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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Aug 19. 2024

'나의 주거사'를 마치며

집은 편안하고 행복한 공간

첫 연재의 주제로 내가 살았던 집을 택했다.     

      

살아보면 집이 주는 행복은 대단하다. 

     

옛날에 엄마들은 차려입고 외출할 일이 많지 않았다. 친척의 대소사에 참석하는 일은 엄마에게 큰일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오시는 모습이 생각난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시고 해를 가리기 위해 쓰신 양산을 접으며 대청마루에 올라와 힘들게 버선을 벗으며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내 집이 최고야.”     


집에 돌아오면 긴 시간 긴장되었던 외출의 수고로움과 의례상 입었던 옷이나 장신구를 벗어 놓을 수 있다.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는 그 편안함과 안락함을 즐길 수 있는 곳에 도달했다는 표현이다. 이때 찬물 한 대접 들이키며 엄마는 세상을 모두 얻은 표정이었다. 엄마에게 집은 밖에서 즐겼던 화려한 잔칫상, 거추장스러운 복장, 사람들과의 의례적인 인사를 뒤로하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집은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어야 한다.       

              

내가 태어난 집은 성안에 있었다. 성은 나에게 고향을 기억하는 가장 강렬한 오브제였다. 성벽은 우리 마을을 지켜줬다. 집에서 바라보는 대문 밖은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전부였다. 골목에서 아이들은 뛰어놀았고 큰길로 나가면 쌀집 미장원 정육점 문방구 등등 볼거리가 너무나 많았다. 성벽에 올라 바라본 세상은 달랐다. 성벽에서 바라본 세상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도시와 시골, 문명과 비문명 성벽은 역사와 전쟁의 흔적을 말해 주었다. 나는 언젠가 내가 살았던 마을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집은 우리가 살아가는 중요한 의식주 가운데 자신이 의지대로 하기 힘든 부분이다. 집은 어느 나라에서 혹은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상당 부분 결정된다. 우리나라 주거문화는 내가 태어나서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였다. 해방과 한국전쟁 후 우리 사회는 너무도 많이 그리고 빨리 변했다. 몇 천년 살았던 고유의 주거인 한옥을 버리고 새로운 주거형식인 양옥을 선호하였다. 산업사회는 사람들을 도시로 불러들였다. 도시는 주택이 부족했다. 도시가 팽창하고 아파트라는 주거형식이 도시의 주택으로 자리했다. 내가 살았던 집을 돌아보면 마치 우리나라 근대사를 보는 것과 같았다.     

 

돌아보면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장소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가 장소로 기억되는 고향 어린 시절 추억에는 집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안정된 공간에 대한 기억은 사람이 일생을 살아 가는데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 고향에 대한 추억이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잊고 사는 것은 기억할 수 있는 집이 없다는 것과 같다. 이 사회가 마음이 각박해지는 이유는 어린 시절 집에 대한 애착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집을 기억의 장소로 생각하시는 분     


‘1화 집에 대한 나의 생각’에서 평소 내가 생각하는 집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태어나서 엄마와의 애착관계는 집이라는 공간에서도 형성된다. 애착관계가 형성되면 공간은 장소가 된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결국은 장소다. 어떤 사건은 일어났던 장소의 기억이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절 자랐던 집을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나는 어린 시절 모든 사람들이 집의 인근에는 성이 있는 줄 알았다. ‘2화 나는 부르주아, 상 안에 살았다’ ‘3화 너무나도 그리운 그 집’ ‘4화 전쟁의 흔적’에서 성안에서 살았던 기억을 적어 보았다.      



- 우리나라 주거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


주거형태가 삶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사회적으로도 국민총생산이 늘면서 우리나라 주거형태가 달라졌다. ‘ 100억 불 수출’을 대대적으로 기념했던 시기 나는 중학교를 다녔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이 100억 불인데 미국은 한 회사가 100억 불을 버는 회사가 있단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한국전쟁 끝나고 어려운 시절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산업화 도시화로 서울이라는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인구가 느는 만큼 그들이 살 집이 필요했다. 서울시는 그 많은 사람이 살 집을 계속 지었다. 그 시기 우리 가족도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시 주변지역은 서울시로 편입되었다. 많은 땅을 차지하는 한옥은 점점 양옥이라 불리는 새로운 주거형식으로 바뀌었다.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형식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부실공사로 아파트가 무너지는 일이 생겼다. 나라가 들썩들썩했다. 지금과 같이 아파트가 우리나라의 주축이 되는 주거형식으로 자리하기까지 서울은 역동적으로 변했다. 그 시절 사람들의 삶보다 아파트 가격에 정신을 빼앗겼다. 

