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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May 16. 2024

제사 - 1

친정제사


“유~~ 세차 ~~~ 효자 봉규  ~~~”      


아버지는 제사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구슬프게 축문을 읽으셨다. 


혼을 부르는 의식은 해가 저물어야 한다. 제사는 보통 밤 12시 가까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음식 준비로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의 인사로 분주하던 분위기는 제사가 시작되면 조용해졌다. 모두들 제사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제사가 시작된다. 주변은 컴컴한데 제사상 양옆 촛불이 분위기를 한층 엄숙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장손이셨다. 대대로 내려온 큰 아들은 아니다. 족보를 보면 할아버지 대에서 양자를 가셔서 장손이 되셨다.  엄마는 장손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하셨다. 엄마는 권리는 없고 의무만을 쥐어준 가난한 가문의 장손 며느리였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모든 법칙은 아버지와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 아버지는 내 새끼 키우는 것보다 우선시하며 집안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집안의 누구도 고마워하거나 미안해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제삿날이면 엄마는 하루 종일 바빴다. 제사 음식 준비는 물론 제사 지내러 온 일가친척의 끼니까지 챙겨야 했다. 친척들은 오는 사람마다 시간이 달라 제삿날 저녁은 횟수가 정해지지 않았다. 제사음식 장만하랴 상 차리랴 엄마는 이점을 가장 힘들어하셨다. 자정이 지나 제사가 끝나면 빙 둘러앉아 제사 음식을 먹었다. 화려한 야식 파티였다. 제사는 다음 날 아침까지 계속되는 큰 행사였다.


제사 다음 날 우리는 동네에서 인기가 많았다. 제사상에 놓았던 곶감 약과 산자 등을 들고나가 아이들과 나누어 먹었다.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 우리도 진오네처럼 제사 지내자고 졸랐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 제사가 기다려지기도 했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그나마 먹을 것이 풍부한 날이었다.     

          

점점 자라면서 제사는 나에게 더 이상 흥미로운 일은 아니었다. 매번 음식의 종류가 같았다. 엄마가 일이 많아 힘드신 모습을 보는 것은 딸로서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제사는 철저하게 남자 중심이다. 한쪽 구석에 잠이 들었다가 제사가 끝나면 물 한 모금 마시거나(옛 어른들은 제사에 올렸던 물을 마시면 무서움이 없어진다고 하셨다) 곶감 하나 집어 들면 그만이었다. 오빠는 끝까지 제사의 주인공이었다. 오빠는 제사가 끝나고 음복할 때까지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제사를 중요하게 여기던 우리 집에 변화가 생겼다. 정부에서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것을 발표하였다. 관혼상제의 허례허식이 심해서 사회문제로 여기던 정부는 이를 없애기 위해 의식절차를 간소화하라는 지침을 만들었다. 고등하고 윤리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이를 적극 수용하셨다. 제사의 횟수와 절차를 대폭 줄이셨다. 



나는 자라면서 엄마의 수고가 제일 마음에 걸렸다. 엄마는 고모나 작은엄마가 일찍 와서 돕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엄마가 재료를 준비해 놓으시면 나는 전을 부쳤다. 직장을 다닐 때는 명절이나 제삿날이면 일찍 퇴근하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은 역행할 수 없는지 제사는 점점 간소해졌다. 고모 작은집의 참석이 뜸해졌다. 참석하더라도 교회를 다닌다는 핑계로 절을 하지 않고 먼발치에서 보고만 있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제사는 돌아가신 분의 기일에 지내는 기제사, 명절에 지내는 차례, 일 년에 한 번 모든 조상에게 지내는 시제가 있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기제사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는 아침에 지내고 절차가 좀 더 더 간소하고 명절이기 때문에 분위기도 즐겁다. 시제는 일 년에 한 번 먼 일가친척까지 만나기 때문에 소풍 나온 기분이다. 기제사는 돌아가신 분을 안타깝게 생각해서 그런지 분위기가 무거웠다.

    

시대와 사회와 집안에는 나름의 문화가 있다. 형식은 종교나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제사는 유교문화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우리 집은 성리학을 근간으로 하는 유교문화가 자리했다. 조선시대 유교문화가 많이 사라졌지만 아버지는 주변에 대한 책임이 강하셨다. 그것이 삶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방법이었다. 그 중심에 제사라는 형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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