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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Jan 06. 2020

04. 불량한 미니멀리스트의 도전 1

-제로 웨이스트

                                                                                                                                           

지금 내 기준에서 가진 게 많다는 건, 

쓸데없이 가지고 있는 게 많다는 뜻이다. 


굳이 필요하지 않지만 버리지 못해 가지고 있는 것들, 

언제가 필요할 것 같아 버리지 못해 가지고 있는 것들,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 버리지 못해 가지고 있는 것들. 


비우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비운다는 게 이리도 어려울까


미니멀라이프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머리로 습득한 많은 기술들을

왜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걸까. 

마음과 몸은 왜 늘 따로 노는 걸까. 


물건을 비우면서 마침내 진짜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를 모르고 나를 인정해주지 않은 건 남이 아닌 바로 나였다. 단순함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미니멀 라이프 덕분에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던 내 삶에도 쉼표가 생겼다. 일에 쫓기고 살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는 매일매일 대신, 하루에 10분이나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수 있는 여유가 찾아왔다. 비우기가 아닌 채우기에 계속해서 욕심을 부렸다면 이토록 편안한 집도, 아들에게 집중하는 달콤한 시간도, 나에게 주는 하루 10분의 휴식도 여전히 갖지 못했을 것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내 삶에 날마다 실망하고, 나 자신을 질책하면서. 물건과 마찬가지로 생각을 더 많이 소유하는 것 역시 결코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필요한 불안, 과거에 대한 의미 없는 후회를 떨쳐내고 '지금'에 좀 더 집중해나갈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게으른 고양이처럼. 
- 박미현 『날마다 미니멀라이프』 <워킹맘의 전략적 선택은 미니멀라이프> 중에서




2017년 작은 거실 가득, 방 가득 찬 물건들을 보고 있다가 

'아, 어지러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찾아 읽었던 책 한 권으로 나의 미니멀라이프가 시작되었다. 

'물건을 비우면서 마침내 진짜 나를 발견했다'라는 저의 말 한마디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 

마음으로만 생각했던 막연한 계획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시작은 미니멀라이프가 뭔지, 내가 정말 원하는 미니멀한 삶이 뭔지 모른 채 시작한 무작정 버리기였다. 

그러다 차츰, '내가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비슷한 류의 책을 찾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 비움의 기술을 통해 한 가지씩 배워가면서 내가 원하는 삶에 조금씩 다가가게 되었다. 


첫 비움은 '책'으로부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모으기 시작했던 '책'은 나의 모든 욕심과 욕망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이걸 내려놓아야 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장 속의 책을 모두 다 비우기 전엔 두려움이 있었다. 

아, 이걸 다 비워도 내가 괜찮을까? 

나의 꿈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같은 두려움. 


그러나 막상 비우고 나니, 두려웠던 마음이 있었나 싶을 만큼 홀가분해졌다. 

그때 느꼈던 쾌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난 지금도 책을 사고, 읽지만 지금은 모으기보다는 읽은 뒤에 나눔을 통해 비운다. 때론 중고서점에 팔기도 하지만 이벤트를 통해 나누면서 더 큰 기쁨과 감사함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낡은 침대를 비우고,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던 화장대를 비우고, 

쓰지 않는 그릇들을 비우고, 입지 않고 쟁여만 두었던 옷, 신발, 가방들을 비워나갔다. 


혼자 '내 멋대로 하는 하루에 한 번 비우기 프로젝트' 같은 걸 하기도 했다. 

(이건 100일 만에 종료했다. 생각보다 하루에 한 번 비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미니멀 라이프란 신기합니다. 쓸모없는 것을 비웠을 뿐인데 이전보다 내가 조금은 더 쓸모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니 말입니다. 필요 없는 것들을 비우면 과거엔 모르던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모금함에 외국 동전과 지폐를 넣고 드렸던 기도를 다시 떠올리며 다짐해봅니다. "아무쪼록 서랍 속에 방치되어 있는 동그란 외국 동전이 어느 누군가에겐 동그란 희망이 되고, 구겨진 외국 지폐가 힘든 누군가에겐 빳빳한 용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앞으로도 제 삶에 쓸모없는 과욕을 쓸모 있게 비우는 지혜를 주세요." 
- 밀리카 『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미니멀라이프』 중에서, p129



결국 100일로 끝나고 말았지만 비우기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비움'이 주는 의미를 나름대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비움'은 '나눔'과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정리하는 삶, 비우는 삶을 산다는 게 많이 버겁다는 걸 느꼈다. 

그즈음 나의 비움이 시들해지기도 했다. 