     

‘5화 우리는 중산층인가?’에서 70년대 우리 가족이 처음 서울에 올라와 살았던 우리나라 초창기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중산층의 뜻도 모르고 중산층 아파트에서 살았다. ‘6화 서울사람’에서는 서울의 외곽에 대단위 개발된 주택단지에 이사하면서 살았던 이야기다. ‘7화 아버지가 지은 집’은 아버지가 땅을 사서 지은 2층 집에서 살았던 이야기다. 결혼 전까지 상가주택 2층에서 살았다. 여기까지는 사실 내 집이 아니라 부모님 집에서 내가 살았던 이야기다.   

   

‘8화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한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되면서 집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동물이나 새끼를 키우려면 안전한 서식처가 있어야 한다. 사람 또한 아이를 낳고 키우려면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안전한 정주공간이 필요하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학교 유치원 병원 등 주변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아이를 낳고 키우기 힘들다. 요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울만한 정주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일가친척의 도움 없이 홀로 아이 키웠던 이야기다.  ‘9화 3대가 살았다’는 시부모 모시고 대가족이 살았던 이야기다. 삶이란 간단하지 않았다. 대가족을 돌보는 일은 나에게는 너무도 힘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던 거 같다. 사람 사이 일어나는 다양한 경험으로 아이들은 이해의 폭이 넓어져 어디나 적응하며 잘 살고 있다


 

- 은퇴 후 전원생활이 궁금하신 분     


은퇴 후 시간을 여유롭게 전원에서 보낼 것인가 기존에 살던 도시에서 보낼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막상 실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원했는지 아니면 원하지 않았는데 와서 살아보니 좋은 건지 알 수 없다. 어쨌든 나는 시골에 살고 있다. 도시에 살다가 시골에 와서 살게 된 과정을 적어보았다.

    

'10화 나무처럼 자라는 건물'에서는 화려한 도시 생활에 대해 적었다. '11화 내가 왜 여기서 살지?'는 시골집을 사는 과정을, '12화 내 집이 되기까지...' '13화 이야기가 있는 집 집에도 역사가...' '14화 친환경 재료' ' 15화 살기 좋은 곳' '16화 두 번째 고향을 떠나다 ' '17화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에서는 전원주택의 리모델링 과정과 도시를 완전히 떠나고 이사하는 과정을 적어 보았다.     


      

- 이웃과의 소통에 관심이 있으신 분     


사람은 사람 사이에 산다. 집은 결국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고고하게 홀로 살고 싶어도 사람 사이에 부딪치는 일이 허다하다. 사람 사이가 불편하면 고대광실에 살아도 마음이 좋지 않다. 사람의 행복은 결국 사람 사이에서 온다.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친구 간에 소통하지 않으면 불편하다. 이웃과의 소통 또한 마찬가지다. '18화 적당한 거리 그리고 관심' '19화 담장, 그 의미는?'은 이웃 간의 소통이 또 하나의 행복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큰 사위가 주재원으로 미국에 가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돌아오면 살고 있던 아파트에 다시 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 집과 전세금까지 합한 금액의 아파트를 사서 세를 주고 미국으로 떠났다. 사람들은 재테크를 잘했다고 한다. 기존에 살던 아파트보다 새로 산 아파트가 더 많이 오를 테니까. 


동생네가 아들네랑 함께 산다고 한다. 아들네가 인근에 사놓은 아파트가 있다. 인근의 아파트는 젊은이가 사기에는 너무 높은 가격이어서 전세금을 갚은 때까지 한시적으로 아들네가 집으로 들어와서 살기로 했다고 한다. 3대가 함께 사는 것은 좋은 점이 많이 있다. 육아를 함께 할 수 있고 부모 입장에서 손주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작은딸은 부부의 직장이 떨어져 있다. 육아를 하려면 어느 한 사람의 직장가까이 사는 것이 효율적이다. 딸의 직장 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정하고 첫째를 딸의 직장에 있는 유치원에 보냈다. 둘째를 낳으면서 육아휴직 기간에 사위 직장 가까이로 집을 옮겼다. 이제 딸이 복직할 시기가 되었다. 딸과 사위 중 누가 주양육자가 되느냐는 누구의 직장 가까이로 집을 정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모든 사람들은 각각 다른 사정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사회적인 외부환경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보다 세상은 참으로 좋아졌다. 어디에 살든 나라와 거리에 구애받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부부 사이도 우리 시대보다 평등해졌다. 주거환경 또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개선되었다. 상황만 허락한다면 집을 재테크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사람들이 주거난민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의 기우일까? 집이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에는 예전만 못한 거 같다.


사람들에게 집이 편안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자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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