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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Oct 25. 2022

나의 이야기를 사랑하라

개인주의를 권하다(이진우, 북이십일, 2022)

위험한 개인주의는 없다.
개인 자체가 위험하다.
- 한나 아렌트


오늘날의 질병은
결핍이 아닌 과잉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과 관련된 낱말들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은
질병의 징후인 셈이다.
자아의 거품은  일어난 것일까.
- '현대사회를 관통한
자기 사랑이라는 ' 중에서


종교는 세계와 그 안에서의 내 위치에 대한 모든 것을 규정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획일적이고 경직된 모습이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며 선언한 무한 자유의 시대는 그럼 어떠했는가. 개인의 자유는 얻었지만 '나'를 온전한 '나'로서 규정해야 할 책임까지 주어졌다. 홀로서기를 강제당했다고나 할까.


무엇인지 정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치기만 하는 수많은 '자유'는 그 자체로 무게가 되어 개인을 짓눌렀다. 그로 인해 개인은 나르시시즘에 빠지거나 역설적이게도 집단의 개인화를 스스로 수용하기까지 했다. 기댈 수 있는 언덕이 필요했던 게다.


맨 처음 언급한 한나 아렌트의 말은 그렇게 판단과 결정을 유보하거나 사고조차 거부한 맹목적 개인들을 위험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한 개인들은 정체성을 스스로에게서 찾지 않고 미러링 하거나 타자에게 위임해버림으로써 스스로의 자유를 걷어찬다. 물론 그조차 '자유'라고 외치면서.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자아정체성은 자서전적 서사를 바탕으로 생겨난다. 즉, 다른 사람에게 말해줄 수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자아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중략) 이를 위해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개인주의자가 되기 위한 자기 확신 학습' 중에서


'나'로 온전히 서는 것이 먼저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면과 대화하되, 나 이외의 개인들 역시 그 과정을 겪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즉, 인격을 발견하고 인정해야 한다. 내 자율성의 추구가 타인의 그것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기꺼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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