돌아서면 쌓이는 아이들 물건을 어쩌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한참 이것저것 가지고 놀고, 어질러 트리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영역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주지 않고도 즐겁게 놀이할 수 있다는 엄마들의 이야기는 내겐 영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내겐 여전히 '미니멀라이프'는 계획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버리지 못하는 계획.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지키고 싶은 계획.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물건을 비우지 못하는 삶에 대해 조바심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것. 


내 기준에 맞춰 소비를 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행에 옮기고

불필요한 관계를 끊어내면서 불안하지 않고

내 마음을 내가 아끼고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미니멀라이프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살았다면 내 삶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낄 때마다 우울하고 속상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울러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삶의 포커스가 '최대한'에서 '최소한'으로 변화되지 많은 것에 감사하게 되었답니다. 예전에는 힐링 메시지를 담은 책에 쓰인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삶'이란 내용에 큰 감흥이 없었고, 성공한 스타 강사들이 '넘쳐나도 괜찮아요'같은 말을 하면 반항아처럼 부은 얼굴로 고개를 젓곤 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사소한 것부터 삶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뀐 건 스스로 놀라운 일입니다. 
- 밀리카 『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미니멀라이프』 중에서, p187



가계부를 쓰지 시작한 것도 이즈음. 

'절약'보다는 '내 소비의 기준'을 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가계부는 돈을 모으고, 생활비를 확 줄이는 마법 같은 효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냉장고에서 버려지는 식재료를 최소화할 수 있었고, 집 밥을 해 먹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고 감정 소비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심플하게 산다는 것이 '물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심플하게 산다는 것은 단지 간소한 삶에 만족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플한 삶은 보다 고결한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동경하는 것이기도 하다. 심플한 삶은 모든 것을 즐길 줄 아는 것, 가장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것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을 뜻한다. 주어진 모든 것을 유익하게 이용하는 것을 뜻한다. 많이 소유하지 않는 삶과 초라하게 사는 것, 궁핍한 마음으로 사는 것은 다르다.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잘 살려면 결핍 앞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하며 물질적인 것을 행복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안겨 줄 재산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 삶이 풍요롭지 않다면 그 재산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중에서, p230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54평이다. 

부부 2명에 어린아이 2명이 사는 집에 그리 넓을 필요가 있을까 싶지 않을까 싶은데, 

맞다. 절대 절대 필요하지 않다. (살면서 더 느끼는 부분이다)                                              


왼쪽 : 이사전 집 / 가운데, 오른쪽 : 이사 후 거실과 안방                                                     


                                                                                                                                                          

이제 이사한 지 딱 1년쯤 되어가는데,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급하게 이사를 하면서 

이사를 가야지 생각했던 아파트 단지에 매물이 너무 없었다. 

살고 있던 집은 팔리지도 않은 상태로, 전세 세입자가 결정되어 급하게 이사할 집을 알아보느라

여기저기 잴 여유도 없었다. 


사는 거 아니니까, 전세로 살 때라도 큰 집에서 살아보지 뭐, 쉽게 내린 결정이었다. 


하- 

살아보니 넓은 집이 좋은 건 없다. (둘째가 이리저리 뒹굴뒹굴하며 다닐 땐 '넓으니 좋네' 하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뿐이다). 

청소하는 게 힘들고, 공간이 많다 보니(공간에 비해 우리 짐이 너무 없다) 무언가를 가져다 놓아도 넓게만 보여 정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엉망진창인 부엌이, 지저분한 서랍 속이, 치워도 치워도 티가 안 나는 거실이, 필요 없는 것들을 쌓아둔 방 한구석이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간에서 느껴지는 어수선함도 그랬지만, 

요즘 들어 유독 마음에 걸리는 게 내가 버리는 것들(쓰레기)였다. 


줄이자고 다짐하는데도 쉽게 줄여지지 않는 일회용품, 스티로폼, 비닐 같은 것들. 

하루에 한 번씩 종량제 봉투에 채워지는 쓰레기들. 

텀블러 하나 사용한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죄책감(이건, 요즘 들어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환경에 대한 죄책감이다). 


미니멀라이프로 시작해 제로 웨이스트에 도전해보자는 (지금으로서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도전. 

그걸 시작해보려고 한다. 

물론, 시작부터 거창할 수 없고, 단기간에 이룰 수 있으리라는  헛된 계획은 세우지 않기로 했다. 


