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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Feb 02. 2023

과학을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있었다면…

모든 순간의 물리학(카를로 로베리, 썸앤파커스, 2016)

장래희망이 뭐니.


요즘에는 이 질문 자체도 무척 고리타분한 것 또는 구시대적인 것이 되었지만 내가 어렸을 때에는 정말 많이 들었다. 변명용으로 준비해야 하는 건 항상 하나 이상 있었고 가급적이면 눈치껏 어른들 칭찬받을 수 있는 것으로 준비를 하곤 했다. 잔소리 들어서 좋을 것은 없으니.


하지만 사실 정말 뭘 하고 싶냐고 스스로 물었을 때에는 수줍게 감쳐둔 게 하나 있었다. 막연한 동경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우주, 외계인, 그 밖의 이질적인 존재들에 대한 호기심이 만든 환상이었을지도. 특히 우주는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하늘, 그 너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현 가능해 보이는' 꿈과 연결되곤 했다. 그렇다. 하늘을 바라보는 직업, 바로 천문학자라는 꿈이었다. 별을 관찰하고 별을 연구할 수 있다는 낭만은 어린 시절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 꿈은 중고생이 되면서 너무도 쉽게 깨졌다.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해야 했고 무슨 글자인지도 모를 기호와 수식으로 가득한 세상은 그 자체로 '벽'이었다. 자연스레 수학 '준포기자'가 되고 물리학은 더 중요하다는 다른 공부를 하는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그렇게 과학이 내게서 멀어져 갔다.


"과학은 무엇보다 시각적인 활동입니다. 과학적 사고는 우리가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성장합니다." (우주의 구조 중에서)


만약 과학 선생님이, 물리학 선생님이 이렇게 가르쳐주셨다면 미래가 좀 바뀌지 않았을까. 이 책 어디에도 수식은 없다. 설명은 비유가 함께 하고, 지적은 비교가 함께 한다. 이렇게 쉬운 과학 설명서는 손꼽을 수 있을 만큼 소수가 아닐까.


더구나 현대 물리학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빠지기 쉬운 함정, 즉 인간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하찮음의 우울함 역시 조심스레 토닥거린다. 복잡한 수식을 건너뛰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넌 세상 가장 소중한 존재야!'라는 자존감까지 회복시켜 주니 이 이상 친절한 과학책이 또 있을까.


"우리와 세상의 커뮤니케이션은 우리와 자연의 나머지 부분을 구분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세상의 사물들은 꾸준히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그 과정에서 상호작용을 함께한 다른 사물들의 상태를 알고 흔적을 얻습니다. (중략) 우리는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할 때 정말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중략) 신경세포들의 상호작용이 우리의 판단을 정의할 때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중략) 만약 '내'가 내 신경세포들의 총체가 결정하는 것과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면 그건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 중에서)


우주를 막연히 꿈꾸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이건 멋진 과학자를 위한 든든한 철학적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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