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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Jul 15. 2024

살기 좋은 곳

집수리 - 3 

         

부부 동반 모임에 갔다. 남편 친구들 모임이었는데 워낙 오래전 친구다 보니 부인들끼리도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시골에 집이 있는 우리 때문에 대화 내용은 전원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날도 역시 전원생활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골 살면 좋긴 한데 남편이나 아내 한쪽이 먼저 가면 큰일이야.”

“(시골에서) 혼자 생활하면 무섭지 않나?”

“지인 중에 남편이 먼저 갔는데 어느 날 보니 집 주위에 남자 두 명이 서성이더래.”

“너무 놀라 서둘러 도시로 나왔대.”     


'시골도 우리나라다. 법과 질서가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꼭 시골에서만 치안을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그냥 하는 얘기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지. 하필 한쪽이 먼저 가는 이야기를 할 건 뭐람'이라고 생각하며 집에 왔다.     


한때는 전원 열풍이 불어 유튜브에 온통 전원에서의 행복한 모습이 영상을 도배를 하더니 어느 날부터 ‘전원주택 급매물’을 비롯해서 전원에서 살 수 없는 이유가 줄줄이 뜨고 있다. 알고리즘 때문인가? 어떤 영상은 시골에는 살 곳이 아닌 듯한 내용도 있다. 물론 시골이 도시보다  약간 불편하다 던 지 문화혜택을 받기 힘들다던지 하는 경우는 있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산다고 다 좋은가?     


 

도시에 살 때 남편은 휴일이면 ‘어디 갈까?’ 계속 물었다. 그냥 집에 있자고 해도 하루 종일 집에서 뭐 하냐는 것이다. 나는 평생을 집에서 밥하고 집안 치우고 책 보고 가까운 마트에 가고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동네 카페를 이용하며 지냈다. 휴일이라고 꼭 어디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큰일 나는 듯 재촉했다. 남편은 혼자라도 나가서 걷기도 하고 당구장에도 가면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 있는 시간은 거의 TV를 시청했다. 남편의 전용공간은 TV 앞 소파였다. 얼마나 애용했으면 그 자리만 푹 꺼졌다.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심심했다.   


  

전원생활은 남편과 나에게 활력을 주었다. 아침이면 일어나 밖의 공기를 쐴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문밖에 나가면 산책하는 동네 사람들과 한 두 마디 나누는 아침 인사가 좋았다. 물론 도시생활도 좋은 점이 많았다. 쇼핑몰 탐방은 나의 취미 중 하나다. 꼭 살 것이 없어도 물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정말 사람 살기 좋은 곳은 어디인가?     



『택리지』는 18세기 중엽 이중환이 30년간 전국을 돌며 직접 현지 답사하며 저술하였다. 산천을 따라 각 고을의 인심과 풍속, 역사와 문화, 물자 등을 기록한 우리나라 인문지리서이다. 그는 ‘복거총론’에서 가거지(可居地 : 머물러 살만한 살기 좋은 곳)의 조건을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 등 4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 지리(地理)다. 지리(地理)는 자연환경이다. 예를 들어 주변에 산이 얼마나 높은지 물은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 기본적인 자연환경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물에 가까우면 자연히 홍수의 위험이 크고 높은 곳에 집이 있으면 오르내리기 힘들다. 우리의 조상들은 좋은 집터로 배산임수(背山臨水 : 집 뒤에 산이 있고 집 앞에 물이 흐르는 지형)의 지형에 남향을 선호하였다.   

   

둘째, 생리(生利)다. 생리는 경제에 관한 조건이다. 내가 사는 곳에 일자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다. 과거에는 농사가 주된 산업이었으므로 수확량에 영향을 끼치는 토질과 기후가 중요하였다. 어느 지역의 토질은 어떤 성분이 많기 때문에 어떤 농산물이 잘 된다 혹은 기후에 따라 재배할 수 있는 농산물이 어느 정도 정해지게 된다. 이것은 수익에 영향을 미친다.


셋째, 인심(人心)이다. 인심과 풍속, 역사와 문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다. 동네 사람들의 성향이나 풍속 친밀감이 좋은 곳이 살기 좋은 곳이다. 안전한 곳이 좋은 곳이다. 치안이 불안하거나 사람 간의 분쟁이 심한 곳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요즘 귀농하는 사람들이 원주민과의 갈등을 겪는 것 또한 인심에 있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넷째, 산수(山水) 다.  산수(山水)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다. 자연경관이 좋은 곳이 살기 좋은 곳이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옷을 입고자 하는 것만큼이나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정자에서 경관을 바라보며 자연을 즐겼다. 


