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놀이터
아이들은 끊임없이 뭔가 해야 시간이 간다.
큰딸과 세 아이가 두 달 동안 있을 것이라고 했을 때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위로 두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로 했지만 하루 두세 시간이면 족하다. 물론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감안해서 반나절은 갈 것이라 예상하지만 아이들이란 순간도 움직이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특별한 동물이기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시간이 많이 남는다.
시차 때문에 밤 시간에도 놀아야 하는 아이들을 부모라고 어찌할 수 없었는지 TV를 틀어주고 떠들지 못하도록 했다. 새벽에 깨어 보니 아이들은 몇 시간째 '닌자고'라는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다. 닌자고는 일본만화인데 큰손녀가 무척이나 좋아한다. 미국에서도 닌자고 보는 것을 봤는데 한국에 와서까지 닌자고를 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차이점은 미국에서 영어로 봤는데 이곳에서는 한국어로 본 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만화영화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 애들이 사는 곳은 미국인데 얼굴은 한국인이고 머릿속은 일본의 문화와 정서로 채워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노인들의 괜한 걱정'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할머니 입장에서 나는 아이들이 우리의 정서로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이들 앞날까지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 관심을 다른데 돌리고자 모두 밖으로 나가 놀라고 했다.
아이들과 마당에 나왔다. 아침 공기가 맑고 시원했다. 한창 장미의 계절이다. 정원에는 빨간 장미와 노란 금계국과 낮달맞이꽃이 한창이다.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신이 났다. 아이들 위해서 산 흔들 그네에는 잠깐 앉아볼 뿐 별 관심이 없었다. 잠에서 깬 아이들 엄마와 막내까지 마당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뛰어다니는데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고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왔다.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는 사이 아이들은 한참이나 마당에서 놀았다. 아이들이 마당 한가운데를 삽으로 파고 있었다. 어제부터 큰손녀는 마당에서 땅을 팠다. 남편이 제일 정성을 들이며 가꾼 마당이 여기저기 파이고 엉망이 되었다. 의외로 남편은 아이들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손녀들에게는 한 없이 관대했다.
"뭐 하는 거니?"
"Pond 만들어요."
그런데 물을 부으면 물이 없어져요.
할아버지 Water proop 할 방법을 알려주세요."
연못을 만들겠다고 땅을 파고 그 안에 물을 떠다 부으니 물이 땅에 스며들었다. 할아버지에게 물이 더 이상 스며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남편은 커다란 비닐을 가져와 파 놓은 땅을 덮고 가장자리를 흙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 위에 물을 부으라고 알려 주었다. 아침 몇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전날에도 마당에서 땅을 팠다. 파 놓은 흙에 물을 부어 죽을 만들며 놀았다. 물이 흐르니 물길을 만들어주면서 놀았다. 오늘은 전날보다 땅을 파는 실력이 좋아졌고 연못이라는 모양도 갖췄다. 전날은 삽과 수레를 놀던 그대로 마당에 놓고 들어갔는데 오늘은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들어갔다. 확실하게 발전하는 모습이었다.
마당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터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봐주어야 한다는 개념이 마당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마당에서 아이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어른들 또한 자신들의 일을 한다. 하지만 어른이나 아이나 마당에서 하는 일은 일이라 느껴지지 않고 놀이라 느껴진다. 마당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노는 공간이다.
마당은 잔디밭과는 또 다르다. 잔디밭은 얼마나 잘 가꾸었나 신경이 쓰인다. 마당의 본질은 비어있는 평평한 공간이다. 그 공간의 용도는 다양하다. 잔디밭 보다 마당에서 뭔가 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마당은 보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얼마나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마당에서의 활동은 모래밭보다 창의적이다. 땅파기놀이 모래놀이 달리기 놀이....
주어진 놀이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놀이를 결정할 수 있는 공간이다.
관리가 어렵고 보기에 아름답지 않아 마당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아이들의 놀이공간이 거의 없다.
아이들에게 마당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