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툰앙마 May 13. 2023

상실의 세대, 전환의 시대

세습 자본주의 세대(고재석, 인물과사상사, 2023)

"금수저가 아닌 사람이 기댈 언덕은 없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나의 삶은 일그러진다. 우리는 뉴밀레니엄의 삶에서 그걸 배웠다."
(제2장 어쩌다 1980년대에 태어나, 87p.)
"결론은 분명하다. 떠나게 하지 않으려면 '나'를 충성으로 유인할 과업과 성취감, 성과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제공해 달라.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이 이기적인 세대여서 혹은 권리만 주창하는 세대여서가 아니다. (중략) 그것이 사다리를 잃은 세대가 사는 법이다."
(제3장 사다리를 잃은 세대, 171p.)
"우리는 86세대 운동권이 기득권이 되었다고 힐난하면서 실은 기득권 바깥에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 세대도 기득권을 가질 기회를 달라는 말처럼 들렸다. (중략) 정의롭되 정의롭지 않았다."
(제7장 너무 차갑지도, 지나치게 뜨겁지도 않은, 301p.)


개인적으로 '세대 구분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1980년생으로서 90년대 마지막 학번을 달고 대학 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항상 세대 구분론에서 애매하게 끼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세대 설명서들, 그 어떤 것에서도 1980년생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내용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비슷하다.


하지만 애써 이 책의 구분틀 안에 집어넣어 본다면 정치적 선택만 바꾸지 않았을 뿐, '세습 자본주의 세대'라고 규정한 세대에 더 많은 공감을 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40대 들어 영끌로 간신히 내 집 마련에 성공했지만 끝나버린 저금리 호황으로 고금리 빚더미를 마주해야 하고 장기적일 것이 명확해 보이는 글로벌 경기침체의 늪에 빠진 첫 세대라는 측면에서도 이 책의 저자와 심정적인 공감대를 갖기에는 충분하다.


저자가 비판하는 것처럼 한때 꿈과 이상을 앞세워 민주화의 업적을 이뤄낸 586과 그들의 정치는 상실의 세대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들에게 정작 해답을 주지 못했다. '이게 나라냐'며 공정을 앞세워 권력을 전복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바뀐 공정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거나 계층의 사다리를 복원, 보완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물론 그 대안으로 등장한 세력 역시 빠르게, 그리고 당연히 기대를 저버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기대도 크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맞겠다.


전환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인식은 모든 세대가 공감한다. 하지만 정치는 방향을 잃었고 이미 녹슬어버린 투쟁의 세대는 기득권의 고삐 속에 갇힌 채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들이 당연히 누려온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그 오만과 독선이 가져온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젊은이들은 결혼과 취업, 출산을 포기하고 그저 살아남는 게 답이 되어 버렸다. 그들을 손가락질할 것도, 비판할 것도 아니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 하지 않았던가. 상실의 세대를 만든 건 결국 우리 자신이다.


이 책은 현상을 설명하고 진단하되, 대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끝맺는다. 사실 대안을 내놓을 수 없는 형국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내 편 아니면 네 편이라는 식의 극단적 이분법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을 함부로 내놓는 것 자체가 위험하니까.


그저 비슷한 생각들이 모이고 모여 어딘가 중간 지점에서 사회적 대타협의 시도라도 해볼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 분명한 건 어느 누구도 지금의 이 판을 한꺼번에 뒤엎거나 혁신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점이다. 긴 관점에서 이해와 공감의 판이 새로 깔릴 때, 최소한 우리 뒤에 오는 세대, 즉 우리의 뒷모습을 보고 자랄 세대는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