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스티븐 존슨, 프런티어, 2015)
우리는 혁신의 결과물만을 누리며 산다. 하지만 그 혁신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고민과 연구, 실패와 전환을 통해, 즉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지는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앞에 등장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사소하고 작은 것, 또는 절대 지금의 결과를 예측하고 만들어지지 않았을 우연과 인접성의 길을 따라왔을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이 중 6개(유리, 냉기, 소리, 청결, 시간, 빛)를 골라 추적한다.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과연 이 6개의 요소가 왜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혁신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저자를 쫓아 현재의 혁신과 완전히 무관한 처음의 아이디어가 다양한 방식으로 튀어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박진감에 절로 홀리게 된다.
유리를 예로 들어보자.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등장하면서 책을 읽는 것이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었는데 그 새로운 습관으로 인해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원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까이 놓인 책을 보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안경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렌즈의 발달이 수반되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평소에도 호기심 가득한) 과학자들은 렌즈를 활용한 실험과 관찰의 효용성과 욕구를 풀다가 현미경과 망원경의 발전을 촉발시켰다. 그 꼬리를 물고 세포의 구조, 우주의 신비가 우리의 지식 범위로 따라 들어왔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인쇄술이 렌즈를, 렌즈가 현미경과 망원경을, 그리고 현미경과 망원경이 세포와 우주를 끌어들이면서 인간의 지식 범위를 무한대로 늘릴 수 있으리라는 것을 과연 누구 하나 예측할 수 있었을까. 전혀 그럴 수 없었다.
변화는 항상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하나의 지식이 또 다른 지식의 발전을 이끌고 줄줄이 다른 지식의 폭발적 확대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누구도 계획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확대의 범주나 영향력은 때로는 우연히, 때로는 누군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타고 무한대의 방향성을 타고 퍼져나간다. 그 끝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유리에서 시작한 혁신이 광섬유를 타고 인터넷 세계를 열었듯이, 얼음왕 프레데릭 튜더가 시작했던(엉뚱하기까지 했던) 얼음 운반 사업이 냉장고, 에어컨을 거쳐 인간의 거주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키기도 했다. 소리를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했던 엉뚱한 시도는 전화기와 라디오, TV를 거쳐 음파탐지와 초음파까지 연결되었다. 인간과 세균이 벌인 투쟁은 의학 발전뿐만 아니라 비키니의 발명도, 하수관과 화장실의 재구조화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정확한 시간의 측정 필요성은 GPS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새로운 빛을 바라며 시작한 인류의 긴 여정은 사진술과 네온광고, 레이저 광선과 바코드를 만들어내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사소하고 작은 발명과 혁신이 현대사회의 거대한 편리를 만들어내기까지 그 과정은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고 쉽게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모든 변화와 혁신이 이렇다. 그렇기에 멀리서 찾을 것도, 어렵게 헤맬 것도 아니다. 무심코 지나쳐버린 아이디어와 혁신이 있는가? 엉뚱하다고, 말이 안 된다고 밀어놓은 경험과 사례가 있는가? 그게 새로운 미래를 만들 거대한 변혁의 단초가 될지 모를 일이다.
세상에 갑자기 뚝 떨어지는 진보는 없다. 그걸 항상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