처음 미니멀라이프를 꿈꿨을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버리면 되는 걸로 생각했던 때처럼

이젠 그냥 버리는 걸 좀 줄이면 되지,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하는 도전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평균적인 한국인들의 인생 중 단 하루를 장식하기 위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놀랍고, 드라마틱하며, 심지어는 신경질이 나기도 한다. 거기에 세계 소비자 사회의 수십억 회원들이 곱해지면, 그것은 지구가 견뎌낼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줄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 될 필요는 없다. 지구에 스트레스를 거의 주지 않는 다른 기술들, 좀 더 균형 잡힌 생활양식, 청정 산업, 개선된 법들과 같은 혁신은 우리의 일상생활이 지구에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 미래를 우리에게 약속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변화는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기 않다. 퍼즐을 맞출 때처럼 모든 필요한 조각들은 이미 거기에 있다. 그것들을 제자리에 끼워 넣는데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  존 라이언  『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54킬로그램> 중에서, p13


수세미와 행주를 바꾸는 것으로 첫 도전을 시작했다.                                               


직접 구입한 천연 수세미 루파 & 소창 행주


                                                                                                                                                        

내가 가장 많이 손을 데는 곳이 부엌이고, 

직접적으로 내가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부분도 부엌이 아닐까 생각했다.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비닐 랩 사용 줄이기 같은 것들. 

행주 역시 (삶는 게 귀찮아서) 일회용을 쓰기도 했는데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꿔보자 마음먹었다. 


이게 뭐 대수라고? 이걸로 과연?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난 불량한 미니멀리스트니까. 

불량한 제로 웨이스트라도 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인생은 선택의 순간들이 만든다. 아침에 뭘 입을지, 점심은 뭘 먹을지 같은 사소한 선택들이 하루를 만들고 인생을 만든다. 편리함이 미덕인 현대 한국 사회에서 환경을 위한 선택은 너무나 불편해서 매번 그만두고 싶어 질 정도다. 환경을 위한 선택은 많은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괜찮겠지?' 생각하면 또 다른 잣대와 기준이 나를 가로막는다. 차라리 일회용품을 아예 안 쓰고 살고 싶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주변에 산재한 환경문제와 그 진실을 저버리고 그만두는 선택을 하는 건 더 많은 죄책감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경.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이미 주변에 말을 많이 해놨기 때문에 내가 간혹 플라스틱이라도 쓰면 다들 신기하다는 듯 한 마디씩 하는 통에 타의에 의해서라도 지켜나갈 수밖에 없어졌다. 더 부지런해져야 했고, 때로는 '보부상'이라고 놀림을 받지만 내 가방 속에는 일회용품을 안 쓰기 위한 물품들이 점점 더 늘어간다. 

아는 게 많아지면 불편한 것도 많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선택이 돌고 돌아 나에게 영향을 준다면 그리고 나의 한 가지 선택에 다른 생명이 사그라진다는 걸 알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나 하나 편한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을까? 요즘 한국에서는 정치, 사회 불문하고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 반갑다. 예전에 우리는 환경에 관심이 없어도 불편함이 없었지만, 기후변화, 미세먼지 등 다양한 환경문제가 우리의 삶과 밀접하기 때문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은 테이크아웃 종이컵이 좋고, 배달음식이 편리하고, 고기가 진리인 나라다. 미세먼지로 나빠진 공기에는 공기 청정기, 더워진 날씨에는 에어컨을 켜면 된다고 생각한다. 돼지가 살처분되면 소고기와 닭고기를 먹어야겠다고 말한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지니고 그 행보를 걸으면 인정하고 응원하기보다 감시하고 참견하는 사람이 많다. 나에게 누군가 "너나 잘해"라고 말하면? 그렇다, 일단 나부터 잘하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환경문제에 관해 알게 된 이상 당신도 한번 도전해보면 어떨까?
 - 『페이퍼- 지구 씨, 안녕하신가요?』에 수록된 신고운 <환경을 위하 내 안의 고민 그리고 결국, 실천> 중에서, p56




미니멀라이프에 다가가야지 노력할수록

'비움'보다는 '비움'을 통해 채워지는 따뜻한 마음과, 감사를 경험했으니 

이젠 제로 웨이스트에 다가가야지 하는 노력을 통해 

환경에 유해한 것들을 '버리지 않음' '소비하지 않음'을 통해 또 다른 채움과, 감사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에게서도 받을 수 없는 선물을 선사해주지 않을까. 


20200106



■ 인용한 책 


1. 박미현 『날마다 미니멀라이프』 조선앤북, 2017

https://poohcey.blog.me/220978227526


2. 밀리카 『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미니멀라이프』 나는북, 2018

https://poohcey.blog.me/221220293357


3. 존 라이언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 그물코 2002

https://poohcey.blog.me/221322619622


4. 『PAPER - 지구 씨, 안녕하신가요?』 

https://poohcey.blog.me/221732169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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