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솜 Aug 12. 2024

담장, 그 의미는?

길에서 보는 담장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30억 원에 달하는 강남 아파트에서 어린이집과 어린이놀이터 시설 사용을 두고 주민 간 갈등을 빚고 있다. 한쪽에선 시끄럽다는 이유로 어린이들의 놀이터 사용을 금지해 달라 하고 , 다른 쪽에선 이 같은 금지 조치가 잘못됐다며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을 넣고 맞선다."는 내용이 신문에 실렸다. (2022.11.02 머니투데이)


아파트 단지 내 구립 유치원이 있는데 입주민대표회의에서 구립유치원 아이들이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 이용을 금지해 달라는 안건을 제시하였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이유다. 그러나 다른 입주민은 이 같은 조치가 잘못되었으니 이 조치를 풀어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입주민대표회의의 관계자는 "단지 내  놀이터를 외부어린이들까지 같이 이용하게 되면서 주민 불만이 생긴 것은 맞지만 실제 놀이터를 폐쇄하는 일은 없었다"며 "앞으로도 규약에 따라서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서 중요한 것은 외부어린이들이다. 유치원은  0세~5세 어린이가 다니는데 이들 중 주변아파트에서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이들이 이용하게 되면서 주민 불만이 생겼다는 것이다. 0세~5세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데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요즘 아파트는 3 중창으로 기능이 얼마나 좋은데 밖의 소리가 들리기나 했을까? 생각해 보면 만약 이 유치원이 이 아파트 주민만 다녔다면 이러한 안건은 제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은 우리 놀이터 이용하지 말라는 뜻과 같다.


이렇게 첨예하게 이슈화되지 않더라도 요즘 아파트 출입은 너무나 어렵다.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며 주거의 안전이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출입이 어려울수록 안전과 보안에 신경을 써야 좋은 아파트로 인식된다.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까지 갈라치기의 대상이었다는 것이 뭔가 씁쓸하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대부분 단지계획으로 지어진다. 단지의 끝에는 보일뚱 말뚱한 낮은 담장이 있다. 그러나 경계는 확실하다. 아파트 단지 안의 조경은 아파트의 얼굴이다. 그러기 때문에 설계 시공에서 관리까지 최고를 자랑한다. 그러나 밖에 있는 사람은 그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담장의 경계는 보기보다 단단하고 엄격하다. 


어린아이 노는 것조차 이해해 주지 않는 담장 안 사람들

이제 조금은 마음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의 집들은 담장이 없대."

"그럼 도둑이 들어오면 어떻게?"




담장 없는 미국의 어느 마을


담장은 집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선이다. 대부분 도시생활을 하고  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요즘은 집에 담장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파트가 유행하기 2~30년 전까지만 해도 담장 없는 집은 거의 없었다. 


우리 한옥은 담장이 중요하다. 


한옥은 집에 들어오는 입구가 대문이다. 규모나 지방에 따라 가옥의 구조가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한옥은 일단 대문에 들어서면 중심에 마당이 있다. 마당에서 대청마루를 거쳐 안방으로 들어가고 마당에서 툇마루를 밟고 올라가서 문간방으로 들어간다. 마당에서 부엌으로 들어가고 마당에서 뒤뜰로 돌아간다. 집 안이라 하면 마당이 포함된 담장까지다. 그래서 도둑이 집 안으로 들어오려면 일단 담을 넘어야 한다. 담을 넘어 마당에 들어오면 집안 어디라도 갈 수 있다. 담장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방어기능을 한다.   


담장은 시각적으로도 중요한 오브제다. 


담장은 세워져 있고 넓은 면적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 어떤 시설물보다 온전하게 눈에 들어온다. 동네 분위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멀리서 보면 건물 앞에 있는 담장부터 보게 된다. 아무리 잘 지어진 건물이라도 담장이 허름하면 그 집의 가치는 떨어진다. 담장은 재질이나 디자인에 있어 안에 있는 건물과 어울려야 하고 품격이 맞아야 한다. 담장만 보고도 안에 사는 사람의 재력과 취향 품격을 알 수 있었다. 


담장은 기능적으로나 시각적으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극이나 옛 그림을 보면 담 근처에서 많은 일이 일어난다. 도둑이 담장을 넘기도 하고 남여가 담장 아래서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담장 아래 심은 봉숭아꽃을 보며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기도 한다. 우리나라 문학이나 회화에 담긴 예술적 정취를 보면 담장이 우리 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나를 가늠할 수 있다. 


