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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May 11. 2023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홍학의 자리(정해연, 엘릭시르, 2021)

"이번의 경고는 인정욕구였다."


저자는 후기에서 이 책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그렇다. 완벽한 요약이자 정리다. (이 이상은 스포가 될 것이므로...)


'스릴러'라는 장르가 매력적인 이유는 온갖 욕망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가운데 폭력과 배신, 희망과 파멸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서로 얽히며 반전들을 양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홍학의 자리'는 이러한 스릴러의 공식을 잘 지키며 독자로 하여금 경악할만한 평범한 것처럼 보였던 한 인간이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자신의 욕망을 천천히, 그렇지만 완벽하게 끄집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치는 몇 번의 반전을 거듭하고 난 후 마지막 한 문장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고 이를 통해 독자의 분노와 허탈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한 마디로 '수작'이다.


평범한 악행이 더 무서운 것은 그 평범성의 가면 뒤에 응축된 잔인함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잔인함은 쉽사리 터져 나오지도, 새어 나오지도 않는다. 확실한 자기 합리화의 과정을 거쳐 완벽하게 스스로의 악행이 악행이 아닌 것으로 무장할 때 비로소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런 악행일수록 사람들이 갖고 있는 희망과 욕망 사이 어딘가쯤 숨어 있는 물거품 같은 꿈을 자극하고 끄집어내게 마련이다. 그 끝이 파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때에는 그 꿈이 왜 끌려 나왔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그런 악행은 근본부터 악한 사람의 전유물일까. 그렇지 않다. '홍학의 자리'는 평범하고 반듯한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욕망을 끌어내 희망이나 인정욕구의 포장지를 덮어씌운다. 누구나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더 무섭다. 작가의 다음 경고는 무엇일지 기대가 되는 이유다.


한편, 소설의 첫 단추에서부터 당당하게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며 나올 때에는 더더욱 끝까지 경계를 늦춰선 안된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금 깨우쳤다. '스릴러'라는 장르는 야구와 비슷하다. 엎치락뒤치락하더라도, 9회 말 2 아웃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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