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임용한/조현영, 레드리버, 2022)
"전쟁이 벌어질 것도 알고, 전쟁을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안다. 관리도 알고 북변의 무사도 알고, 그곳의 주민도 알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피의 교훈을 두 번, 세 번 겪고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병자호란을 앞두고 접경지대의 백성들도, 장수들은 다 알았다. 전쟁이 '또'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명분론에만 빠져 있던 정치, 국제정세 따위 직관하기를 거부했던 정치는 눈과 귀를 모두 닫고, 반복된 비극의 책임을 시대와 정적들에게만 묻는데 급급했다.
삼전도에서 바닥에 머리를 찧어가며 구걸한 권력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정치와 권력은 그 책임마저 백성에게 돌리고 시대에 손가락질하기 바빴다. 외적에게 유린당할 대로 유린당한 백성들에게는 오히려 그 살아남은 정치와 권력이 더 가혹한 외적이자 괴물에 가까웠다. 패배한 주제에, 보호하지도 못한 주제에, 나라랍시고 정치랍시고 떠들어대며 백성들 위에만 군림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능한 정치에는 약이 없다. 없느니만 못한 정치에 희생양이 되는 건 항상 백성, 민중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지켜야 할까?
예나 지금이나 우리 병사들을 만나본 외국인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이처럼 투지 넘치고 강인하고 훌륭한 병사들을 거느린 나라가 왜 전쟁을 그렇게 못했을까?"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무능한 정치 속에서도 난세의 영웅은 등장하고 민중은 각성하여 스스로 살길을 만든다. 병자호란 때에도 그랬다. 외적은(외부의 위기는) 최소한 그렇게 등장한 영웅과 각성한 민중 앞에서 곤란을 겪거나 때로는 물러서기도 한다.
오히려 그들을 좀먹는 것은, 무능한 주제에 위에만 군림하려 하는 말뿐인 권위와 허울뿐인 명분이다. 그놈들은 어렵사리 버티고 선 한가닥 빛줄기들에게 '나방이 되어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지라'고 등 떠밀면서도 정작 실패의 책임은 자신이 아닌 남에게 찾기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것들은 침묵으로 돌진한다. 그렇게 지켜온 나라, 그렇게 지켜온 역사다. 유독, 우리는 그랬다. 무능한 정치는 정말 시간이 흘러도 약 따위 없지만 반딧불이 모여 광야를 휩쓰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듯 뿌리깊이 자리 잡은 저항정신이 그나마 우리의 오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기괴한 충성심을 요구하는 나라, 패전하면 지휘관이 무능하고 용기가 없어서 패전했다고 서생들이 대대손손 조롱에 가까운 비난만 퍼부어대는 나라"
이런 나라에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나라라고 해서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처지일 가능성이 높다. 백성은, 대다수 민중은 좋든 싫든 뿌리를 내리고 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시민의 힘으로 나라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목격하기도 했다. 정치는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반딧불빛이 광야를 휩쓸 때에도 잠시 납작 웅크리면 피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빠르게 체득하긴 했다)
적어도 동류가 되지는 말자. 기괴한 충성심을 종용하고 패전했다고 해서 마녀사냥하듯 비난을 퍼붓는 한, 발전은 없다. 전란이 터진 들 또다시 반딧불에 기대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정신 좀 차렸으면. 그리고 적당히 믿자. 무능한 정치는 약이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