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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Jul 22. 2024

두 번째 고향을 떠나다

이사(移徙)와 이식(移植)

내가 태어난 수원을 처음 떠난 것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떠나온 동네와 친구들을 생각하며 큰길에 나가 수원에서 오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다. 오랜 시간 고향앓이를 했다. 커가면서 고향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전공을 선택할 때도 결혼을 선택할 때도 고향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이 느껴진다. 신학문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던 시절 다른 사람들은 유학을 가네 마네 하는데 나는 고향의 성벽에 더 관심이 갔다. 결혼을 위해 선을 볼 때도 지금의 남편이 고향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성안에서 태어났으니 나는 처음부터 도시 사람이다. 성은 시골과 도시를 가르는 확실한 담장이었다. 우리 마을은 전부터 있었던 도시한옥과 새로 지어진 양옥집이 밀집한 주택가였고,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학교 경찰서 교육청과 같은 관공서는 물론 주변 도시에서도 이용하는 큰 시장이 있었다. 성안 마을은 아이들이 놀기에 좋았다. 정신없이 놀다 보면 성벽에 올라서며 경계를 넘나들었다. 성 위에서 바라보는 성 밖의 풍경은 넓게 펼쳐진 논이었다. 성벽은 시골과 도시의 경계였다.      


결혼하면서 나는 다시 수원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고 도시는 사방으로 확장되었다. 주변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성벽은 더 이상 도시와 시골의 경계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웅장하게 보였던 성벽은 자동차 길을 막는 걸림돌이 되었다. 성 밖은 신도시로 계속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성안의 동네는 활기를 잃었다. 보존과 개발의 길목에서 구도심이라 하여 섬처럼 존재했다. 신도시에 살면서 가끔 남편과 나는 우리가 놀았던 동네와 집을 돌아보며 추억 속에 잠기곤 했다.           



       

나이 들면 자연이 좋다. 이는 생물의 본능이다. 전원생활의 꿈꾸는 이유다. 젊은 시절에는 화려한 도시환경이 나를 부르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함께하지 못하면 나만 소외되는 듯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속에서 나와 그들을 관조하게 된다. 누구나 펄펄한 젊은 시절이 다시 오길 꿈꾸지만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다. 자연을 즐기는 영상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어딘가 부족하다. 


삶의 변화를 주고 싶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보려면 사는 지역을 옮기는 것이다. 즉 이사하는 것이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사는 지역을 옮기는 일이 쉽기 때문에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사가 삶에 변화를 주는 것만을 사실이다.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나무든 사람이든 자기가 살고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가서 산다는 것은 위험이 따른다. 


5년 전 구입한 전원주택의 집수리가 끝나가고 있었다. 마침 가까이 살던 작은딸이 회사 근처로 이사를 하면서 그동안 돌봐주던 손녀의 육아도 필요 없게 되었다. 아파트를 정리하고 내가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이렇게 나는 두 번째 수원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나무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나무에게 배울 것이 많다.  한 곳에서 오랜 세월 버티며 살아온 나무도 멋지지만 나무는 옮기면 옮길수록 강해진다. 인간이 사는 곳을 다른 데로 옮기는 것을 이사(移徙)라 하고 식물 따위를 옮겨 심는 것을 이식(移植)이라 한다. 작은 나무나 흔한 나무는 옮겨 심어도 죽을 확률이 적다. 하지만 귀한 나무, 수령이 오래된 나무, 처음 살던 곳과 환경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경우는 나무를 이식하기 전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게 된다.    

  

나무는 가지가 뻗은 만큼 땅속에 뿌리가 퍼져 있다. 나무는 뿌리로부터 물과 영향을 공급받는다. 옮기기 한 두 해 전 뿌리분의 크기만큼만 남기고 굵은 뿌리를 잘라준다. 이것을 단근작업이라 한다. 중요한 뿌리 몇 개를 자른다는 것은 나무로써는 상당히 큰 타격이다. 일 년 정도 지나면 나무는 신기하게 잘린 굵은 뿌리 근처에 많은 잔뿌리를 만든다. 크고 오래되고 중요한 나무를 옮길 때 단근작업을 몇 년에 걸쳐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 번의 단근작업 후 뿌리분을 돌려놓기도 한다. 나무는 어려운 가운데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러나 시간이 필요하다.     


뿌리분의 크기는 기존에서 살던 땅의 흙의 양이다. 새로운 곳의 흙은 다른 성분일 것이다. 새로운 흙에 적응할 때까지 기존의 흙을 많이 가져가는 것이 나무의 생존확률이 높다. 뿌리분이 클수록 생존확률이 높다.      

나무를 옮길 때 가지를 최대한 잘라준다. 나무는 뿌리에서 수분과 영양분을 섭취하고 입으로 수분을 내보낸다. 이것을 나무의 증산작용이라 한다. 뿌리에서 흡수한 수분의 양이 잎에서 내보내는 수분의 양과 큰 차이가 나면 나무는 죽게 된다. 뿌리를 자르는 만큼 잎의 양도 줄여야 하는 이유다.      


새로운 땅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고 흙을 덮어준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대를 세워 주어야 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나무의 이식이 끝나게 된다. 사람이 이사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나무의 이식에서 배울 것이 많다.           


     



5년간 도시에서 살면서 주말에만 시골에서 사는 양쪽 생활은 나무의 뿌리돌림 시간이었다. 도시와 농촌 간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두 딸을 출가시켰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하나씩 하나씩 사라졌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했다. 100세를 넘게 사신 김형석 교수의 인터뷰에서 교수님은 가장 좋았던 시절을 60대 중반에서 70대 중반으로 꼽으셨다. 이는 가정이나 사회적인 책임에서 벗어나 진정 나를 돌아볼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책임, 형제 사이 남아 있는 장남으로서 의무, 서너 개의 모임, 지금까지 해온 나의 일, 훨훨 벗어던지고 수원을 떠났다. 새로운 나의 삶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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