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상자(한강, 문학동네, 2008)
순수한 눈물.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면서 흘리는, 특별한 이유가 없지만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이유들로 인해 흘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이란다.(p.17)
순수한 눈물이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눈물을 말하는 게 아니야. 모든 뜨거움과 서늘함, 가장 눈부신 밝음과 가장 어두운 그늘까지 담길 때, 거기 진짜 빛이 어리는 거야.(p.63~64)
아주 긴 건기, 해일같이 몰아치는 짧은 우기.
어느새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
메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져버린 눈물샘은 여느 감정에도 솟아나지 않을 만큼 황폐해졌다. 울지 못하는 세상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모든 것을 기계적인 관점에서만 제단 하기 일쑤인 데다, 그나마 가끔 터져 나오는 눈물은 분노가 켜켜이 쌓여 해일같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데에 앞장서기 바쁘다.
이래저래 세상에 생생한 눈물이란 찾기조차 힘든 지경이 되어 이젠 기다리기도 지칠 만큼 어려워졌다.
울지 못하는 세상은 그리워할 어떤 것도, 공감해야 할 어떤 메아리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렇게 꾹꾹 눌려 있다가 어느 임계점에 도달하면 폭발하듯 내뿜는 시뻘건 분노가 되어 서럽게 몰아닥치고 모든 것을 삼키게 마련이다.
그 앞에서는 연민도, 측은지심도, 용서나 베풂도 존재할 수 없다. 그저 파괴와 비탄만이 가득할 뿐, 단말마의 외침도 허용하지 않는다. 따듯한 눈물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그래도
씨앗을 남고 회복과 치유의 기회가 남지만 폭풍같이 몰아친 후의 폐허 속에서는 어떤 것도 생명력을 남길 수 없다.
그러니.
눈물을 틀어두자.
눈물이 흐를 줄기는 남겨두자.
그렇게 여백이 살아있는 세상이길 바란다.