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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Jul 29. 2024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

이사

정리가 유행이다. 분야별로 정리의 아이템은 끝도 없다. 부엌 화장실 창고 등등 집 정리만으로도 수많은 아이템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유튜브에서 한 가지 보면 알고리즘에 의해 정리 아이템이 줄줄이 뜬다. 정리에 관해 출간된 책도 많다. 어쩌다 손에 닿아 보게 되면 도움이 된다. 옛날 같으면 옆집 아줌마에게나 들었을 듯한 살림의 꿀팁부터 전문가의 경험과 노하우를 담고 있는 내용까지 수없이 많다. 사교적이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은 평생 알지 못하고 답답하게 살았을 것을 스마트폰 컴퓨터 각종 서적 덕분에 이제라도 알게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좋은 세상이다.      


집안을 잘 치우고 살면 되지 정도로 생각했다. 청소와 정리는 다르다. 청소는 단지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만 정리는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하거나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종합하여야 한다. 더 나가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거나 없애서 말끔하게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리는 단순히 치우는 것을 넘어 정리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철학을 동반하기도 한다.   

   



나는 물건을 정리하는 것만이 정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 좋은 생각, 쓸데없는 걱정,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머리에 두고 사는 것은 인생에 큰 낭비다.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신이 더 중요하냐 물질이 더 중요하냐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무리 정신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주변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면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인간의 미에 대한 욕구는 지저분한 주변환경에서는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이 물자가 풍부한 시대에 쇼핑 전에는 버릴 것부터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비싼 물건도 쓰지 않으면 쓰레기인데 생각 없이 물건을 사는 것은 재앙이다. 이런 생각으로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시간이 지나면 집안의 물건은 점점 쌓여간다. 혈관에 지방이 끼듯이 불필요한 물건을 계속 버리지 않으면 집안에는 쓸데없는 물건이 자리를 차지한다. 모든 물건은 용도가 다 했을 때 아직 쓸모가 있다면 남에게 주고 쓸 수 없다면 버려야 한다.      


이사는 집을 정리할 절호의 기회다. 온 집안을 뒤집어 쓸데 있는 것과 쓸데없는 것을 가를 수 있는 시간이다. 정리 전 고민하게 된다.     


 



어느 것을 남기고 어느 것을 버릴 것인가?      




이번 이사는 5년간의 두 집 살림을 합치는 것이다. 기존에 시골에 있던 짐도 많은데 모든 짐을 가져온다면 아파트에서 살던 집의 두 배가 넘는다.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을 나누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사 몇 달 전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사실 집의 물건들이 복잡해 보여도 그릇을 비롯한 살림살이, 옷, 책 등 서너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가 이번 이사하면서 할 일이다. 


기본적으로 가전제품은 시골에서 물건이 더 새것이다. 가구는 아파트에서 쓰던 가구가 시골집에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가전제품과 가구를 대부분 당근에서 나눔 하였다.  이제 기능을 마친 물건을 처분해야 하는 사람과 필요한 물건을 싼값에 구입할 사람을 연결해 주는 당근은 참으로 좋은 플랫폼이다. 사람들은 사회가 각박해지고 있는 것을 걱정하지만 한쪽에서는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도 많으니 모든 제도는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이사하면서 가져가야 할 물건 중 그릇이 많다. 나는 물건 사는 것을 극히 꺼리고 살았다. 시댁에는 그릇이 많았다. 어머님은 음식에 관심이 많으셔서 좋은 그릇을 많이 지니고 계셨다. 지금 지니고 있는 그릇도 많아 일부를 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분가할 때 그 그릇들을 제대로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다. 어머니가 특별히 신경 쓰시고 나에게 주셨던 것은 제사에 필요한 그릇이었다. 장남이기에 물려받은 제사는 곧 제기를 포함한 제사에 필요한 여러 도구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2~30년 전 영국 도자기가 유행이었다. TV드라마에서 부잣집 밥상은 포트메리온으로 채워졌다. 당시 유행했던 포트메리온 로양달톤 웨찌우드 등 유럽 도자기를 나도 몇 개 구입하기도 하고 선물도 받았다. 그렇게 대단해 보이던 도자기가 유행이 지나고 가격이 내리니 전만큼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유행이 지나자 그 그릇들은 지금 찬장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특별히 필요하지 않으면 그 그릇들을 꺼내지 않는다. 해외 도자기들이 하나하나 예쁘기는 하지만 그릇이 너무 화려하다. 음식을 담으면 음식 자체가 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남의 옷 빌려 입은 느낌이다.       


