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와, 우정과, 사랑과, 길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찰리 맥커시, 상상의 힘, 2020)

by 서툰앙마
때때로 네게 들려오는 모든 말들이 미움에 가득 찬 말들이겠지만, 세상에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이 있어.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어.
그래.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도 뒤돌아봐.


꼭 처음부터 보지 않아도 좋은 책이 있다.


내겐 박노해의 '걷는 독서'가 그런 책이다. 고민 가득하거나 말줄임표가 늘어갈 때, 어디든 펼치면 나름의 지혜를 구할 수 있는 그런 책 말이다.


한 권이 더 늘어난 듯하다. 소년을 따라 두더지를 만나고 여우를 만나고 말을 만나는, 나름의 서사가 분명 있지만 순서에 구애받지 말고 페이지를 펼쳐 보길 권한다.


메시지는 그림과 함께 버무려진다. 그림이 글이고 글이 곧 그림이다. 비어 있는 공간이 오히려 더 큰 메시지로 다가오고, 정돈되지 않은 선들의 움직임이 더 큰 울림을 던진다. 때로는 소년의 시선으로, 때로는 두더지의 위치에서, 또 어떤 때는 여우의 침묵으로, 그리고 말의 마음으로도 내 감정이 옮겨다님을 깨닫게 되면 비로소 그들의 여정은 온전히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새삼 알게 된다.


좋은 책은 그런 책이다.

나와, 사랑과, 길을 알려주는 책. 그에 더해 이 책은 우정의 의미까지 되새기게끔 한다.


의지하며 함께 가는 세상 아니던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는 만큼 보이는 유물과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