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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Aug 23. 2023

다산과학기지 2.0을 기대하며

북극, 스무 해의 기록(강성호/김예동 외 17명, 지식노마드, 2022)

로알 아문센 기념상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11시 방면쯤 될까. 황량한 풍경만큼이나 단조로운 벽돌색 2층 건물이 보인다. 이정표나 안내판이 없어 누군가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그곳이 대한민국 북극 연구의 심장, 다산과학기지임을 지나치기 쉬울 것 같다. 뭐, 그러면 어떠랴. 책을 덮고 난 후 구글 어스 지도를 따라 찾아간 다산과학기지는 더 이상 황량한 북극 지방 어느 한 곳에 동떨어진 건물 한 채가 아니었다. 세계와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과학 거점으로서 20년의 세월을 견뎌 낸 당당한 청년, 그 자체였다.


다산과학기지가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 뉘올레순 지역에 터전을 마련한 지 20년이 넘었다. 성년이 지난 다산과학기지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간혹 들려오는 뉴스 한 토막(그것도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을 통해 '북극에도 대한민국의 과학기지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 수준의 지식만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벌써 20년이 되었다는 것도, 전 세계 과학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도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다.


서울에서 6,400km나 떨어진 멀고 먼 이국 땅, 북위 78도 55분, 동경 56도 지점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과학기지.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지가 섭섭할 만도 한데 지키고 성장시킨 사람들의 소중한 기록들 속에는 그런 서운함보다 오히려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는 뿌리 깊은 자긍심과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서일까. 우리는 항상 북쪽을 향한 길이 어색하고 어려웠다. 최초의 극점 기지인 세종기지가 1988년 남극에 자리 잡은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다산기지가 건설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막연한 한계 때문은 아니었을까. 북반구에 위치한 우리로서는 3배가량이나 더 멀리 떨어진 남극보다 북극이 더 지리적으로도 가까운데 심정적으로는 더 멀게 느껴지는 것 역시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여러 사람의 끊임없는 노력과 땀으로 북극을 향한 길은 열렸고 우리는 당당한 공동 협력의 일원으로서 꾸준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길이 막히는 순간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북극에서 배웠다.(다산에서 만난 식물들 / 이유경)'는 누군가의 고백처럼 북극은 이제 우리의 가능성이자 세계의 가능성으로 더 크게 열리고 있다.


이러한 다산과학기지의 성장과 발돋움에 가장 큰 공로자는 누구보다 지속적인 열정을 갖고 땀을 흘려온 과학자들일 것이다.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온도를 가진' 이들은 자신들이 기지에서 추구하는 연구의 목적과 당위성에 대해 눈을 반짝일 줄 알았고 그것이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때로는 평범한 삶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희생을 감수하기도 했고 외롭고 추운 황량함을 오롯이 버텨내기도 했다.


그렇게 20년을 버텨냈다. 이제는 미래로 나아갈 때다. 지난 3년 여 기간 동안 북극으로 가는 길도 많은 제약이 따랐지만 국경의 의미가 없는 감염병은 아무리 뛰어난 국가, 개인이라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몸소 경험했다. 격리와 단절 등의 조치가 일상화되는 동시에 우리는 인류 최선의 대응 역시 '함께'라는 점 또한 깨달았다. 북극 등 극지 연구와 조사에 있어 여러 사람이 함께 어깨를 걸고 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다.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에 들어온 다산과학기지와 극지 연구는 이제 대한민국 하나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구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인류 공통의 귀중한 유산이자 자료를 만들어내는 보고로서 그 역할을 하길 바란다.


비록 책 한 권의 기록과 구글 어스의 스틸컷 한 장을 마음에 담을 뿐이지만 다산과학기지의 미래를 더 관심 있게 지켜보고 응원하는 한 사람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더 큰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함께 준비할 것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는 것(울고, 웃고, 기억하다 / 이방용)'이라는 당연한 깨달음을 실천하는 길 또한 정답은 '함께'에 있게 마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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