동네를 걷다 보면 우리가 보는 것은 거의 담장이었다. 초가집의 담장은 싸리나무를 얼기설기 엮은 바자울 담이 어울리고 토담을 쌓아 올린 담장도 좋다. 나무판자를 세워 만든 담장은 판자 사이로 언뜻언뜻 안에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기와집 담장은 잘 쌓은 사괴석 담장이 멋지다. 축대 부분은 돌로 쌓고 그 위에 사괴석을 쌓고 그 위에 기와로 마무리하면 튼튼하고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다. 궁궐의 담장은 정말로 멋지다. 글자를 새기기도 하고 불로불사의 의미로 십장생을 새겨 넣기도 한다. 



적당한 높이의 아름다운 한옥 담장



도심에서는 점점 담장의 정취는 찾아볼 수 없다. 


요즘은 가옥구조 변화 인구증가 도심으로의 이주로 담장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아파트가 유행하기 전 불편하고 실용성면에서 떨어진 한옥이 사라지고 새로운 건축양식인 양옥이 유행하였다. 한옥과 양옥 공간구조에 있어 가장 큰 차이는 현관이라는 공간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한옥에서는 현관이라는 공간은 없다. 양옥이라는 새로운 가옥구조는 집 안에 들어가려면 일단 현관으로 들어가야 한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거실을 통해 안방 부엌 건넌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가옥의 커다란 변화다.  현관이 생기면서 현관이 집의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된다. 일단 대문을 통해 마당까지 들어왔어도 현관을 통해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정당하게 현관문을 통과할 수 없는 요즘 도둑은 담장을 넘는 대신 창문을 넘는다. 현관문 잠금장치가 중요해졌다. 요즘은 잠금장치 성능이 상당히 좋다. 우리의 주거환경은 상당히 안전해졌다. 안전이 해결되었다고 우리나라가 미국과 같이 담장 없이 집을 짓지는 않는다. 지금도 어느 동네나 담장은 있다. 하지만 정취는 사라지고 있다. 


마을의 정취를 살리려 노력하는 마을도 많다.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마을이 이야기를 담기도 한다.




담장은 그 높이로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일반적인 담장의 높이는 어른의 눈높이 1.2~1.5m 사이다. 사람이 걸어가면서 담장 너머를 볼 수 있는 높이다. 옛날에 보통의 집들은 이 높이를 크게 넘지 않아 안에 살짝살짝 보면서 걸을 수 있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밖에  걸어가는 사람의 머리를 살짝살짝 보이는 정도, 그 정도의 높이가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의식하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적절한 높이다. 


부유한 동네는 담장이 높다. 과거에도 그랬고 담장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현대도 부자동네 담장은 높다. 안전과 프라이버시를 위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담장만 높은 것이 아니다. 축대를 높이 쌓고 그 위에 담장을 쌓아 담장은 더 높아진다. 영화 기생충에서 부잣집을 보라. 계단을 오르고 높다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잔디 마당이 나온다. 밖에서는 그 마당을 볼 수 없다. 밖에서는 축대와 높은 담장만 보인다. 밖에서 축대와 담장을 보면 절대 접근할 수 없는 성곽 같다. 


가옥구조가 한옥이라 하더라도 부자마을 담장은 보통 마을 담장보다 높다.(예담촌)


축대와 담장이 높은 이태원 골목



밖에서 높은 축대와 담장을 보면 위압감이 느껴진다. 축대 중간에 단을 하나 만들던지 담장의 재질을 다르게 하면 저렿게까지 높아 보이지는 않았을텐데...  담장 안에는 어떤 사람이 살까? 뭘 할까? 행복할까? 정원의 꽃들은 누가 봐줄까? 나는 담장 안이 궁금하다. 


지금은 담장 안에서는 담장 밖을 볼 수 없고 담장 밖에서는 담장 안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슨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담장 안과 밖은 딴 세상이다. 담장은 곧 소통의 단절이다.


담장이 없다고 해서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단지 담장은 있는 둥마는 둥 시각적으로 존재감이 없지만 그 경계는 뚜렷하다. 담장 밖의 사람은 아이들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어른을 보고 너무나 놀랐다. 


과거 우리가 사는 집은 담장이 있어도 소통을 했는데 요즘 도시는 담장이 없어도 이웃 간의 소통이 단절되고 있다. 


이런 길을 걷고 싶다.


골목길을 걷는다.

담장에 시선이 머문다.

담장 안이 궁금하다. 

바자울 사이로 판자 담장 사이로 살짝살짝 안이 보인다. 


안에서도 밖이 궁금하다.

밖에 걸어가는 사람의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끝이 보인다. 

걸음걸음 올라갔다 내려갔다 언뜻언뜻 사람 머리가 보인다. 


동네 사람인지 외지 사람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른인지 어린아이인지

키가 큰지 작은지 

담장 안에서도 담장 밖에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전 18화 적당한 거리 그리고 관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