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입원하신 병원에서
오빠와 병원 현관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차들이 몰려오는 가운데 사설 엠브란스가 보였다. 오빠가 통화하면서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묶인 채 엄마가 내렸다. 휠체어로 옮겨 탄 엄마는 상기되고 약간 겁에 질려 계셨다.
오빠가 빠르게 입원 수속을 마쳤다. 병실이 정해졌다.
77 병동, 병동을 찾아가는 길부터 멀고도 험했다. 신관 구관 A동 B동 용어를 이해하고 엘리베이터를 찾고 급히 화장실에 가시겠다고 보채는 엄마를 위해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다니며 드디어 병실에 도착했다.
4인실, 엄마 침대는 화장실 바로 옆이었다. 침대 옆에는 옷가지와 간단히 물품을 넣을 수 있는 장과 작은 냉장고 접이식 의자가 있었다. 천장부터 내려온 커튼은 가리는 기능보다 ‘여기까지 당신들이 쓸 수 있는 공간입니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6시간 금식 후 CT 촬영이 예약되어 있었다. 다음날도 몇 가지 검사가 예정되어 있다. 검사가 끝나더라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 며칠은 병원에 계셔야 한다. 엄마를 돌봐 주실 간병인이 필요했다. 오빠는 등록된 간병인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순간 “오빠 오늘은 내가 병원에 있을 테니 천천히 알아봐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병원에서 *엄마와 오랜만에 엄마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10년 전 시부모님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는 자식들의 병원 간병은 흔한 일이었다. 요즘은 여차하면 간병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간병인이 없는 병원시스템을 갖춘 병원도 있다. 더욱이 엄마가 요양원에 가시면서 자식들은 한결 편해졌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엄마 옆에서 긴 시간을 보낼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원래 엄마는 우리 집 가까이 사셨다. 수시로 드나들며 엄마의 일상은 나의 일상과 거의 겹쳐 있었다. 엄마 침대는 거의 내 침대였고 엄마 옆에 누울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가 고관절과 대장암 수술을 한꺼번에 받으신 이후 집으로 오시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가셨다. 지금은 엄마집에 가더라도 엄마는 안 계시고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아마도 엄마가 요양원으로 가신 후 우리 형제 누구도 엄마와 함께 밤을 보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요양원 생활에 적응을 잘하셨다. 우리가 가면 어떻게 지내시는지 자세히 말씀하셨다. 오전에는 모여 차를 마시고 요일마다 다른 프로그램에 따라 뭔가 배우고 오후에는 물리치료와 운동을 하신다고 하셨다. 엄마에게 갈 때는 평소 떡을 좋아하시니 떡을 사 가기도 하고 집에서 담근 김치가 드시고 싶다면 김치를 갖다 드렸다. 식사가 우리의 주된 관심사였다.
오늘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잘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침대는 환자인 엄마의 자리고 침대 앞에 있는 접이식 의자가 내 자리다. 접이식 의자를 펼치면 내가 잘 수 있는 침대가 된다. 아쉬운 대로 오빠가 차에 있는 이불 하나를 가져왔다. 편의점에 가서 칫솔을 사고 간식거리 귤도 한 통 샀다. 오늘 일정에 있던 CT촬영이 끝나고 엄마의 금식이 해제되었다. 엄마를 모시고 오빠와 식당에 가서 저녁을 든든히 먹고 오빠가 돌아갔다. 드디어 엄마와 자는 밤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병원에 도착하면서부터 한 시간에 두서너번 화장실을 찾으셨다. 왜 그러시는지 모른다. 오늘 검사에서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화장실 사랑은 주무시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엄마가 화장실 의사만 비추면 나는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화장실로 급히 갔다. 휠체어를 변기 가까이 바싹 붙이고 엄마를 들어 방향을 바꾸고 변기에 앉히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시원하게 일을 보시지 못하시고 얼마 지나면 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엄마의 화장실 사랑은 계속되었다. 9시가 넘어 10시 가까이 되니 병실이 조용했다. 옆 환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간호사가 진통제라며 알약 하나를 주었다. 그 약을 드시고 잠이 오는 것 같았다. 나도 엄마도 잘 준비를 했다. 주무시다 떨어질 수 있으니 침대 안전바를 올려 드렸다. 엄마는 갑자기 눈을 뜨시며 안전바를 올리지 못하게 하셨다. 할 수 없이 벽 쪽으로 붙어 누우시라고 했다. 엄마가 잠이 드신 것을 보고야 나도 잠을 청하기 위해 작은 간이침대에 누웠다.