물론 이 이론은 18세기 기준이다. 인간의 기본 욕구는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2~300년 사이 세상은 너무도 많이 변했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어느 지역은 어느 면은 좋은데 어느 면은 어떻다는 식으로 평가했다.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한 살기 좋은 곳에 대한 평가는 계속된다. 


예나 지금이나 살기 좋은 곳은 경제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예전에는 ‘좋은 농터’였다면 지금은 ‘도심의 상업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과 자원이 도심으로 몰리는 이유다.  과거 물류가 물길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항구에 물자와 사람들이 몰렸다. 지금은  물길에 해당하는 것이 교통이다. 그래서 지하철 역사 주변 집값이 비싸다. 


살기 좋은 곳이 여러 요소가 복합적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경제문제로 귀속되어 있다. 이로 인해 수도권 인구집중은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주택부족 문제, 출산율 저하 문제, 지방의 인구 소멸 문제, 환경 문제......


그 가운데에도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자라기에 적합한 곳이 줄어드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려면 뛰어놀 수 있는 공간과 적당한 녹지가 있어야 하는데 유치원 어린이집 학교 병원이 줄고 있다. 어느 동물이든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은 서식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이들 수가 줄어드는 것은 살기 좋은 곳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발전은 결국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다. 근 100여 년 우리나라가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살기 좋은 곳은 줄어들고 있다. 


자랄 때 엄마가 말씀하셨다. 정자 좋고 물 좋은 곳은 없다고. 일자리가 있는 정자 좋은 곳을 찾아가면 물이 부족한 거 같고 물이 풍부한 곳에 가면 좋은 정자가 그립듯이 도심은 자연이 부족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은 심심해서 도심의 열기가 그립다. 부족한 것을 탓하기보다는 있는 것에 만족하고 싶다. 


우리 조상들은 풍수에서 비보(裨補 : 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움)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모자라는 것을 채운다는 의미의 비보사상은 어디든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부족한 것을 채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상들은 조림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북쪽에 나무를 심어 찬 바람을 막았고 해안가에 방풍림을 심어 파도가 마을을 덮치는 것을 막았다. 모든 생물의 살기좋은 서식처는 자연이다. 





집수리를 끝내면서 도시생활을 정리하기로 했다. 

도시의 아파트 생활은 편리하고 볼거리가 많아 즐겁게 지냈지만 전원생활이 기대된다.


 전원에 있는 우리 집은 가유지(可遊地)다. 즉 놀기 좋은 곳이다. 앞에는 북한강이 흐르고 강에서 사람들이 수상스키를 탄다. 강 옆으로 자전거길이다. 문 앞에 옛 철로길로 레일바이크를 타고 손을 흔드는 관광객이 지나간다.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아이들 키우고 직장에 다니며 바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오니 모든 사람들이 놀면서 산다는 생각이 든다. 

                 

집을 고치기 전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집에 물이 새지 않는 것과 다른 하나는 난방비 절약을 위해 벽의 두께를 보강하는 일이었다. 목표한 두 가지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지붕 전체를 징크바로 둘러쌓기 때문에 빗물이 건물 어느 곳에도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고 조적조 벽돌 안에 스티로폼을 넣고 판자를 대는 방식으로 벽을 두껍게 만들어 보온에 신경을 썼다. 9월 초 시작한 집수리는 12월 초 완성되었다.      


집수리는 주거공간으로서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진행되었다. 원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집은 처음에는 펜션으로, 우리가 이 집을 사기 전까지는 회사 연수원으로 사용하였던 집이라 한 가족이 생활하기 편리하게 지어진 집이 아니었다. 경관을 중요시하여 북쪽에 안방과 거실이 위치하고 남쪽으로 부엌과 작은 방 2개가 있었다. 풍광은 멋졌지만 북쪽으로 난 큰 창으로 인하여 추웠고 삼시세끼 해 먹어야 하는 부엌은 좁았다. 남쪽의 작은 방 하나를 부엌과 트는 방식으로 식당공간을 늘렸고 주로 사용하는 방은 남쪽에 있는 작은 방으로 결정하여 겨울 난방비를 줄였다. 


 인생 2막 전원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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