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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Dec 10. 2022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작별을 고할 수 있다면

작별인사(김영하, 복복서가, 2022)

'작별인사'.


제목을 마주했을 때 상상했던 내용은 책을 덮었을 때와 많이 달랐다.


여느 사랑 이야기 정도 될 줄 알았고, 만남과 이별, 회한과 받아들임 정도가 내용을 이루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책을 들여다보니 존재와 철학에 대한 심오한 원리가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라는 결코 머지않은 미래의 기술적 개념을 도구삼아 펼쳐지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기계와 인공지능이 가장 인간과 가깝게 구현되었을 때, 과연 그 기계는 인간의 철학적 깊이까지 넘어설 수 있을까. 오히려 인간보다 더 우주에 가까운 존재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런 상상력이 '철'과 '선'이라는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와 클론 인간을 통해 담담하게 펼쳐지고 끝맺는다.


'철'의 존재론적 종말이 없었다면 오히려 인간적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끝이 있어 인간은 인간적일 수 있고 존재로서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는 역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가장 인간에 비슷했던 휴머노이드 '철' 역시 스스로 유한의 굴레를 택해 '끝'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존재의 존엄을 지키며 완전한 우주적 자아가 되었으니까.


책을 보는 내내 얕디 얕은 존재감에 매몰된 인간들이 아무 생각 없는 기계처럼 주변의 소중한 존재들을 파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울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오히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코 인간을 멸종시키려 안간힘을 쓰지 않는다. 결국 인간 스스로 그 종말로 다가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그 끝에 다다랐을 때,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인간적인' 피조물들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빠르게 뒤엎고 조화로 나아갈 수 있음을 자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게 '작별인사'를 전할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울 수 있다. 존재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인사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모든 소멸의 가치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임으로써 존재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니까. 그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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