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들
아이들이 온다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하루하루 긴장감이 더해졌다. 통화하면서 큰딸은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을 지나가는 말로 흘렸다. 세 명의 아이가 오니 집에서 가장 큰 방은 당연히 아이들 차지다. 짐이 많아 아이들 옷을 넣어 둘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장롱 한편을 비웠다. 빨아 놓은 이불도 마당에 줄을 걸고 햇볕에 말렸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마당에 놓을 흔들 그네도 주문했다.
딸은 이번 여행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어 공부를 체계적으로 시키고 싶어 했다. 언어 교육은 또래 아이들과 노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같아 공교육 기관을 알아봤지만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공부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학습지 학원을 다니는 것은 가능했다. 학원을 한 두곳 가기로 결정했다. 잠시나마 아이들에게 학원이라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육아는 아이들 먹이는 것을 만드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딸은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도 직접 하고 어디를 가든 아이들을 데리고 갈 것이니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결혼 전 기회가 없어 잘 알지 못했는데 딸은 음식을 잘한다. 손님초대도 어렵지 않게 하고 있다. 아이 셋을 키우며 대단한 내공이 생긴거 같다. 그렇다고 내가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미국에 가기 전 먹었던 간장게장은 큰손녀의 소울프드다. 간장게장을 주문했다. 아이들에게 김치 맛을 알려주고 싶어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하얀 물김치도 담갔다. 대형마트와 동네마트 오일장까지 돌아다니며 식재료를 보이는 대로 사들였다.
정해진 시간이 다가왔다. 미국 중북부 노스다코다, 인구밀도가 적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살지 않는 곳, 직항이 없어 비행기를 갈아 타야 갈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딸네 다섯 명의 식구가 집을 출발한 지 30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저녁 8시쯤 예정이었으나 비행기 연착으로 11시가 넘었다. 큰딸 부부와 아이들은 기진맥진 힘들어했다. 식구 모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한국에 온다고 큰 아이들은 몇 달 전부터 이날을 기다렸고 기다림으로 긴장했는지 1~2주 전부터 큰 아이부터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들과 아이 아빠까지 몸이 좋지 않았다. 모두들 지쳤고 준비를 해 놓은 음식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비행기 안이 건조해서 그런지 엉망이 된 18개월 막내 얼굴은 회복되지 않았다. 계속 찡찡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큰딸부부는 고전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나는 잠을 자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밖이 소란스러웠다. 한 밤중인데 아이들은 놀고 있었다. 시차 때문에 밤낮이 바뀌어 며칠을 그렇게 지냈다.
며칠 지나자 아이들이 점점 활발하게 기운을 차렸다.
집안이 시끌벅적했다.
둘만 살던 조용한 집에 생기가 돌았다.
나는 손녀만 다섯 명을 둔 외할머니다. 큰딸이 딸을 셋, 작은딸이 딸을 둘 낳았다. 9년 전 첫 손녀의 탄생으로 차례차례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들이 모두 딸이다. 나도 딸만 낳았는데 우리 딸들도 딸만 낳았다. 예전 같으면 대를 이어 딸만 낳은 우리 집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은 누구도 서운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러워하며 '애국자다' '힘들겠다' '고생했다' 등 아이의 성별과는 상관없는 덕담만 해 준다. 성별에 연연하던 시절 왜 그렇게까지 아들을 바랐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하다.
첫 손녀가 태어났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할머니라는 생각이 없었다. 결혼한 딸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바빴고 나는 딸을 보내고 시간의 자유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딸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개의치 않았고 시간이 갔다. 예정일을 3주 정도 앞두고 사위가 전화를 했다. 갑자기 산기가 있다고 했다. 출산 소식을 듣고도 나는 무덤덤했다. 아이를 낳았다는 사위의 전화를 받고 나는 볼 일을 다 보고 저녁에나 병원에 갔다. 아이를 보는 순간 친탁을 한 손녀가 우리 식구 같지 않고 낯설었다. '나는 계란형 얼굴의 아이를 낳았는데 우리 딸은 동그란 얼굴의 아이를 낳았군' 하고 생각했다. 딸은 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고 2주 후에나 우리 집에 오기로 했다. 이제부터 일정을 조정하고 서서히 아이 맞을 준비를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외할머니가 되었다는 실감나는 일이 생겼다. 병원에서 첫 손녀를 보고 돌아온 지 2~3일 후 급한 연락을 받았다. 아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다시 병원에 입원했고 아이가 퇴원하더라도 다시 조리원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2 주간 산후조리원에 있을 거라 예상하고 여유롭게 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산모와 아이가 갑자기 집으로 오게 된 것이다. 산후조리원이라는 한국의 좋은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고 딸은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게 되었다.
