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사회(김성용/김세준, 도서출판 등, 2024)
소비가 노동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다. (기본사회의 정의와 필요성, 55p.)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을 통해 기술 발전이 노동력을 대체해 감으로써 일자리가 줄어들고 이로 인한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조금은 먼 미래, 지나친 비관론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경고가 갑자기 훅 체감되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와 AI의 등장 때문이다. 전염병에 사회 시스템이 마비될 수 있고 혁명적인 기술 발전이 인간의 자리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깨달음은 당장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미래를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기본사회의 필요성은 이러한 깨달음의 맥락과 닿아 있지만 조금 더 나아간다. 소비를 전제로 하지 않는 생산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인간 노동의 축소와 대체로 인한 소비의 감소는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선 경제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소비가 노동의 연장선에 놓일 수도 있는 이유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기본적인' 소비 여력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게 기본사회, 특히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논거다.
기본사회는 최소한의 삶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유지되는 삶이 일부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에게 제공되는 사회, 누구나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 (기본사회의 정의와 필요성, 18p.)
그렇게 개념화된 기본사회는 '최소'가 아닌 '기본'을 강조한다. '최소한의 삶'은 그동안 '복지사회' 개념으로 추진되어 왔다. 하지만 과도한 신청주의, 커지기만 하는 사회적 불평등 확대, 일자리 변혁 가속화 등은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더 크고 빠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최소'만으로는 더 이상 커버하기 힘든 상황이다. 기본적인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의 '최소'는 의미가 없다.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기본사회의 정의는 기존 '복지사회' 개념의 확장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가능할까?
계속 이 물음이 남는다. '재원 마련'은 기본사회에 대한 찬반의 핵심 기준점이다. 기존 재정의 재구조화를 통해 일단 재원을 마련할 수는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세수 확보가 불가피하다. '증액'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것이다. 당연히 이에 대한 저항과 반대도 뚜렷하다. 넘어야 할 허들이 만만치 않다.
미래의 대한민국에서 기업의 혁신은 '사람이 맡을 일자리를 없애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 (중략) 기업에 투자하고자 하는 돈은 '사람의 일자리를 없애는 데' 사용될 것. (기본사회의 네 가지 기본권, 123p.)
넘어야 할 허들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인데 '기업의 혁신'을 '일자리를 없애는 일'로 치환하는 식의 접근은 적절치 않다. 저자는 기본사회의 4가지 실행 요소로서 기본소득, 기본금융, 기본주택, 을기본권을 제시하고 있는데 어느 것 하나 저항 없을 것이 없다. 그런데 그 저항을 극단적 레거시로 표현한다면 타협의 접점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좋은 개념과 정책도 설득력을 확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4가지 실행 요소 역시 기본소득 외 나머지 요소들은 상대적으로 철학이나 구체적 방법론 측면에서 빈약하다. 게다가 기본사회 구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강력한 정치적 드라이브'로 읽힌다. 지면의 상당 부분이 특정 정치인의 리더십과 맞닿아 있는 것이 그 이유다. 구조적으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결국 시스템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정치적 리더십에만 기댄 정책들이 불과 1~2년 만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 기본사회는 제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차근차근 숙성돼 가길 바란다.
그리고 사족 같은 한 마디.
책의 설득력은 디테일도 무시하기 어렵다. 너무 많은 비문과 오탈자가 집중력을 너무 흔들었다. 혹시라도 재판이 나온다면 이런 부분도 신경을 더 많이 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