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테미즘

선사인의 세계관

by 풀솜

무지가 공포를 낳는다.


자연이 두려운 것은 자연의 법칙을 알 수 없어서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더욱 그랬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자신을 무력한 존재로 느꼈다. 선사인들은 도처에 복수심에 가득 찬 죽음의 요귀가 방황하면서 살아있는 자에게 덤벼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냥에서 잡은 동물들이 언젠가는 자기를 죽인 자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불안을 피하고자 끊임없이 빌고, 부탁하고, 물건을 바쳐서 요귀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썼다.


인간은 지혜를 이용해서 맘모스도 쓰러뜨렸지만 인간 자신을 세계의 지배자로 생각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강한 자연의 힘과 비교하면 너무나 미약했다. 강한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치면 인간은 며칠이고 굶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싸울 수 있는 힘과 한걸음 한 걸음 자연을 정복해 갈 힘을 준 것은 무엇일까?


인간에게 그 힘을 준 것은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인간 전체다. 인간은 집단 전체의 힘으로 자연의 세력과 싸웠다. 인간은 인간 전체의 힘을 합해 일하고, 그 일 속에서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쌓아갔던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집단 또는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인간 집단이 서로 결합되어 거대한 힘을 가진 집단이 되었다.


무엇이 인간을 결합시켜 놓았을까?


혈연관계였다. 인간은 언제나 가족과 함께 살아왔다. 아이들은 어머니와 더불어 살고, 그 아이들은 또 아이들을 낳아 형제자매나 어머니 할머니들과 살았다. 종족은 이런 모양으로 이어져 갔다. 원시시대에서 사회란 동일한 조상에서 나온 종족이다. 인간은 모두 조상으로 인해서 결합되고 있었다. 즉 선조들은 인간에게 사냥과 연장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또 주거지와 불을 주었다.


노동하고 사냥하는 일은 조상들의 뜻을 받들어 수행했다. 조상들이 가르친 대로 하는 자가 위험에서 벗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상은 이미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후손에게 가르쳐 주었다. 조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손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조상은 사냥터에도 존재했고 집에도 존재했다. 또한 조상들은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조상들은 또한 악을 벌하고 선에는 보답하기 때문에 후손 곁에는 항상 조상이 존재했다.


동일한 조상을 모시는 사람은 공통된 이익을 위해 협동하여 일을 했다.

그들은 조상들의 가르침에 따르고 함께 그 뜻을 받들어 행하게 되었다.




믿음이 생기다.


원시인들의 세계관은 현대인과 달랐다.


현대인들에게 사냥을 한다는 것은 사냥꾼이 동물을 잡아 사냥꾼을 먹여 살리는 그 자체다. 그러나 원시인들은 사냥으로 동물을 잡으면 자연이 자신들에게 주는 혜택이라 생각했다. 들소를 사냥해서 들소고기를 먹을 때 들소가 자신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죽어주었다고 생각했다. 원시인에게 들소와 맘모스 사슴은 그들의 은인이었다.


원시인의 관념에 따르면 사냥꾼은 자기가 짐승을 잡을 것이 아니라 짐승이 그에게 고기와 가죽을 제공해 준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이어진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짐승의 뜻을 어기고 짐승을 잡을 수는 없다고 믿는다. 들소가 잡히면 그것은 그 들소가 인간을 위해 자기를 희생으로 바친 것이고 죽기를 원했던 것이 된다. 따라서 들소는 종족의 은인이고 보호자임과 동시에 또 다른 조상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원시인들은 '우리는 들소의 자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들의 조상이 들소였다고 믿고 있다. 그들이 숭배하는 동물이 자연의 일부이듯이 인간 자신도 자연의 일부다. 이들의 이러한 생각은 자연을 존중하는 생각으로 발전하였다.


인간은 아직 '나'라는 인식이 없었다. 나 자신을 씨족의 일부라 생각했고 씨족을 위한 도구로 느끼고 있었다. 인간은 씨족을 위해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있다. 씨족은 그 씨족 특유한 이름과 그들이 숭배하는 동식물의 토템이 있다. 들소니 사슴이니 곰이니 하는 씨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씨족의 관습을 토템의 명령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들에게 씨족의 명령은 하나의 법칙이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북미 인디언들은 대지를 '어머니'로 간주하여 지구상 모든 만물에 젖줄을 제공하는 위대한 힘으로 여긴다. 대지를 존중하고 중요시하여 대지는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므로 인간은 영적으로 대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며, 위대한 영(spirit)을 아버지로 삼고 땅을 어머니로 여기며 달을 할아버지로 해를 할머니로 섬기며 모든 존재들은 동등하게 대지를 공유해야 한다고 여긴다.


원시인들의 생각이 미개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인가? 믿음의 대상인가?


자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원시인만큼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는 기후위기에 살고 있다. 자연은 정복할 수도 맹목적인 믿음의 대상도 아니다. 절제하고 돌보지 않으면 인간도 자연에서 살 수 없다. 문명사회에 사는 우리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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