나는 30년 전 시집살이 하면서 쓰던 그릇을 지금도 쓰고 있다. 이 그릇 대부분은 어머님이 50년도 전에 구입하신 것이다. 사발 대접 보시기 바라기 종자 공기 접시 등등 있다. 대부분 흰색 백자다. 내가 백자를 좋아하는 것은 어느 음식을 담 든 그릇이 음식을 넘어서지 않는다. 백자에 무심하게 그려진 소나무 그림이 있는 대접에 편수를 먹으면 나의 품위도 올라가는 듯하다. 어머님이 몇 년을 사용하셨는지 모른다. 내가 결혼해서 시댁에서 사용하던 그릇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음식을 담고 닦아 올려놓는다.     


           

백자에 무심하게 그려진 한그루의 소나무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포트메리온을 밀어낸 우리나라 도자기다




피아노를 30년 전 상당한 거금이었다. 아이들은 커서 출가해서 칠 사람도 없다. 오랜 시간 방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 아사할 때 어떻게든 처분하려 했다. 너무 무거워 누구도 가져가려 하지 않고 팔아도 10만 원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동안 서재 한 구석에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던 물건이다. 고심 끝에 어쩔 수 없이 가져가기로 했다. 요즘 새로 나오는 디지털 피아노와는 다르게 소리가 깊어 소장 가치가 있다는 말에 고심 끝에 가져가기로 했다.


이 오래된 피아노를 시골집 거실 가운데 놓았다. 누구나 거실에 들어서면 피아노가 좋아 보인다고 한다. 피아노를 가져온 것은 너무나 잘한 일이었다. 분명 우리 집 물건이었는데 마치 새로 구입한 물건인 듯 새로워 보인다. 디지털 피아노에서 느낄 수 없는 중후함이 느껴진다. 조율을 하니 제법 멋진 소리가 난다. 이사하고 한 달 정도 딩동딩동 쳐 보니 재미가 있다. 손녀들이 오면 놀이 삼아 친다. 거실 가운데 놓인 피아노를 보면서 언젠가는 피아노를 배우리라 생각하고 있다.


    


     


사실 버릴 것인가 남길 것인가 가장 고민한 것은 책 앨범 각종 상장 등이다. 이것은 역사고 흔적이다. 과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기준이 담겨있다. 나는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살고 싶다. 정리하다 보니 남편의 초등학교 성적표에서 6년간 개근상 우등상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생활 사진이 나왔다. 아버님께서 아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모아 놓으셨을 텐데 남편은 평생 한 번도 보지 않는다. 과거 사진 한 두 개 있으면 된다. 어차피  나이 들면서 모두 짐이 된다. 한창 일할 때 받은 지자체 임명장도 지금은 필요 없다.


이사하면서 대부분 버렸다



정리하면서 물건을 하나하나 버렸다. 앨범도 중요한 사진 아이들 사진만 남겼다. 지자체에서 받았던 각종 임명장 서류들도 모두 버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다. ‘과거 내가 무엇을 했냐’ ‘과거 내가 어떤 사람’인데 하는 것을 머리에 이고 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는 지금 글을 쓴다. 지금은 이 일이 중요하다. 내가 지금 고향을 떠나 타지에 와사 잘 살고 있는 것은 현재를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서이기 때문이다. 


책은 모두 챙겼다. 특히 전공과 관련된 오래된 책은 챙겼다. 지위와 관련된 흔적은 버리고 나이 들어도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물건은 남겼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생각이 정리되었다. 생활하며 가끔은 필요 없으리라 버린 옷이 아쉽기도 하고 나를 닮은 손녀를 보면서 내 어릴 때 사진을 찾으며 버린 것을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현재를 살려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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