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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Jul 31. 2022

저마다의 우리는 모두 소중하다

천 개의 파랑(천선란, 허블, 2020)을 읽고

세상에는 수많은 색들이 존재한다.

같은 색이라고 해도 절대 똑같은 색은 없다.

하늘의 파랑과 바다의 파랑, 도라지꽃의 파랑이 어디 똑같은 파랑이던가.


그저 사람들이 편리하기 위해 단순한 기준으로 분류하고 구분해놓을 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또한 그렇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완전히 똑같은 것은 없다. 다 제각기의 색깔을 갖고 산다.


하지만 정작 그 색깔을 갖고 온전히 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수로 분류된 색깔들은 혜택으로부터 소외되기 쉽고, 다수의 색깔에 맞춰 살기를 강요당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로 떠오른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발전을 위해, 효용을 위해, 신속을 위해 수많은 색깔은 최대한 단순화된 기준에 따라 하나의 색깔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대상은 소외되거나 퇴물로 취급받거나 존재가치에 대한 도전에 직면한다.


조금만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돌아본다면, 조금만 천천히 돌아보며 우리 안의 다양성을 들여다본다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소설 속 경주마인 '투데이'.


오늘 하루는 효용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일 관절이라도 망가지면 퇴물이 되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리고 그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것도, 자연이 순리대로 부여한 것도 아니다. 인간의 기준에서 존재가치를 상실한, 경제적 이익을 상실한 '물건'이기에 '폐기처분'되는 게 당연한, 원치 않는 죽음이다.


반면 표준화된 구성체계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겨 보다 '인간적인 불량품'이 된 콜리는 투데이의 담당 기수로서 의외의 자기 결정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하늘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행복한 기억을 찾기 위해 관절이 망가질 우려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내고 싶어 하는 투데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키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인간보다 더 인간적은 존재로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콜리는 그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미 인간적인 존재, '살아 있는' 존재로서 승화되었음은 물론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과학과 기술의 중심에는 '인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 그리고 존재의 가치가 살아있어야 한다.


천선란의 소설을 보며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다양성에 대해 그리고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가져봤다.


소외된 이들의 자유의지를 위한 정책적 노력 역시 필요하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것이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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