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X리브랜딩(박상희/이한기/이광호, 오마이북, 2023)
많은 도시들이 슬로건을 만들고, 상징물을 만들고, 살기 좋은 도시임을 광고한다.
도시도 이제는 선택 가능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통신과 이동 기술이 발달하면서 넓어진 인간의 활동 범위는 내가 살 지역, 내가 일할 지역의 선택 폭 또한 광범위하게 넓혀주었다. 그러면서 도시의 흥망성쇠 사이클 역시 무척 빨라졌고 변화의 진폭도 매우 커졌다. 공간 선택의 자유 확대가 도시로 하여금 스스로 가꾸고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살기 좋은 도시, 일하기 좋은 도시,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등 '도시'라는 단어 앞에 수많은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선택받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 상품이다. 선택받지 못한 도시 역시 결국 소멸의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일단 한 번 선택받은 도시는 지속적으로 번영할 수 있을까?
한 번 선택했다고 해서 선택이 불변하지는 않는다. 비슷비슷한 상품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새로운 가치, 차별화된 상징성 등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 지속적인 '리브랜딩'이 필요한 이유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공간'이다. 개념으로서의 공간은 불변하지만 삶의 장으로서의 공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도시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의 영화가 미래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변수는 다양해지고 변화의 속도 또한 빠르기 때문에 그에 맞게 변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객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도시가 많아지면, 다른 도시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새롭고 독특한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p.104)
3인의 저자는 도시가 하나의 상품이지만 '베스트'만 살아남는 무한 경쟁의 시장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전제를 설정하고 있다. 다른 도시들이 갖고 있지 않거나 차별화해 낼 수 있는 요소들을 뽑아 '유일한' 도시로서 가치를 정립해야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 '유일성'은 기본적이고 일관적인 도시 정체성 위에 시정 활동과 시민참여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거주'에만 목표를 두던 도시의 지향점은 이미 바뀐 지 오래다. 오히려 거주하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의 일치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기술이 기반되는 한, 누구나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이든, 워케이션이든 특정 공간에 뿌리를 내려야만 하는 것이 아닌, 잠시 머물다가 가는 공간, 내 삶의 일부만 공유해도 되는 공간이 점점 늘고 있다. 생활인구적 측면에서의 도시와 공간 특성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주'가 아닌 '이주', '유목'의 관점에서 유연한 도시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이 단순한 '소멸'을 넘어 '불멸'하는 공간으로서의 도시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다.
베스트 원이 아니라 온리 원으로 각자의 매력을 발전시키길 진심으로 바란다. (p.255)
저자들의 바람은 결국 '리브랜딩'을 통해 도시가, 로컬이, 나아가 국가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각자의 '자기다움'을 찾는 것이다. 차별적 경쟁력을 갖게 되면 그 공간은 소멸하지 않는다. 가치 지향적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가 다시 흩어지고 또다시 모여듦으로써 그 공간에 끊임없이 에너지를 불어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구 소멸'이라는 위기를 현실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여러 도시들과 정책 결정자들에게도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소멸 자체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차별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효과적인 관계 설정을 해나갈 수 있느냐로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 결국 도시 리브랜딩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도시라는 공간의 멋진 변화를 꿈꾸는 저자들의 깊이 있는 고민을 응원한다. 동시에 이 고민이 여러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인사이트를 불러일으키는 계기도 되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