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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내 동료가 돼라!… 고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원피스로 철학하기(권혁웅, 김영사, 2024)

by 서툰앙마
다른 집단과 달리, 이들(루피와 동료들)에게는 서로의 약점이 서로를 지켜주는 근거가 된다. (중략) 루피는 '무능'한데, 오히려 그 무능으로 단 하나의 일, 눈앞의 적을 '이기는 것'을 할 수 있다.(p.37)
밀짚모자 해적단은 서로 다른 유형의 전투원들이자, (중략) 서로 다른 성질(이타성)들이 차별 없이 모인 다양체가 되었다. 이들의 승리가 거듭될수록 세계에는 평등과 자유, 환대와 우정이 확산될 것이다.(p.52)
같은 인간 사이에서도 분열이 있고, 그 분열된 둘에 속하지 않는 제3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다른 모든 차원에서도 동일한 차별을 저지른다. (중략) 우리가 "하나'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생각도 이데올로기다. 차라리 우리가 처음부터 여럿인 하나였다고, 그래서 지금의 '나'는 하나가 아니라 1/2이거나 1/8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p.252)


마흔 넘어 원피스를 처음 접했다. 1997년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여전히 진행형이니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지만 뒤로 갈수록 처음의 감동은 밋밋해지고 짜릿했던 모험도 조금씩 지루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의리로 버티는 것인지도.


의리로 버틸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작품의 매력일 것이다. 여느 만화와는 분명 달랐다. 루피 하나에 집중된 영웅 서사가 아니라 동료 전체의 성장이 바탕인 점도 그랬고, 상대적 선악관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관점과 스토리도 즐거웠다.


그래서였을까. 철학적 시각에서 풀어낸 원피스는 다소 어색하고 이질적이었다.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부분보다 갸우뚱하는 부분이 많았다. 어렵고 복잡한 퍼즐 맞추기 같은데 정작 맞춰보면 그 그림이 맞나 싶은. 묘한 거부감. 철학을 내 동료로 삼기에는 아직 너무 먼 당신이 아닌가 싶었다. 루피라면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잠들었을 듯하기도 하고.


참고만 하고 밀짚모자 해적단의 여정에 대한 의리를 이어가련다. 단순한 선악을 넘어 평등과 자유, 환대와 우정이라는 가치를 계속 전파해 주길. 꿈의 라프텔도 언젠가는 도착할 수 있겠지.


목표가 명확한 여행은 그 자체로 즐거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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