아이가 오기 전날 소식을 듣고 갑자기 막막했다. 우왕좌왕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내일이면 태어난지 며칠 되지 않은 아이와 산모가 오는데 준비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하루 종일 아울렛과 마트를 뛰어다니며 이것저것을 사 날랐다. 산후조리는 물건만 있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출산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30년이 지나 모든 것을 잊었는데 기억을 새롭게 하는 일부터 난감했다. 산후조리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고 음식을 만들고 아기 돌보는 스킬을 다시 배우고 정신 없이 시간을 보냈다.
30년 전 내가 딸을 낳았을 때가 생각났다. 남편 직장이 있는 지방에서의 신혼생활과 아이를 낳았던 일, 친정 엄마가 창원까지 오셔서 산후조리 해주시던 일, 아이를 키우거나 키우는 것을 본 일도 없던 내가 누구의 도움 없이 두 아이를 키우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육아는 마치 신세계를 경험하는 거 같았다. 아이는 입이 짧아 먹지 않고 성격이 예민했다. 남편과 나는 하루 걸러 밤을 새웠다. 당시는 회사에 올인하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토요일 어떤 주는 일요일까지 출근했다. 친정 엄마가 서울로 돌아가시고 누구 한 사람 나의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고 아이 키우는데 일어나는 일을 물어볼 사람조차 없었다.
산모와 아이가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한다. 보통은 신기하게도 아이도 산모도 3주쯤 지나면 한시름 놓을 만큼 회복이 된다. 아이를 낳았을 때 3,7일 되는 날 아이 머리맡에 미역국을 놓고 삼신할머니께 고맙다고 인사드려라 하고 시어머님과 친정엄마가 말씀하신 것을 미신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옛 어른들이 3,7일을 기념하는 것이 괜한 의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손녀가 태어날 때마다 쉬운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이가 아프거나 산모가 아팠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무사히 20여 일 지나면 한시름 놓였다.
18개월 전 미국에서 다섯째 손녀가 태어났다. 나는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고 미국까지 달려갔다. 출산이 가까워졌을 때 엄마가 미국에 온다고 했지만 진짜 미국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위로 두 아이가 있는데 셋째를 출산하는 딸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일정을 조율하고 비행기표를 끊고 미네아폴리스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딸이 있는 파고로 갔다. 딸과 사위는 기적같이 엄마가 왔다로 말한다. 손녀가 3,7일이 되는 날 나는 딸의 산후조리를 마치고 돌아왔다. 딸 부부는 엄마가 미국에서 산후조리를 도와준 일이 꿈만 같았다고 말한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물론 위의 두 아이까지 돌봐야 했다. 미국에서의 출산은 우리나라처럼 유난스럽지 않았다. 마치 동물이 새끼를 낳아 키우듯 자연스러웠다. 산모가 병원에서 퇴원하면 집에서 일상을 영위하면서 회복했다. 큰 아이 두명은 동생이 생겨서 너무나 좋아했다. 인형놀이에서 경험이 많은 둘째는 인형과 동생의 구분이 잘 되지 않는지 우유도 직접 먹이고 기저귀도 직접 갈겠다고 아이 옆을 떠나지 않았다. 두 아이와 새로 태어난 아이는 자연스럽게 세상에 적응해 갔다. 며칠 후 아이에게 황달이 왔을 때 병원에서는 마치 큰 아이를 다루듯 신생아를 대했다. 안아 주기도 조심스러운 신생아인데 무슨무슨 검사를 하겠다고 매일 매일 피를 뽑다니... 힘들게 병원진료를 하는데 병원에서 해 주는 것은 거의 없었다. 도리어 내가 돌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 넘게 딸의 산후조리를 도운 것은 큰 아이들과 내가 애착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만약 내가 직접 돌봐주지 않았다면 아이들에 대한 정이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 사이의 정은 함께 한 시간이 많을수록 많은 어려움을 겪을수록 많이 생긴다. 한국 온 큰 아이에게 뭘 해줄까 물어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정말로 정신이 없다. 계속 뭔가 만들어 먹여야 하고 치워야 하고 위험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소리도 질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해 보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싶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 커서 다시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 덕분에 나는 외할머니가 되었다.
이번에 큰 딸네 가족이 왔다.
너무나 반가웠다.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글로 써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