잠자리가 바뀌니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우선 병원 온도가 너무 더웠다. 추운 날씨만 생각하고 두꺼운 옷을 입고 왔는데 너무 더워 옷을 입고 잘 수 없을 거 같았다. 밥을 먹고 오는 길에 병원 지하 복도에서 파는 얇은 옷을 샀는데 그 옷으로 갈아입었다. 병실이 조용해지고 어느새 나도 잠이 들었다.
몇 시가 되었을까 잠에서 깨어 두리번거렸다. 뭔가 이상했다. 엄마가 누워계신 침대를 봤다. 침대 위에 누워 주무셔야 할 엄마가 안 계셨다. 무슨 일이지? 순간 급하게 몸을 일으켜 이리저리 돌아봤다. 병실은 조용하고 화장실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화장실 문을 여니 엄마가 변기에 앉아 계셨다. 너무나 놀랐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엄마는 입에 손을 대며 조용히 가 있으라는 손짓을 하셨다. 기다려 휠체어로 엄마를 다시 침대에 뉘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다시 잠이 드시고 나는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복도의 불이 문틈으로 환하게 새어 들어왔다. 모두가 조용했다.
얼마가 지나자 다시 엄마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엄마는 겨우겨우 몸을 옆으로 눕혔다. 한 손은 바닥을 짚고 다른 한 손은 침대 쇠를 의지해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셨다. 한참 숨을 고르시더니 몸을 밀어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는 버들버들 떨면서 침대 손잡이에 겨우 몸을 지탱해 일어나셨다. 엄마는 침대 쇠를 잡고 아주 조금씩 발을 떼기 시작하셨다. 미끄러지듯 아주 조금씩 조금씩 화장실 쪽으로 가셨다. 더 이상 모른 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이번에는 도리어 엄마가 놀라셨다.
병원은 어디나 환자들이 잡을 수 있는 바를 설치해 놓았다. 화장실 안에서 엄마는 한 손으로 바를 잡고 한 손으로 세면대 끝을 잡고 계셨다. 엄마는 다시 손짓을 하셨다. 조용히 가 있으라고..... 엄마를 부축해서 다시 침대에 뉘었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에게 물었다. 왜 깨우지 않으셨냐니까 혼자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노인들에게 낙상이 얼마나 무서운가 말씀드리고 요양원에서도 밤에 어떻게 화장실에 가시냐고 물었다. 요양원에서도 도움을 받지 않고 화장실을 혼자 가시려고 노력하신다고 하셨다. 낙상이 위험하니 차라리 기저귀에 일을 보시라고 했다. 엄마는 그럴 수 없다고 하셨다. 화장실에 가겠다는 의지가 확실하셨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기저귀를 이용한다. 엄마가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만일을 위해 기저귀를 차고 있다. 당신을 잘하고 계시다고 생각하지만 실수하시는 경우도 있고 특히 낙상의 위험이 크다. 엄마는 젊은 시절에도 한번 일어나면 다시 침대에 눕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항상 몸을 움직이셨다.
나는 항상 말해왔다.
"돌아가실 때까지 스스로 화장실에 가실 정도로 건강하셔야 해요."
나는 엄마가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것을 실천하고 계셨다.
엄마는 생을 마칠 때까지 화장실에서 일을 보시겠다는 신념을 갖고 계신 거 같았다.
자식들은 몰랐다. 엄마가 그렇게 힘들게 밤을 보내시는 것을. 밤마다 당신 자신과 사투를 벌이고 계셨던 것이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엄마는 거의 녹초가 되어 계셨다. 95세 노인에게 밤새 화장실 출입은 젊은이가 에베레스트 등정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연세가 많은 노인들은 하늘에서 부르실 때만 기다리며 별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줄 알았다. 엄마와 밤을 지내며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살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에 상관없이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누구나 힘든 일이다.
수 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걷는 아기에게도
불투명한 앞날을 걱정하는 젊은이에게도
가족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는 가장에게도
아픈 몸을 이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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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보내기 위해 누구나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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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