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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Feb 17. 2023

행복, 하고 있나요?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안톤 슐츠, 문학수첩, 2022)

매일 일기를 쓴다. 아니, 매일 쓰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다짐하고 시작한 게 1997년 12월 31일이니까 26년쯤 정도 되었다. 물론 1년 365일 다 쓴 해는 손에 꼽는다. 1년에서 며칠이 빠질 때도 있었고 사느라 정신없을 때에는 반에 반도 쓰지 못한 해도 있었다. 그래도 다짐을 포기하지는 않았기에 26년을 끌고 올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그게 일종의 버팀목이 되었다. 사실 상당히 많은 문제와 고민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멸하거나 해결되거나 또는 줄어든다. 다만 직면하고 있는 바로 그때에는 정말 힘들고 괴롭다. 일기는 그 모든 걸 담아내는 일종의 배출구였다. 행위였다. 누구에게 직접 털어놓으면 좋겠지만 사실 그러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 나름대로 삼켜버리거나 소화시키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행복은 형용사가 아니다. 동사다. 행복해지길 기다리면 결코 행복은 다가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행복도 마찬가지다.


파란 눈의 외국인(물론 그는 한국이 좋아서 그 먼 거리를 무릅쓰고 날아왔다. 즉, 행동했다.)이 볼 때 한국인들은 행복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뭔가 갈증을 느끼고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살짝만 눈을 돌려도, 조금만 발길을 꺾어도 충분히 닿을만한 위치에 행복이 있는데도 말이다.


공감이 되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책의 한 귀퉁이를 살짝 꺾어 접어놓았지만 그걸 모두 열거하기에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핵심을 딱 요약하면 '행복,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이미 행복이 뭔지 알고 있다. 실천하지 않을 뿐이다. 나의 행복을 다른 사람, 또는 사회의 관점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것으로 오해한 나머지 선뜻 나서지 못할 뿐이다. '누군가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나은 것이' 중요함을 놓치고 있을 뿐이다. 내가 행복하지 못할 바에는 누구도 행복해서는 안된다고 착각하는 경우마저 종종 있을 뿐이다.


'행복, 하자.' 자이언티의 노래가사처럼 '행복'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왕이면 내 '행복'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행복이 중요함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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