서 계속 죄책감을 경험한다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을까요? 우리는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거나, 느끼게 하는 사람을 관계에서 배제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됩니다. 부모가 못해준 것에 대해 계속 죄책감을 갖고 아이를 대하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양육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 권경인,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중에서, p101



그래, 그렇지. 죄책감 따위 날려버려야지 

흔들리지 말자. 


나도 좀 챙기자. 

지금 나의 최선은 이것이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우린 아직 함께 해나가야 할 시간이 길다. 

서로에게 지치지 않고, 덜 힘들어하면서 누군가의 희생이 아닌 협력자로 존재해야 한다. 

그게 아이와 부모 관계라도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엄마는 어느 정도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인정하자. 

희생이 나쁜 게 아니라 혹시 아이가 자란 뒤 그 희생을 보상받고 싶어 할까 봐 두렵다. 


나의 희생이 훗날 억울하다 느끼지 않도록 

나는 다시 나의 다짐을 적는다. 


조금 이기적인 엄마여도 괜찮아. 

그냥 지금처럼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여도 나쁘지 않아. 


" 저는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를 기대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하고 버무려져서 함께 있는 현실의 엄마, 때로는 서툴지만 또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실재하는 엄마,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서 존재함으로 자녀의 안전 기지가 되는 엄마라면 충분합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답고 바람직한, 현실적인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제가 깨달은 것은 아이들은 완벽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부모를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인정하는 깊은 관대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라면 충분히 훌륭하고 애를 쓴 좋은 부모입니다. 때로는 흔들리고 불안하더라도 그 믿음을 의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권경인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서문> 중에서 p6 "



20200104




■ 인용한 책 


  - 권경인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북하우스 

     https://poohcey.blog.me/22122241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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