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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Aug 06. 2022

우리는 모두 윌리엄

윌리엄(김동희, 밥북, 2020)을 읽고

풍요로운 시대다.

물질이 차고 넘치다 못해

수단이 아닌 목적의 지위마저 넘보는

전도의 시대이기도 하다.


커피는 이러한 풍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메뉴다.

향긋하고 고소한 냄새의 카페가 넘쳐나고

편의점에만 들어서도 온갖 커피 브랜드가

소비자의 선택을 유혹하기 바쁘다.


커피잔을 마주한 사람들은 어떨까.

행복할까. 만족할까.

아니면 맛을 느끼지도 못한 채

풍요를 향한 숨 쉴 틈 없는 날갯짓을 위해

각성제 대신 들이붓고 있을까.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아니. 행복해야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행복이 뭔데?'하고 물으면

결코 대답하기 쉽지 않다.


어쩌면 답은 아주 쉬울 수도 있다.

애초에 답이 없을 수도 있다.


작가 역시 이렇게 묻는다.

과연 '행복의 참의미란 무엇인가.'


'솔직히 가진 게 없어야 행복한지,

많이 가져야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도 판단하기 힘들다.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에겐 불행일 수도 있고,

행복과 불행이란 두 단어 속에

세상의 모든 감정을

욱여넣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삶이 고되고 힘든 순간

잠시 흘린 눈물로 위로를 받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를 것인가

불행이라고 부를 것인가?' - 작가의 말 중에서


아프리카.

이름도 낯선 잠비아의 한 커피농장에서 일하는

윌리엄이 겪는 절망과 고통,

꿈과 희망 역시 행복하기 위함이다.


그 행복은 단순히 내가 가진 물질적 부의 크기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손에 쥔 것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 꿈이 닿을 수 있는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고

손을 뻗을 때 비로소 행복한 것이다.


남들이 많이 바라보고 몰려 있다고 해서

내 행복의 방향과 목표 또한 그곳에 있지 않음을

윌리엄은 천천히 깨달아 간다.


'키가 큰 커피나무에서

더 많은 커피를 딸 수 있고,

오래되고 두꺼운 고목에

더 큰 애벌레가 산다는

자연의 이치를 알고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원하는 곳에서 조금 비켜나도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몫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윌리엄의 목표는 '무지개 마을'을 찾는 것이다.

엄마와 여동생 라이니스가 함께 살아가고 있을

그 행복의 공간을 찾기 위해

윌리엄은 오늘도 커피를 따고

농장일을 해나갈 것이다.


지폐 한 장의 무게를 더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마음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에게, 여동생에게

내 성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기 위해

윌리엄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로써 무지개 마을에 다다를 것이다.


'커피'라는 풍요의 상징,

그 뒤편에 자리 잡은 현장의 고단함 속에서

진정한 풍요를 찾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재로 붙잡은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너무도 흔하게 누리는,

이제는 너무나도 낯익어진 커피 한 잔이지만

이제는 그 안에 담긴

누군가의 행복을 향한 꿈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며 음미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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